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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공선옥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3년, 대한민국 전라남도 곡성 (염소자리)

직업:소설가

기타: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중퇴했다.

최근작
2024년 4월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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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

인생은 이렇게 걷는 거야. 두려워할 것 없어. 걷다 보면 당도하는 곳이 있게 마련이지. 우리같이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오직 걷는 것, 누구의 힘도 빌릴 것 없이 오로지 내 튼튼한 두 발로 내 앞에 떨어진 인생길을 타박타박 걸어가는 것, 거기에서 힘이 나오는 거라구. 그 흔한 탈것 한번을 안 타고, 말 그대로 누구의 도움 하나도 구하지 않고 의연하게, 당당하게. 공것은 원하지도 않고 그저 내 한발 내딛는 딱 그만큼씩만 얻으며.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꽃향기만으로 가슴 설레는, 그 고운 청춘의 시절에, 그러나, 나는, 그리고 해금이는, 해금이의 친구들은 참 슬펐다. 속절없이, 속절없이, 꽃향기는 저 혼자 바람 속에 떠돌다가, 떠돌다가 사라지고 나는, 해금이는, 해금이 친구들인 우리는, 저희들이 얼마나 어여쁜지도 모르고, 꽃향기 때문에 가슴 설레면 그것이 무슨 죄나 되는 줄 알고, 그럼에도 또 꽃향기가 그리워서 몸을 떨어야 했다.

라면은 멋있다

그 어떤 현재도 잘못이 아닌 한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사춘기를 당당히 보내시길.

멋진 한세상

'그것은 인생'의 소년을 만난 적이 있다. 애초에 소설을 쓰기 위해서 누구를 만난 적은 없다. 다만 나는 소설가이고 소설을 써서 벌어먹는 사람이라, 소년의 참혹한 현실을 소설로 쓰는 일 이외의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소설을 써서 벌어먹고 사는 일에 대해 이따금 회의감이 밀려왔다. 과연 소설이 그 소년이 처한 현실을 바꾸거나 혹은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고민도 하고 괴롭기도 했다. 그러나 나 또한 '가난하고 외롭기'는 소년하고 다를 바 없는, 작고 힘없는 소설가일 뿐이라고 나는 나를 위로했다. '정처 없는 이 발길'의 갑생씨는 용담댐 수몰지에서 만났다. 나는 그에게 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라고 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그러나 그는 내 소설을 읽지 않는다. 읽지 않는 이유야 몇가지가 되지마는, 그 이유 중에는 그가 처해 있는 현실이 내가 쓴 소설보다 더 기가 막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처해 있는 현실이 갑생씨보다는 덜 기막힌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어찌됐든, 이 소설집을 사 읽으실 독자들이여, 인생에 '인'자도 모를 나이에 인생 운운해버리는 소년이나 정처 없는 발길로 정처를 찾아헤매는 이 땅의 갑생씨들을 부디 잊지 말아주세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못난 글들을 모아 소설집을 만들어준 창작과비평사에 무궁한 발전 있기를...

명랑한 밤길

내 글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나는 내 흔들리는 초상을 본다. 나는 확실히 화려한 정원에서 보호받고 주목받는 꽃과는 인연이 먼 사람임이 분명하다. 나는 다만 그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 바람 부는 길가에서나마 피었다 지고 피었다 지고 하면서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만이 부를 수 있는 작고 고운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 그들 옆 한귀퉁이에 사는 작가인 나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귀기울이며 조금은 행복하지 않을까. 그들처럼 나 또한 작고 고운 노래 한번 부를 용기를 내지 않을까.

붉은 포대기

생각해 보면, 우리를 가위눌리게 하는 것은 '예기치 않은 생명'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생명의 탄생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조건들이 아니겠는가. 그 조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우리 사회가 화해로운 관계를 이루지 못했다는 반증이리라. 화해로운 세상을 이루기에는 내가 가진 포대기가 너무 낡은 것인가. 새로운 '포대기' 정신을 기다려 본다.

