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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예의 시는 무의식적으로 받아쓴 영감을 툭툭 뱉어내며 자연 발화한다. 무질서한 흐름에 몸을 맡기고 나아가는 자동주의 미술 기법과 닮아 있다. 통제되지 않은 사고의 자유로움을 구사하는 데칼코마니, 액션 페인팅(물감 흩뿌리기), 그라타주(긁어내기), 드로잉과 모래를 활용한 낙서화를 연상하게 한다. 이번 시집의 중심이 되는 자동기술 화법은 시 곳곳에서 성령의 은사를 받은 방언처럼 흘러나온다. 그녀는 꽃을 만들 수도 있고 아이를 만들 수도 있는(「그해 여름」) 자연 발화의 농도 짙은 정서를 재현한다.
돌아보아도 앉았던 의자는 그대로다
합의이거나 암묵이거나
짧았던,
지루하게 오래된 순간들은
더께 앉은 의자의 체취는
감당해야 할 네 안의
들숨과 날숨이 어긋난 파열음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 소리를
오래오래 빗질하며 앉아있다
그러니까
좀 더
용감하게 물어봐야 했어
그때
왜 창문을 닫았냐고
해 지는 저녁 너머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었지만
넌
눈 깜박할 사이
회오리치며 어둠이 들이칠 거라고
먼지 한 톨 남기지 않을 어둠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창문을 열자며
파리한 얼굴은 더 새하얗게 표백되었다
- 「우리를 알아가는 새로운 방법」 부분
시는 생활의 표현이며 체험이다. 시 「우리를 알아가는 새로운 방법」은 가식을 벗어던진 진솔함으로 자연 발화되는 던지기 기법을 추구한다. 정서체험은 경험하지 않은 상상적 경험이나 상상의 인지작용으로도 재구성이 가능하지만, 이두예 시의 정서체험은 경험의 동질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타인의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으로 재구성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의 경험으로 환원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이때 독자가 겪는 추경험의 계기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들숨과 날숨이 어긋난 ‘네 안’의 파열음은 잦아들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 ‘네 숨소리’의 파열음을 “오래오래 빗질하”며 숨을 고르는 시간은 지루하리만치 길다. 해 지는 저녁 너머를 바라보고 싶은 ‘나’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너’는 “회오리치”며 들이칠 어둠을 핑계로 창문을 닫아버린다. 상대의 감정 따윈 아랑곳없이 건너뛰는 ‘너’는 “먼지 한 톨 남기지 않을 어둠”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창문을 열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화자는 보고 싶은 저녁 너머를 볼 수 없도록 “창문을 닫”아버린 ‘너’에게 왜 그랬는지 능동적으로 묻지 못했던 순간이 안타까울 뿐, “먼지 한 톨 남기지 않을 어둠”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
화자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방식은 그때처럼 지금도 틀리다(「커피를 마시는 방식」)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앤딩 자막 위로 부옇게 내려앉는 안개빛처럼 투명해질 수 없는 ‘너’와의 관계에 대한 짙은 아쉬움이 묻어난다. 지금도 그때도 틀리기만 하는 ‘우리’를 알아가는 새로운 방법은 무엇인가.
