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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짝이는 삶, 결코 싫증내지 않을 삶……
    한 권의 소설이면서 한 편의 시가 되는 이야기
    막상스 페르민의 『눈』(난다)

    1.
    소설인데 시 같은 이야기.
    시인데 시론 같은 이야기.
    한 문장이 한 단어처럼 읽히는 이야기.
    백색 눈에서 흑색 눈멂을 경험하게 하는 이야기.
    칠할 수 없는 시간을 더듬어 그려보게 되는 이야기.
    계절은 가고 또 지나가고 아무 일도 없이,
    자꾸만 겨울에 가닿는 이야기.
    팽팽한 줄 위에서 새처럼 허공을 디디다
    언어의 줄 위에서 눈이 되어버린 곡예사 이야기.
    푹푹 눈은 쌓이고 꽁꽁 눈은 얼어붙고
    그 얼음 속 깊이 잠들어버린 한 여자 이야기.
    늙지 않고 변치 않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야기.
    그리도 투명한 가운데 사랑을 보아버린 한 남자 이야기.
    사내를 맹인으로 맹인을 곧 시인으로 만들어버린 이야기.
    둘이었다 하나였다 영원히 하나가 된 둘의 이야기.
    덧없어도 꿈이 아닌,
    결국 눈이 물이 되는 이야기.

    2.
    프랑스 아를레아 출판사의 1999년 ‘최초의 1,000부’ 총서*의 첫번째 주자로 그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던 막상스 페르민의 소설 『눈』을 펴냅니다. 출간 이후 지금까지 프랑스 전역에서만 3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간 이 소설은 하얗고 얇은데다 단문이며 줄거리 요약이 몇 줄로 가능할 만큼 단순한 구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시를 쓰는 남자가 있고 시라는 백색의 정의와 정신을 좇다 그에 버금가는, 결국 그를 상징하는, 어떤 절대적인 사랑을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랄까요.

    3.
    그 중심에는 하이쿠가 이야기의 등뼈로 단단히 자리하고 있는데 프랑스 소설에 하이쿠라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하실 수도 있겠으나 첫 페이지부터 일단 열어 읽기 시작하면 아하, 하고 감탄하는 스스로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말이 되는 아름다움 속에 그 문체에 탐미하며 만나게 되는 정신의 강직성에 신경이 바싹 곤두선 채로 소설임에도 시처럼 천천히 읽어나가며 눈으로 입맛을 다시는 몸의 반응에 절로 차분해지는 스스로를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끝끝내 ‘눈’이라는 제목으로 왜 그토록 ‘백’에 미쳤는지, 왜 서두에 랭보의 말을 빌려 “오직 백색만이 보”인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화두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지요. 알 듯 모를 듯 계속 흔들리면서, 그러나 제 몸을 믿고 맡겨 가보게 두는, 하염없이 펼쳐져 있는 눈길 위를 걸어나갈 때 내 뒤로 찍히는 발자국 같은 거, 그런 사라짐 말입니다. 이 소설은 그런 원형을 찾아 예술의 본질을 말해보고자 하는 고집스러운 이야기이며 온전히 가질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4.
    특히나 만듦새에 이 소설의 메시지를 담으려고 애를 좀 썼던 것 같아요. "눈은 한 편의 시다. 구름에서 떨어져내리는 가벼운 백색송이들로 이루어진 시. 하늘의 입에서, 하느님의 손에서 오는 시이다. 그 시는 이름이 있다. 눈부신 흰빛의 이름. 눈." 이런 구절들 앞에서 눈앞이 하?으니까요. 가장 어려운 백색의 현현, 얼어죽은 여인의, 그러나 살았을 적 얼굴빛의 온기를 살리고자 띠지에 온 마음을 쏟았어요. 진달래나 사과는 안 되었어요. 복숭아에서 살구 사이가 맞을 듯했어요. 번져야 했어요. 멈추면 안 되었어요. 띠지 앞면에 글자 하나 박지 않은 연유였어요. 출판사 로고도 고민할 지경이었지요. "그토록 아름다운 그것은 여자"이기도 했으니까요. 눈알갱이의 느낌을 살리고자 선택한 종이 수급에 어려움이 있어 두 주 정도 늦게 출간이 되었지만 저는 만지면서 연신 좋아 죽네요. 종이에 환장하는 저에게 이 책은 더더욱 눈 같아야 했거든요. 시 창작 수업 시간에 교재로 택하곤 했던 소설입니다. 시론 수업 시간에 교재로 택하던 소설입니다. 번역은 언어학자이자 연대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임선기 시인이 맡아주었습니다.

    * ‘최초의 1,000부’ 총서 : 이 총서의 명칭은 옛날 프랑스 출판사들이 썼던 표현인데, 개성 있다고 판단되는 신인의 작품을, 반드시 1,000부는 아니지만, 소량 인쇄하여 조심스럽게 독자들의 반응과 평론가들의 의견을 묻는 출판계의 관행에서 유래되었다.(번역가 조광희의 말을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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