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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문학의 산문 문장의 틀을 세운 이태준의 산문집. 그의 산문은 인간의 삶에 대한 치열한 관찰과 생동하는 정신을 그 바탕으로 한다. 특히 인간 옹호의 정신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작품 '성(城)'.
아침마다 안마당에 올라가 칫솔에 치약을 묻혀 들고 돌아서면 으레 눈은 건너편 산마루에 끌리게 된다. (...) 한참 쳐다보노라면 성벽에 드리운 소나무 그림자도, 성 돌 한하나 사이도 빤히 드러난다. 내 칫솔은 내 이를 닦다가, 성돌 틈을 닦다가 하는 착각에 더러 놀란다. 그러다가 찬물에 씻은 눈으로 다시 한번 바라보면 성벽은 역시 조광(朝光)보다는 석양의 배경으로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느끼곤 한다. ('성'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허하면 상고적 취미를 떠올릴 만큼 이 방면에 대한 그의 안목은 대단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왜 그것에 집착했는가 하는 점인데 지금까지는 '스러져 가는 것에 대한 낭만적 복고의 열정'으로만 해석되어 왔었다. 허나 그렇게 단면적으로만 해석할 것도 아니다. 즉, 서구와 근대가 모든 사물의 척도가 되는 식민지의 현실에서 '과거의 것'은 그립고 기억해야 할 무엇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태준은 당시의 시대적 변화 속에서 '서구중심주의'의 폭력을 발견하고 이에 저항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서구의 근대가 빚어내는 살풍경을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않았다는 것은 '동방정취'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서구 사람들은 방 속에서 미인의 나체를 그리고 있을 때 동양 사람은 정원에 나와 괴석을 사생하고 있지 않았는가? 이런 취미는 미술에뿐이 아니다. 동양의 교양인들은 시(詩) , 서(書), 화(畵)를 일원의 것으로 여겼다. 한 사람의 기술로서 이 세 가지를 다 가졌을 뿐 아니라 정신으로 괴석을 시, 서, 화에 다 신봉하였다. ('동방정취' 중에서)
이러한 성찰은 그에게 소설쓰기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이태준은 서구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자신이 서구의 산물인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서 항상 괴리를 느껴왔다. 그 결과 한때는 서구의 소설 양식과는 다른 것을 추구하려고 애쓰면서, 일본의 사소설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갈등속에서 이태준은 다음과 같이 생각을 정리하기에 이른다.
문학의 왕좌를 점령해 놓은 서양 소설의 덕이 아니었던들, 오늘 동양에서 특히 조선 같은 데서 소위 도청도설(道聽塗說) 더불어 떳떳이 그 천직을 삼으려는 자 과연 몇 명이나 되었을꼬. 나는 이 '도청도설' 혹은 '가담항설(街談巷設)'이란 말에 몹시 불쾌를 느꼈었다. (...) 소설을 가리켜 '가담항설'이라 '도청도설'이라 했음은 멀리 창창한 한서의 고전이거니와 그때 이미 얼마나 정시(正視)한 소설관인가! ('소설' 중에서)
는 식민지 지식인의 갈등과 소설가로서의 고민, 사물을 바라보는 이태준의 기본적인 시각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고, 두고 읽을 수 있는 책임에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