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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진 리스 (한참 자고 나면 괜찮을 거예요, 부인 외 5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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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펜으로 맞선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 문학의 선구자, 진 리스

    부조리한 관습에 얽매인 세계와 그 속에서 고립된 약자들의 초상을
    탁월하게 그려 낸 20세기 영국 최고의 명단편 국내 초역

    식민지에서 지배계급이자 소수자인 백인으로 살았던 리스는 인종 간 위계와 그로 인한 갈등을 수없이 목격하며 성장했고, 영국으로 건너간 뒤에는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거나 언어 때문에 연극학교를 중도 포기하는 등 백인 사회에 통합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더해 가부장제가 만든 협소한 울타리 안에서 장식용 꽃처럼 취급되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백인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그녀의 비판적 관점을 더욱 공고하게 했다. 20세기 초, 대다수 여성들은 ‘결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신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일에 전념했고, 그 외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의상 모델이나 코러스 걸, 배우 등 역시 여성성을 상품화한 직업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가세가 기울면서 생계를 위해 이러한 일들을 전전하던 리스는 경제적으로 의존했던 연인과 헤어지고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위태로운 시기를 겪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행했던 첫 번째 결혼이 파경에 이를 무렵 《트랜스애틀랜틱 리뷰》에 단편 몇 편을 발표하며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리스의 단편 세계를 시기적으로 구분해서 살펴보자면, 가장 어려웠던 30대에 집필한 초기작(『왼쪽 둑』에 수록)에서는 주로 리스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여성의 몸을 노골적으로 상품화하는 의상 모델의 세계를 담은 「마네킹」, 빈곤과 굶주림의 고통을 묘사한 「허기」, 여성의 억압된 욕망을 그린 「환상」, 이방인에 대한 적대와 혐오를 다룬 「시디」 등 이 시기의 작품은 허름한 방과 카페, 뒷골목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황폐한 일상과 그런 삶에 대해 느끼는 자조, 환멸, 연민 같은 개인적인 감정들을 짧지만 강렬하게 담아내고 있다.
    나아가 1960년대에 완성하거나 이전에 쓴 소설을 새롭게 다듬은 중기작(『호랑이는 멋지기나 하지』에 수록)에서는 보다 넓은 시선, 즉 여성 혐오를 조장하고 약자 간의 대결을 부추기는 사회구조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풍자가 더해져 작가로서 한층 원숙해진 면모를 보여 준다. 리스의 단편들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재즈라고 하라지」에는 집도 돈도 잃고 절망에 빠진 여자에게서 마지막 위안거리인 노래마저 빼앗아 상품화시켜 버리는 비정한 현실이 그려진다. 또한 서로 공감하고 연대해야 할 여성들을 경쟁으로 내몰아 오히려 반목하게 만드는 왜곡된 사회에 대한 묘사는 리스가 당대의 현실을 얼마나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분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러한 삶 속에서 약자들이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다. 리스는 희망 없는 현실을 집요하게 다룸과 동시에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작중 인물의 억눌린 욕망과 절망, 고립감 등을 탁월하게 그렸다. 이는 주로 노년에 접어들어 집필한 후기작(『한잠 자고 나면 괜찮을 거예요, 부인』에 수록)에서 빛을 발한다. 이 무렵의 작품들에는 약자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여성으로 나이 들어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곳곳에 녹아 있다. 사회로부터 완전히 밀려나 병원 문을 나서면 더 이상 갈 곳조차 없는 어느 여성을 그린 「기계 밖에서」나 주변과의 소통이 완전히 단절된 채 홀로 쥐를 보고 두려움에 떠는 「한잠 자고 나면 괜찮을 거예요, 부인」에서의 노부인이 겪는 심리의 묘사는 ‘상품성’이 떨어져 ‘기계 밖으로’ 버려지는 것, 즉 늙어 감에 대한 공포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리스는 30~40대에 의욕적으로 창작에 매진해 단편을 비롯하여 『사중주』(1929), 『어둠 속의 항해』(1935) 등 걸출한 작품을 다수 발표했는데, 그녀가 다룬 독특한 주제와 모더니즘적 기법들은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음에도 보수적인 당시 사회 분위기상 대중들로부터는 그리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한밤이여, 안녕』이 BBC 방송으로 각색되는 것을 계기로 1950년대부터 본격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1966년에 발표한 장편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면서 리스는 문학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확고한 명성을 얻는다. 그녀의 소설은 한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비추어 주는 작품”(가디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그녀가 평생에 걸쳐 쓴 단편들은 진 리스 문학의 백미를 넘어 ‘20세기 최고의 단편’으로 꼽힌다.

    "진 리스의 단편은 대부분 삶의 장면들을 그대로 내보이는 식이라 독자들은 소위 ‘따뜻한’ 시선이나 긍정적 가치로 상쇄되지 않은 고되고 팍팍한 삶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특히 사회적 지표 면에서 비교도 안 되게 여성의 지위가 신장되었다는 지금도 상황은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여기 그려진 가차 없는 여성의 자화상은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환상」의 브루스 양이 상상 속에서 화려한 여성적 삶을 살면서 겉으로는 금욕적이고 지적인 삶을 산다면, 우리는 반대로 소비자본주의가 조장하는 소비적 여성의 삶을 살면서 그것이 지적이고 자기 주체적인 삶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환상을 걷어 내는 일은 고통스럽고 그래서 리스의 단편을 읽는 일이 때로 버거운지도 모른다." _ 「옮긴이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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