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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여덟 마리 말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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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방어할 새 없이
    나를 우울감에 빠뜨리는 일들이 많다
    호의로 시작된 일도 그렇다”

    혼란의 시대, 중국 근대성의 모순을 드러내고
    문학의 힘으로 인간다움의 회복을 호소하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에 편향되기를 거부하고 문학의 순수성을 고집했던 중국 작가 선충원沈從文의 소설집 『여덟 마리 말 그림八駿圖』이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94번으로 출간되었다.
    표제작 「여덟 마리 말 그림」은 학술적 성취를 이루고 성인군자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만 억눌린 욕망으로 정신적 결핍과 왜곡된 성 심리를 가진 대학교수 8인을 풍자하며, 1930년대 중국 지식인들의 군상을 보여준다. 현대 문명의 세례로 급변하는 사회상, 관리와 지식인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군벌전쟁 속에서 희생된 평범한 개인들의 아픔을 살피며 근대 중국의 암울한 민낯을 여지없이 들춰내는 이 책은 궁극적으로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인간 본성 회복에 대한 작가의 갈구이다.

    “누구나 각자의 뜻에 따라 예배당을 하나씩 짓고
    자신이 믿는 하늘을 섬긴다네”

    “從文” 문학에 헌신하는 삶을 살겠다

    선충원이 사망한 1988년, 미국의『뉴욕타임스』는 그를 “중국 작가들의 자유 투사. 문학적, 지적 독립의 열정적인 옹호자”로 소개하며 소식을 전했다. 고향 샹시의 민속과 풍습이 담긴 선충원의 작품을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의 작품과 비교하고, “선충원의 걸작은 체호프의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찬사와 함께.
    선충원은 군에서 복무했으나 작가의 길을 택했고, 문학에 헌신한다는 뜻의 충원(종문從文)이라는 필명을 지었다. 그가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1920년대에는 새로운 중국 사회 형성에서 작가와 예술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는데, 선충원은 반反정치적 문학을 추구했다. 그러나 내전과 1940년대 말 공산당 집권으로 문학이 정치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자 공산주의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고, 자살을 시도할 만큼 심한 사회적 따돌림을 당하다가 절필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다시 고초를 겪는 등 역사의 파란 속에서 소설가의 삶을 접고 중국 역사 문물 연구에 몰두했다.

    “다양한 물줄기들은 나를 사색으로 이끌고
    내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20세기 초 중국 근대성의 모순을 드러낸, 선충원 문학세계의 전환기

    선충원은 그동안 향토적 서정주의를 추구하는 전원문학가로서의 면모가 부각되어 왔으나, 사실 다양한 문학적 스펙트럼을 구현한 다산多産 작가이다.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향촌의 목가적인 정경과 순박한 인간미, 원시적 생명력을 강조하는 소설도 자주 선보였지만, 현대 문명의 세례로 변해가는 현실을 반영하거나 사회적 이슈를 드러낸 소설들도 상당수 창작했다.
    이 책은 선충원의 작품 세계에서 전환기적 의의를 띠는 단편소설 16편을 엮은 것이다. 선충원은 고향 상시 지역을 서정적으로 그린 경험 위주의 서술에서 벗어나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황폐화된 도시의 생활상과 도시인들의 상처와 고통, 도시 지식인들의 위선적인 면모, 도시 문명에 잠식되어가는 시골 세태 등 현실 묘사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도시’와 ‘시골’이라는 두 축을 오가며 인간의 본성과 근원적 감정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제시한다.
    뉴욕 세인트존스 대학교의 아시아학 교수인 제프리 C. 킨클리에 따르면, “선충원이 중국 문학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그가 유별나게 기념비적인 작품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문학에 기여한 바가 너무나 다양하고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젊은 남녀의 본능을 충동질하고도 남을
    환상적인 날씨였다”

    인간다움의 회복을 호소하며 진중하게 써 내려간 그의 작품들

    선충원은 당시 도시 관리층과 지식인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도시’의 암울한 민낯들을 여지없이 들춰낸다. 인물들의 심층적인 심리와 잠재의식을 포착할 수 있는 탄탄한 구조가 돋보이는 표제작 「여덟 마리 말 그림」은 억눌린 욕망으로 인한 정신적 결핍과 왜곡된 성 심리를 가진 1930년대 중국 지식인들의 군상을 보여준다. ‘여덟 마리 말八駿’은 여덟 명의 대학교수로, 수영복 차림의 여인을 훔쳐보는 을乙 교수, 처조카딸을 떠올리며 음란한 상상을 하는 병丙 교수, 가학적 성향의 정丁 교수, 여자를 요물로 취급하는 무戊 교수 등 지식인들을 풍자적으로 묘사했다.
    선충원의 작품 속 도시의 관료나 지식인들은 시대적 혼란 속에서 부도덕하고 위선적인 행위를 자행하거나, 도덕과 규제로 억눌린 본성이 왜곡되어 표출되거나, 결국 지식인으로서 고수했던 가치관을 포기하고 현실에 복종해갈 수밖에 없는 과정들을 보여줘 허무하면서도 씁쓸하다.
    이처럼 본능에 역행하는 위선적인 도시인들과 대조적으로 도시에 공존하는 빈민층과 사회적 약자들의 참혹하고 음습한 이면들을 그려내기도 한다. 화려한 도시의 그늘 속에서 기생하듯 삶을 연명하는 하층민들의 디스토피아적 풍경이 상위 계층의 삶과 극명하게 대비되며 드러난다.
    이처럼 작가는 때로는 도시에 점철된 위선과 피폐한 감정들을 표출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시와 또 다른 양상으로 타락해가는 시골의 몰인정성을 드러내기도 하며, 때로는 전쟁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자아를 잃거나 처참히 희생된 평범한 소시민, 병사들의 아픔을 섬세하게 되짚는다. 이는 궁극적으로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인간 본성 회복에 대한 작가의 갈구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선충원이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의 범주를 확장하면서 사상적, 예술적 도약을 시도한 작품들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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