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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중요해지는 대기과학의 역할과 대기과학자들 이야기
기상학을 뜻하는 ‘meteorology’란 단어는 기원전 350년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출판한 《Meteorologica》에서 유래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태양의 열은 공기 속에서 수분을 상승시켜 냉각한 다음 강우로서 지표면으로 되돌아온다고 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이미 강우량과 같은 기본 날씨 자료들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날씨를 이해하게 된 것은 19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조금씩 이루어졌다. 이것은 매우 서서히 진행되었으며 20세기까지도 과학자들은 과학적인 주제로서 기상학을 인식하지 못했다. 물리학과 화학을 전공한 대부분의 젊은 과학자들은 기상학 분야를 노력할 만한 가치 있는 학문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경받는 학문 분야로 발전하는 데 큰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기 현상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조사하기 위한 적절한 측기들을 가지지 못했다. 기압은 날씨와 기후를 연구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현상 중의 하나이다.
1643년 이탈리아의 수학자인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가 기압을 측정하는 수은기압계를 발명했다. 온도를 잴 수 있는 믿을 만한 도구는 1724년 다니엘 가브리엘 파렌하이트가 최초의 수은온도계를 발명함으로써 생겨났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1752년 벤자민 프랭클린이 번개가 전기의 방전현상이라는 것을 증명함에 따라, 날씨와 관련된 신비로운 현상들의 일부가 초자연의 기적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현상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잉글랜드의 약제사인 루크 하워드는 1802년 구름을 분류하는 시스템을 설명함으로써 대기 상태를 객관적인 수단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또한 그는 1837년 최초의 기상학 교과서로 알려진 《기상학에 관한 7번의 강의록》을 출판했다. 그 당시 아마추어 기상학자들은 상당한 객관성을 가지고 날씨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지만, 바람의 특성을 전달하는 수단이 여전히 매우 주관적이었기 때문에 생명을 담보로 일하고 있는 선원과 해상 여행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했다. 이에 날씨 통보를 표준화할 필요성을 느낀 아일랜드 수로학자인 프랜시스 보퍼트 경은 국제적으로 채택되는 풍력계급을 고안했다.
19세기 동안 유럽의 기후는 현재와 같이 그리고 역사에 기록된 바와 같이 온화했다. 그러나 수만 년 전 대부분의 북반구는 거대한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스위스 출신의 박물학자 루이 아가시는 지질학 자료를 이용하여 지구의 기후가 상당한 시간 동안 변화를 경험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빙하시대의 증거를 밝혀냈다. 지구의 운동도 하나의 인자로서 국지기후와 계절기후 변동에 영향을 미치는데, 윌리엄 페렐은 수학적으로 대기와 해양에 관련되어 나타나는 유체 순환 모형을 설명했다. 아일랜드의 자연철학자인 존 틴들은 복사열의 투과에 영향을 미치는 대기 기체, 특히 수증기와 이산화탄소의 양의 변동과 기후 변화를 연관시켜 설명했다.
1869년 클리블랜드 애비는 ‘매일 날씨 알림판’을 만들어 대중들에게 그날그날의 날씨를 통보해주고 미합중국 국립기상국을 창설했지만, 여전히 경험적인 날씨 예보가 그대로 남아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물리학자 빌헬름 비에르크네스가 이런 단점을 보완했다. 그는 자연 활동의 증거에 물리법칙을 적용시켜 대기 중의 기단의 움직임을 과학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기상학을 과학으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비에르크네스의 기단 활동의 연구와 전선 특성 연구는 현대 기상학의 토대를 형성한 이론들이다. 그러던 중 대기에 대한 인간 활동의 영향과 같은 날씨와 기후와 관련된 현재 이슈들이 파울 크루첸과 같은 유명한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파울 크루첸은 지구의 방패인 오존층을 파괴하는 과정들을 연구하여 199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은 이런 위대한 과학자들의 업적과 그로 인한 변화를 시대별로 정리해 소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