선재의 노래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아닐까. 이 글의 주인공 선재처럼 나도 작년에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을 겪었다. 깊고 깊은 슬픔 속에서 선재 이야기를 썼다. 글을 쓰면서 나는 선재가 되었다. 육십 살 나는, 글을 쓰면서 열세 살이 되었다. 선재는 글 밖으로 나와 내 등을 쐐애, 쐐애, 쓸어 주었다. 슬픔이 슬픔을 어루만져 주었다. 선재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디 가서 울 수 있었을까. 슬픔은 또 다른 슬픔에게 안식을 준다. 내 슬픔 속에 들어와 쉬라고, 편한 자리를 내준다. 열세 살 선재의 슬픔에 육십 살 내 슬픔이 기대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났다. 그리고 다시 봄이다. 사방에서 꽃이 피고 새 움이 돋는 봄이 왔다.

수수밭으로 오세요

내게 세상은 온통 상처투성이처럼 보인다. 개인이 개인에게 주는 상처, 역사가 개인에게 주는 상처, 개인이 역사에게 주는 상처들. 그리고 그 상처의 대부분은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에게 가해진 것들이다. 그리고 힘없는 사람들은 또 그들끼리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밖에서 상처 입은 사람이 안에 들어와서 자신이 받은 꼭 그만큼의 상처를 자신보다 힘없는 누군가에게 또 입히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실. - 작가의 말 중에서

엄마

모든 엄마들은 다 저렇게 아기 낳아놓고 퉁퉁 부어서도 아기한테 젖 물리고 아기 기저귀 갈아주고 아기 울면 안아주고 밤에도 잠 못 자는데. 내 엄마나 네 엄마나 한가지로, 우리는 모두 그런 엄마를 가졌는데. 아무리 흉악한 범죄라도, 아무리 성스런 성자도 그 어머니들은 모두 한가지로 아이를 낳아놓고 퉁퉁 부은 몸으로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가셨을 것이다.

영란

‘지금 슬픈 사람’들이 자신의 슬픔을 내치지 않기를 바란다. 외면하지 말기를 바란다. 슬픔을 방치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는 슬픔을 돌볼 시간이다. 내 글의 독자들이 슬픔을 돌보는 동안 더 깊고 더 따스하고 더 고운 마음의 눈을 얻게 된다면, 그리하여 더욱 아름답고 더욱 굳건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슬픔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 사람으로서, 많이 기쁠 것이다.

울지 마, 샨타!

지금도 우리 나라 곳곳에는 땀 흘려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들을 따뜻한 이웃이라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어디서 왔건 무슨 일을 하건 모두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친구가 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온 세계 사람이 나의 친구입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 뿐이니까요. 마음을 열면 세상도 그만큼 넓어지는 것입니다.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글을 묶어놓고 보니 아득한 꿈결 같다. 산과 논과 밭 속에 파묻힌 곡성에서의 생활들이 글 속에 녹아들어 있다. 그곳에서의 생활들이 꿈결 같다. 꿈결 같은 그곳에서의 생활을 접고 이제 나는 먼 바닷가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한 고장에 오래 뿌리내리고 살고 싶었던 내 오랜 소망은 여태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내 맘대로,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삶을 원망하자면 한정없고 부질없는 짓일 터이기에 나는 이제 낯선 고장에서의 새로운 둥지 틀기에 나름대로 애를 쓸 작정이다. 그곳이나 이곳이나 사느라고 애쓰는 사람들 모습은 똑같지 않은가. 더군다나 새끼 거느린 어미일진대, 두말해 무엇하랴. 어부들이 밤새 잡아온 고기를 새벽시장에 나가 싼값에 몇마리 구해왔다. 돈도 안 받고 그냥 주려는 걸 굳이 돈 천원 주고 왔다. 아이들 입에 구수한 고깃국물 들어갈 걸 생각하니 고기 손질하는 손이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새벽시장에 일하러 나온 저 사람들도 다들 새끼 키우는 사람들일 것이다.

행복한 만찬

'행복한 생장'을 한 먹거리들은 그것을 먹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세상 먹거리들의 생장 조건은 갈수록 불행해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먹고 살아도 우린 정말로 괜찮을까? 먹을거리들의 불행한 생장 조건이 불안하다면, 맛있는 것과 몸에 좋은 것만을 찾는 습관을 버릴 일이다. 나는 그것을 말하고 싶어 여기에 이 '맛있는 것들'을 소개하는 글을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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