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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도망자의 마을 (이정임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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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하고 있음에도 결국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
    젖은 발로도 명랑하게 앞을 향해 걷는 존재들

    200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정임의 두 번째 소설집 『도망자의 마을』이 걷는사람 소설 열두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2016년 첫 작품집을 발간하면서 “동세대들의 삶을 씨방으로 삼고, 탄력 있고 쫄깃한 문장의 힘을 과육으로 삼”(강동수 소설가)고 있다는 평을 들었던 작가는 분명 존재하고 있으나 마치 무명(無名)처럼 살아가는 존재들에 주목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견디는 삶’을 강요하는 이 시대 캐치프레이즈를 향해 흠씬 하이킥을 날린다. 소설을 넘기면 손에 쥔 것은 쥐뿔도 없지만 세상이 짜 놓은 굴레에, 남들 시선 따위에 굴종하지는 않겠다는 단단한 자부심을 가진 인물들이 제각각의 형상을 한 구름처럼 유유하게, 자유분방하게 펼쳐진다. 자기 안의 진정한 사람다움을 신뢰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는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정임 작가는 마치 그 질문에 답하듯 오지랖 넓은 흰머리 할머니, 재칫국(재첩국)과 두부를 파는 상인, 참말과 거짓말을 버무려 쓰는 소설, 골목의 고양이들, 옥상에서 키우는 작물 등을 등장시키며 작은 숨구멍들이 여기 있으니 좀 보아 달라고 이야기한다.

    보소! 아지매, 아침 좀 늦게 먹어도 안 죽는다! 야아? 영기 아지매! 어? 어? 있다가 가라. 보소! 쫌만 있다 가라니까? 가장 강력한 파장을 지닌 목소리 출현. 지나는 사람을 모두 불러 모을 기세다. 흰머리 할매다. (중략)
    옆집 재봉틀이 돌아간다. 바깥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엮어서 재봉틀로 옷을 지어 입으면 무척이나 무겁겠지. 어깨에 쏟아지는 무게가 천근만근이라 다리를 옆으로 벌려 가며 겨우 걷겠지.
    -「오르내리」 가운데

    주변을 둘러보면 다 내가 아는 사람이에요. 동시에 다 모르는 사람이에요. (중략) 나는 겉보기에 정상이므로, 아무도 이 일을 목격하지 않았으므로, 나쁜 일을 당했다는 어떤 증거도 내보일 수가 없어요. 어느 것 하나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결국 나는 나를 의심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아닐까. 아니면 다들 똑같이 당했는데 나만 이렇게 과하게 힘들어하며 사는 것 아닐까.
    -「비로소, 사람」 가운데

    『도망자의 마을』에서 작가는 열심히 살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불편하고 고단해지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주체들을 선보인다. 이들 모두가 우리 곁에 숨 쉬는 이웃이요 바로 나 자신 같다. 백수가 되어 가난한 산동네에 살면서 치매 걸린 엄마의 요양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나(「오르내리」), 부지기수로 사기를 당한 아버지를 둔 덕분에 버는 돈을 모두 빚을 갚는 데 써야 하는 수현(「도망자의 마을」), 과로와 스트레스로 각종 지병을 안고 있지만 직장에서 병가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점점 작아지는」), 신장 투석을 해야 하는 홀어머니와 사는 프리랜서 비혼주의자 수안(「뽑기의 달인」), 서로에게 안정감을 느끼며 함께하는 무직 비혼주의자 고무와 호양(「벽, 난로」), 치매에 걸린 엄마가 나날이 변해 가는 모습을 맞닥뜨리며 두려워하는 이선(「비로소, 사람」)이 그들이다.
    해설을 쓴 장예원 평론가가 강조한 것처럼 이정임의 소설은 “모두가 〈달려라 하니〉의 하니처럼 앞만 보고 달리지 않아도, 달리기 순위 안에 들지 않아도, 서로가 곁을 내주는 ‘작은’ 벗이 되어 주기만 한다면 잠시나마 ‘고독한 자아의 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비록 그들이 세상의 기준에서는 있으면서도 없는 구름 같은 존재들일지라도” 말이다.
    물론 소설 속 인물들은 그들이 처한 답답한 현실을 인식하고 있기에 다소 지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집 『도망자의 마을』의 주체들은 고달픈 장면들을 응시하며 그 안에 가득한 고통을 들이마시면서도 비관에 빠져 있지만은 않다. 오히려 이정임의 소설에서는 삶의 고달픔 속에서도 특유의 명랑성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곧 암담한 현실을 적절한 경계와 한정으로 형식화하는 이정임만의 “예술적 능력”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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