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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몸 안에서
나보다 오래 살겠지.
머리에 고가철도를 쓰고
기차가 지날 때마다 기억하겠지.”
신체를 이루고 바꾸고 벗어나는 언어
흩어지고 부서지며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로서의 시
감각적이고 독특한 물질적 상상력을 통해 ‘몸’과 ‘언어’에 천착하며 ‘몸의 시인’으로 불리어온 채호기 시인의 신작 시집 『머리에 고가철도를 쓰고』가 창비시선 513번으로 출간되었다. 올해로 시력 38년에 이르는 시인의 아홉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신체의 일부이자 독립적인 물질로서의 언어를 깊이 탐구하는 동시에 인간과 비인간, 존재와 비존재의 데칼코마니를 펼쳐 보이며 그 대칭의 중심부를 끈질기게 들여다본다. 삶과 죽음,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과 형이상학적 사유가 돌올한 시편들은 언어가 지니고 있던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고 그 외부와 내부를 뒤집어 보기도 하며 새로운 의미를 탄생시킨다.
시인이 “비인간 객체와의 공생의 집”이라 명명한 이 “시의 집”은 ‘맨 앞에 괸 시’ ‘연습곡’ ‘더 작은 시작’ ‘네번 접은 풍경’이라는 “네개의 현관”, 즉 네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떤 현관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집의 구조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시인의 말). 특히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0번과 화가 서정임의 그림(「느리게 걸어가듯, 보다 조금 빠른」), 기타리스트 이성우가 되살려낸 작곡가 페르난도 소르의 연습곡(「Etude」 연작)과 화가 이상남의 그림(「풍경의 알고리듬」 「네번 접은 풍경」 「Arcus+Spheroid」) 등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은 언어 바깥에 자리한 예술을 시적 언어로 새로이 감상하게끔 한다. 이로써 독자들은 언어의 또다른 가능성을 만끽해볼 수 있다.
“인간이 비인간을 괴물로 보듯
비인간은 인간을 괴물로 본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많은 시편이 “사물의 관점에서 기록한 사물의 경험”(김인환, 추천사)을 들려주는 데서 알 수 있듯 채호기의 시는 “리버시블 인간관”(김나영, 해설)이라 할 만한 독특한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우리 몸과 정신의 대부분이 ‘비인간’ 객체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시인은 ‘비인간’이라는 표현에서 엿보이는 인간 중심적 관점을 의심하고, 정신과 물질, 인간과 비인간, 존재와 비존재라는 구분을 허물어뜨리면서 “머뭇대고 비비적대는 삶”(「반짝이는」)의 내면과 “복잡한 거짓말이 반짝이는/생의 미로”(「네번 접은 풍경」)를 탐색한다.
또한 시각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통해 세계의 현상을 구체적으로 포착해온 시인은 “보이는 것의 보이지 않음”(「개안기」)을 역설하면서 ‘예감’이라는 육감을 동원하여 가시화할 수 없는 것까지 가시화하고자 한다.
“시는 언어의 도살장.
불끈 언어의 사건의 지평선에서
조각난 파편으로 웅크린다.”
그런가 하면 시인은 “죽음과 삶은 딱 잘라지지 않는다”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는 흐릿하다”(「반짝이는」), “살아 있는 것은 죽은 것보다 조금 더 살아 있고 죽은 것은 살아 있는 것보다 조금 더 죽어 있을 뿐 산 것과 죽은 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가 아니다”(「이미 죽은 것들이」)와 같은 날카로운 아포리즘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시집 곳곳에 심어놓기도 한다. 삶은 “그저 시간의 아름다움에 기대”어 “늘 한 개체의 망실을 견디는” 것이기에, 시인은 “죽음 속에서도 삶이 거듭되는”(「네번 접은 풍경」) 풍경을 바라보며 죽음이 단지 생명의 소멸이 아니라 “시간에서 시간을 떼어내는 일”(「화관」), “정지의 중지”이자 “갈망의 중지”(「돌과 죽음과 먼지」)임을 확인한다.
나아가 ‘사건의 지평선’과 ‘호킹 복사’ 같은 물리학 개념을 차용하여 시쓰기에 대한 시인의 인식을 드러내는 시편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시인은 시란 단순히 언어를 구조적, 형식적으로 배열한 것이 아니라 “언어와 언어 사이에 호킹 복사에 견줄 만한”(해설) “수평의 거대한 사건”(「앞에 괸 시」)이 일어남에 따라 생겨난 무엇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그토록 거대하고 능동적인 탄생은 시인에게 있어 “매번 죽지 않을 만큼 소량의 죽음을 복용하는 것”(「Arcus+Spheroid」)일 수밖에 없다.
“노래는 그렇게 새롭게 시작한다.”
노래가 “죽음을 딛고” “새롭게 시작”하듯, 채호기는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그 무엇을 찾아”(「느리게 걸어가듯, 보다 조금 빠른」) “망가진 감각”과 “망가진 언어”(「새소리 흉내」)를 추스르고 가다듬으며 다시 한번 길을 나선다. 그 “정처 없는 길”(「정처 없는 길」) 위에서 시인이 끊임없이 변주하는 ‘연습곡’은 또다른 ‘작은 시작’과 ‘더 작은 시작’으로서 새로운 시를 길어올릴 것이다. 시인의 시는 지금도 시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