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런던, 오스카 와일드가 노란 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있다가 체포됐다. 죄목은 ‘음란죄’. 무슨 영문일까? 당시 프랑스 선정주의 소설들이 노란 표지였던 탓에 노란색이 퇴폐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흐를 비롯한 화가들에겐 빅토리아 시대의 억압을 거부하는 색이기도 했다. 색감에 대한 인식은 시대와 사회상에 따라 변해 왔다. 예컨대 ‘소녀는 분홍, 소년은 파랑’이라는 생각도 백년 남짓 된 고정관념이다. 20세기 중반 미국 매체들을 보면 핑크는 단호하고 강인한 색이라서 남자아이에게 어울리고, 블루는 섬세하고 앙증맞은 색이라 여자아이에게 어울린다는 글이 실려 있다.
우리는 12색 세트, 많아야 64색 세트 물감에 익숙하지만, 모든 색에는 자신만의 이름이 있다. 파랑만 해도 울트라마린, 코발트, 인디고, 세룰리안 등으로 촘촘히 나뉜다. 이 책은 영국 여성의복학자인 저자가 <엘르 데코레이션>에 연재한 '색상 칼럼' 중 대표적인 75색을 엮은 것으로, 각 색상의 탄생과 상징 등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역사, 사회, 문화, 정치를 넘나들며 펼쳐진다. 페이지마다 각 색상이 인쇄되어 있어 약식의 컬러칩 역할도 거뜬히 소화한다. 와인색 ‘티리안 퍼플’ 이 어떻게 왕족의 색이 되었는지, 카키색이 왜 군인을 상징하고 고흐가 빛을 담으려 했던 '크롬 옐로'는 왜 해바라기를 시든 모습으로 보이게 하는지, 허먼 멜빌이 ‘모비 딕’에서 그토록 묘사하고자 애쓴 고래의 흰색은 어떤 색인지 이 책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