강간 당한 꿈을 꾸었다
분명 집인데 남자는 침대에 점령군처럼 자고
침대를 뺏기고 서성거렸다
아무리 분간하려 해도 창밖이었다
익숙한 안처럼
슬퍼할 줄도 모르는 낯익은 밤을 배회하고
꿈을 깼다
침대 끝에 미농지 말리듯 오그리고 창 쪽으로 누운 채였다
어둠이 서천의 편이라면
그 많은 어둠 쪽이다
화탕의 환희도 기억나지 않고
마지막 남은 깃발을 꽂고 달리던 서슬 퍼런 철성의 편도 아닌
창 너머는 아직도 깊은 밤이다
반대편으로 돌아눕는다
반대편도 깊은 밤
눈을 감고 체취를 지운다
- 「오! Say no」 부분
이두예 시는 잠재된 체험 속에서 발효시킨 언어로 정서의 유기적인 흐름을 잘 풀어낸다. 화자는 집에서 “강간 당”한 꿈을 꾼 후, 창밖에서 “익숙한 안”처럼 “낯익은 밤을 배회”하고 있다. 자신의 방 침대와 자신을 침범한 점령군은 “화탕의 환희” 후 편안하게 잠들어 있다. 몸에서 마음까지의 합일을 이루지 못한 화자는 반대편 깊은 밤의 침대 끝에서 어둠에 잠긴 창밖을 내다본다(「채널을 돌리다」). 절정으로 치닿던 서슬 퍼런 ‘철성의 편’까지도 돌아누워 지워버리고 싶은 심정임을 토로하고 있다. 이 모든 행위의 배후에는 시내보다 얕고 심해처럼 어두운 ‘우리’가(「불두를 찾아서」) 있다. 화자에게는 가식적인 친밀함보다 6480원의 헐값에 구입한 ‘세이노의 가르침 755쪽’이 “보숭한 횡재”처럼 더욱 크게 다가온다.
화자는 생각을 바꾸는 순간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새들의 소리에 대해 한 번도 웃는다고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굳어버린 사고를 돌아본다. 새가 운 어제 아침에게 내미는 손끝에서 새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오늘, 새들은 우는 것이 아니라 웃는 것이라는 기대에 찬 확신의 심경을 우회적으로 표출한다. 싸게 구매한 책 한 권의 가치와 가식적인 친밀함으로 포장되어 있던 관계를 통해 심층적이고 복합적인 내면 정서를 탐색할 수 있다.
블록조 화장실지붕은 제법 따스해
아카시아 이파리가 언덕을 치고 올라 그늘에 눕는다
바람을 타고 몰려오는 꽃냄새에 얼굴을 찡그린다
가까이, 더 가까이가 이해할 것 같으면서 알 수 없는 거리입니까
거리?
적당히?
입구린내를 맡을 수 없는 거리?
돼지두루치기 간이 엉망이라 행복한 저녁을 망쳤다고?
소금 몇 알 빼야 간이 맞는 걸까?
더 뿌려야 되니?
짜다는 거야? 밍밍하다는 거야?
- 「우리의 농도」 부분
「우리의 농도」에서는 유기적 관계를 맺는 사실적인 장면들이 가깝고도 먼 ‘우리의 거리’에 대한 감각적 경험으로 재생되고 있다. “아카시아 이파리가 언덕을 치고 올라 그늘에 눕”는 늦봄. “꽃냄새에 얼굴을 찡그”리는 화자는 “가까이, 더 가까”이는 이해할 수 있는 거리인지, 알 수 없는 거리인지, 적당한 거리에 대한 정의를 묻는다. ‘적당히’는 관계나 시간, 습관, 경제 등에 수시로 갖다 쓰는 부사어로 ‘중용’의 실천적인 표현이다.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으로 정서적 균형을 내재하고 있다. 우리는 절제하는 태도를 유지하려고 ‘적당히’라는 말을 남발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적당한 기준을 따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소금 몇 알에 따라 간이 달라지거나, 입구린내를 맡을 수 있거나 없는 거리가 적당한지 규정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손 덥썩 주지 않는 철저히 혼자인 밤처럼(「채널을 돌린다」) 서로의 거리는 관계의 농도에 따라 비례하는 걸까?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이 거리는 ‘미슐렝 쉐프’가 “필레미뇽 안심에 5월을 흩뿌리”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가까이”와 “더 가까이”라는 거리에 대한 자연 발화는 이성적 사고를 배제한 자유 의지로 전개된다. 기다리지만 들어선 적 없었던 우리(「6인용 식탁」)처럼 ‘적당한 거리’는 독자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따라가게 만든다. ‘나’는 펫을 쓰다듬듯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 ‘너’의 느린 손놀림에 가만히 머리를 내주고 “히죽 웃”는다. 그 웃음 속에 들앉은 ‘우리의 농도’에서 가까이와 더 가까이의 친근한 거리를 가늠할 수 있을 것도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