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돌던 10대의 윤단비는 광주극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175쪽) 그 시절의 윤단비처럼 외로운 소녀 '옥주'의 눈빛을 클로즈업하는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2020년 8월 개봉해 팬데믹에도 불구, 2만 명의 관객을 극장에서 만났다. VOD 개봉을 늦추고 가급적 오래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 이 영화에 대해 손희정은 "<남매의 여름밤>다운 선택"이라는 평을 덧붙인다. <다시, 쓰는, 세계> 손희정이 만난 여성영화의 우주. 2019~2020년 장편 극영화를 선보인 여성감독 13인(김도영, 윤가은, 김보라, 장유정, 임선애, 안주영, 유은정, 박지완, 김초희, 한가람, 차성덕, 윤단비, 이경미 감독)과 나눈 이야기를 엮었다.
"중학교의 '왕따 교사' 미숙(<미쓰 홍당무>)의 영웅버전이기도 한 은영(<보건교사 안은영>)은 <비밀은 없다>의 연홍이 하고자 했지만 해내지 못했던 일을 해낸다."(189쪽)는 손희정의 해설과 함께 우리 안의 '이경미론'이 풍성해진다. 이경미의 영상물 특유의 '덜컹거리는' 질감의 기원을 떠올려본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씩씩함을 사랑한 2020년의 관객의 시선이 2008년 개봉한 영화 속 공효진의 새빨간 볼을 향해 거슬러 올라갈 때, 우리의 계보에 대한 깊은 사랑과 함께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다시 만난 세계> 중)지는 벅찬 기쁨을 함께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독자에게 전하는 손희정의 러브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