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글링 하지 않고 사는 현대인이 있을까. 매일이 얼렁뚱땅 서커스 같다. 정해진 하루들 안에 일, 가사노동, 취미, 공부, 운동을 균형감 있게 배치하면서 가족, 친구들을 챙기는 자투리 시간도 빼둬야 하는데, 와중에 틈틈이 발생하는 인생의 이벤트들 마저 욱여넣으려 애쓰다 보면 어느샌가 공 하나가 이미 저쪽에 떨어져 있음을 뒤늦게 발견한다. 와르르 무너지는 마음의 안정. 다시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보려 하지만 명상에도, 산책에도, 상담에도 필요한 건 또 시간...
시간은 왜, 늘, 부족한가. 독일의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가 쓴 이 책은 이 질문에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분석을 내어 놓는다. 저자는 시간 개념의 정치성과 상호 연결성에 대해 공들여 설명한 뒤, 현대 사회의 여러 이슈들이 시간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통찰력 있게 엮어낸다. 독일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재 한국의 이슈들과 놀라울 정도로 잘 맞아떨어진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고용' 정책의 제국주의적 폭력성, 돌봄 경시와 맞물린 저출생, 시간 불평등과 직결되는 부의 불평등, 심지어 최근 SNS에서 활발한 의견 나눔이 있었던 '갓생과 과로'에 관한 이야기까지.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모아놓고 보니 정중앙에 시간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 많은 문제들을 정리할 방법으로 저자는 일하는 시간을 파격적으로 줄이는 사회 모델과 시간 개념을 제안한다. 혁명적이지만 현실적이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라우디아 골딘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에서 다룬 '탐욕스러운 일'에 관한 문제의식에서도 이어지는 논리가 있다. 만성적 시간 부족에서 오는 숨막힘과 바쁨을 찬양하는 사회의 기괴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