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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날을 함께 했던 만화책 속 한 줄 대사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 등의 시집을 통해 한 개인의 실존적 조건을 자기만의 언어로 형상화해 오고 있는 시인 김상혁은, 매년 수십 권의 장편 만화를 재독, 삼독하는 만화 팬이자 잡지에 만화 리뷰를 연재하는 리뷰어이기도 하다. 이런 그가, 어린 날 마음껏 읽고 마음껏 웃었으며 그러다가 마음껏 잠들며 함께한 만화책을 다시 읽어 첫 에세이집을 냈다. 이 에세이에서 그는 짧은 만화 대사에 주목해 만화책을 읽는 새로운 읽기 방법을 취한다. 시인이 주목한 대사는, 때로는 시인의 삶의 이야기가 되고 때로는 세상사, 인간사에 대한 사색이 되고 때로는 시론이 된다.
한 시대를 말 그대로 주름잡은 《슬램덩크》의 한 줄 대사 “가까우니까.” 왜 하필 북산고 농구팀에 갔나고 따지는 상대팀 감독의 질문을 성의 없이 받아친 서태웅의 대사는, 시인에게 ‘멀리 사는 가까운 친구’의 추억을 소환한다. 시인은 어린 시절 잦은 이사로 죽마고우를 만들기 어려웠고 사람 마음이 고작 도시 몇 개도 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허무하다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어, 생활에 시달리며 우정이니 사랑이니 신경 쓸 겨를도 없던 어느 날 시인을 찾아 먼 길을 찾아온 친구가 있었고, 시인은 지금까지도 그의 마음을 잊은 적이 없다. 그 친구는 이제 주변에 살게 되었고 근래 시인과 그 친구는 더 친해졌는데, 그 이유를 묻는다면 당연히 “가까우니까”이다.
탐험가 토르핀의 일대기를 그린 만화책 《빈란드 사가》에서 던져진 ‘부모가 자식을, 부부가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대체 뭐냐’는 질문과 ‘그것은 차별’이라는 대답은, 시인을 사랑의 본질에 대한 사색으로 이끈다.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빈란드 사가》의 주장, 인간의 사랑이 모두 차별이라는 주장은 아예 엉뚱한 소리는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자식을 아끼는 태도이니 차별이 맞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시인은 우리에게 묻는다. 저 숭고한 사랑이 고작 차별의 다른 이름이었다고 절망해야만 할까?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그러니까 신이 모두에게 일일이 아침 인사를 건넬 수 없어서, 모든 길짐승을 위해 밥과 물을 줄 수 없고, 모든 아들딸을 병원까지 차로 데려다줄 수 없어서, 이리도 수많은 인간을 지은 게 아닐까. 차별처럼 보이는 그 사랑을 서로 해보라고. 차별이 무서우면 사랑도 없다”고.
《클레이모어》의 대사를 통해서 시인은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사색하고, ‘사람은 그냥 죽지 않는다’고 결론 내린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뭐가 뭔지도 모르게’ 죽었다면, 남겨진 우리는 그러한 죽음을 끝내 떨쳐낼 수 없을 것이고, 제대로 슬퍼하려면 살아남은 사람은 그 죽음의 이유를 알아야만 한다고 시인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냥’ 죽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치병에 걸린 바이올리니스트 소녀의 대사, “무대 밖에서의 것으로 마음이 차오르는 게, 왠지 우스워”에서, 시인은 예술가라는 존재가 무대 밖에 존재하는 일상의 욕망과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 있는지를 일러주는 통찰을 발견한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의 이 한 줄 대사에서 시인은 비일상적이고 비범한 예술의 경지는 언제나 일상적인 손끝에서 구현되는 것이라는 예술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