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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재의 큰형이자 정신지체 장애인인 승운은 승재의 생활 속에 늘 함께 하는 불편한 존재다. 처마 밑에 하염없이 서 있거나, 버스 정류장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는 승운의 모습은 언뜻 평온해 보인다. 그러나 승운은 그러한 평화로운 풍경에 균열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승재의 방학 숙제를 망가뜨리는가 하면, 다리 밑으로 떨어져 다치고, 사기를 치려고 마음먹은 이웃에 이용당하고, 급기야 행방불명된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승운의 모습보다는 그를 둘러싼 가족의 모습에 더 반응하게 된다.
이 소설은 아버지 엄마 그리고 화자인 승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을 드러낸다. 승운을 애초부터 소통이 불가능한 대상으로 생각하는 아버지, 장애를 한없는 보살핌의 대상으로 여기는 어머니, 그리고 평범한 듯하지만 결코 예사롭지 않은 승재의 시선이 있다. 승재는 승운이 갖고 있는 ‘장애’와 소통을 시도하고(어려서 말을 가르치는 행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지만 승운에 대한 관심을 접지 않는다. 그것은 감추고 싶고 외면하고 싶지만 그것이 바로 자신의 가족이 앓는 상처이기 때문이고, 상처는 상처를 숨기는 데서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데서 치유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결말은 마냥 낙천적이지 않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 엄마, 승재는 승운을 장애인 시설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한다. 쌀쌀한 초봄에 시작되어 첫눈이 오기 직전인 겨울에 끝나는 승재의 이 성장일기 같은 소설은 마치 계절이 돌아오듯, 그들의 장애는 그들 곁에 머물 것임을 예견하게 한다. 작가는 장애 문제에 있어 어떤 한 가지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고, 우리 사회에 물음을 던지는 것으로 이 소설을 끝맺는다.
화려한 수식이나 과장 없이, 유유한 강물처럼 흐르는 문장은 일기의 마지막 장을 닫는 것 같은 여운을 남긴다. 바로 그 점이 현 청소년 문학 시장의 톡톡 튀는 형식(문장, 소재, 구성)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랄 수 있다. 멋 부리지 않고, 흉내 내지 않고, 오직 자신의 문제에 골몰하는 승재는 그러한 문체 속에서 진정성 있는 캐릭터로 다가온다. 반항심보다는 고민이 더 깊고, 내뱉고 표현하기보다는 동그랗게 '귓바퀴 오므린' 양 세상의 말을 듣는 아이 승재. 그가 꾸밈없는 담백한 언어를 통해 우리에게 성장의 곰삭은 의미를 일깨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