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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사의 발전을 향한 투쟁에 있어서 삶과 죽음 너머의 형상들을 집성한 시집”
1,398편의 시를 단행본 시집 한 권으로 펴낸 것은 아마도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 아닌가 싶다. 이제 등단 45년의 경력에 칠순을 넘기며 원로 시인의 반열에 오른 김정환의 스물일곱 번째 신작 시집 〈죽은 것과 산 것〉이 그것이다. 요즘 출간되는 평균적인 시집 약 스무 권 분량이다. 이 시집에는 「1권 분리수거」에 559편, 「2권 음악에」는 1부 ‘미술의 세계사’, 2부 ‘유년의 서’, 3부 ‘개봉’으로 나뉘어 816편, 마지막 보유: 대역지도 권에는 23편이 수록되어 있다. 워낙 많은 편수의 시가 실려 있기에 찾아 읽는 독자의 편의를 돕기 위해 시집의 권말에 제목이나 시의 첫 행 구절 두 가지로 ‘찾아보기’를 만들어 수록했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양순모가 썼다.
시인은 “삶의 질 최전선을 맡은 언어의 질이 도처에서 떨어지”고 있다는 당대 문학 현실에 대한 진단하에서 “지금 그것을 높이는” 것이 자연스런 시인의 일이라고 말한다(‘시인의 말’). 그러면서 “이 시집의 구성과 규모는 집적이 아니라, 비판에 그치지 않으려는 나의 최선의 ‘전면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시들은 7~8년에 걸쳐 쓰였다고 말한다.
이 시집의 방대함은 시집의 주제를 한 마디로 뭉뚱그려 말하기에 어려움을 준다. “강철”(황현산)의 시인이자 “뜨거운 콧김의 진정성”(김사인)의 시인, “진실의 지시자이자 견인자”의 “본질”(정과리)을 가장 잘 수행하면서도, 그것의 끊임없는 “번역”을 통해 그 “극단적 탐구”(박수연)를 이어온 시인 등으로 다양하게 수식되듯이, 시인의 시집 속에서 시간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공간은 음악, 미술, 건축, 사상, 문학 등을, 종횡과 확산과 집적과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누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로 정리를 시도해 본다면 시집 〈죽은 것과 산 것〉은 인류 문명사의 발전을 향한 투쟁에 있어서 삶과 죽음 너머의 형상들을 시로써 집성한 대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집의 제목 〈산 것과 죽은 것〉의 의미는 복합적이고 증층적이다. ‘산 것’과 ‘죽은 것’은 나뉠 수도 있고 합쳐질 수도 있다. 또 ‘산 것’ 속의 ‘죽은 것’, ‘죽은 것’ 속의 ‘산 것’, ‘산 것’ 속의 ‘산 것’과 ‘죽은 것’ 속의 ‘죽은 것’을 함의하기도 한다. 시인은 “죽음을 논하는 자리에서 명암이 짙을 뿐 어두운 적 없다”(「정물」). “우리가 그토록 맛있게/먹었던 것이 바로 죽음이었다./죽음과 너무 가까운 것이 죽음과 너무 멀다”(「균형」). “제일 힘들다. 죽어가는 일이”(「천지」). “사는 일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이/죽는 일 같다”(「오늘」)고 말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우리의 죽음에 경악하지/않고 우리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에 경악한다./무수한 남의 죽음을 경악으로 슬퍼하던/우리의 평소 습관 덕”(「어쨌든」)이라고 진술은 공감력을 발휘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이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모든 생명 활동(삶)은 죽음으로 완료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순리라면, 그 이치의 너머, 즉 “생로병사 이야기의 극복이 철학이고 그 극복이/시”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문학은 그저 “그 둘의 화해이기 위한 소설의 끝없는/세속화가 심화”(「고대 포스트모던」)되고 있을 뿐이어서 “자본주의의 최악화 말고는 자본주의를 끝낼 길이/없어 보이는 것”(「대속의 세계화」)이다. 이 도저한 절망적 인식하에서 “그러나 시인은/예수와 다르지./적어도 제 상처보다/오래 사는 굴욕을 견디는 것이 시인이다./물의 명명이 물을 능가할 때까지.”(「상처」) 쓰고자 하는 시에 시인이 담고자 애쓰는 것은 무엇인가. 해설을 쓴 양순모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시인은 “죽는 사람의 그때 그 심정이 뭘까”, “문학이라는 것이 사실 공적인 죽음하고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라고 질문하며 이를 통해 문학이란 무엇인지를 규정한다. 즉 문학이라는 “이야기” 그 “자체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제의”이고, 더 나아가서 “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살아 있을 때 할 수 있는,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의 행위에 다름 아니다. 조금 당위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제 왜 사나”하는 우리의 질문은 “공적인 죽음”이라는 수수께끼 혹은 불가능과 더불어 비로소 끊임없는 대답을 새로이 산출할 수 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불가능 너머 진짜 ‘가능’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