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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그 (윤해서 중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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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 언어 예술의 새로운 지평과 마주하다.
    윤해서 신작 중편소설

    한국문학의 실험 소설 계보를 이어가는 윤해서의 신작 중편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와,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문학과지성사, 2017)와 중편소설 『암송』(아르테, 2019) 그리고 주체와 타자에 관한 소설적 반성을 완성한 장편 『0인칭의 자리』(문학과지성사, 2019)를 발표한 윤해서 작가의 신작 중편소설이 독립 문학 단체인 사단법인 문학실험실의 〈틂-창작문고 시리즈〉의 11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0인칭의 자리』가 “화자의 자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점묘화처럼 제시”하면서 “시점을 수시로 바꾸는 형식을 통해 이른바 ‘타자(他者)되기’와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것”(씨네 21 서평 중에서)이었다면, 이번 신작 소설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타자를 지우는 방식의 소설 쓰기”라는 소설 실험의 한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서사물의 입장에서라면 다소 의외일 수 있는, ‘타자화가 존재하지 않는 작품’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대상을, 인물을, 타자화하지 않음으로써, 독자는 타자를 통해 자신을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하는 자신이 작품 안에 존재해야 하는, 전도(顚倒)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독자는 작품 속에서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의 형체를 인지해 가게 된다. 이것은 누구라도 내가 될 수 있다는 일반적 범주의 객체화가 아니라, 사건 밖으로 튀어나온 ‘그(나)’와 동접할 때만이 글 읽기의 지속성이 가능해지는, 일종의 텍스트를 통한 ‘들림 현상’의 구체화이다. 그리하여 사건은 무위, 무화되지만, 체화된 ‘그(나)’는 삶의 본질적인 촉감, 이물감, 안도감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야 하는 자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냥 그런. 어떤 우연은 필연이 되고 어떤 필연은 우연이 되기도 하겠죠.”
    윤해서의 신작 중편은 사건과 사건을 받아들이는 의미는 사라지고, 읽는 자를 향한, 읽는 자의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살아돌아옴을 목도해야 하는 소설이다. 여기에서 이른바 전통적인 서사적 사건은 존재할 수 없다. 오로지 서술 자체가, 문장 자체가 사건이다. 우리가 익히 알아온 ‘타자화된 서사’는 힘을 잃고 형체를 잃는다. 윤해서의 작품에서 서사는 읽은 자의 기억의 강바닥에 눌어붙은 단단한 진흙과도 같다. 화면 속과 카메라의 눈과 창밖의 세계가 아닌, 자신의 내면의 강바닥을 긁어 올릴 때, 사건은 형체를 가지며, 그때서야 서사는 마치 맑은 물속에서 퍼져나가는 탁한 뭉게구름처럼 우리의 의식 속에서 피어오른다.

    “‘그’와 ‘그’ 사이에서, 혹은 ‘나’와 ‘나’ 사이에서”
    윤해서의 신작 중편소설에는 마치 평행우주처럼 두 개의 ‘그’가 존재한다. ‘같은 서사의 두 개의 의미’로도 읽히고, ‘같은 의미의 두 개의 서로 다른 서사’로도 읽히는 이 형식 실험은,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찾아오는, 심미적 충격에 비하면 그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거듭 이 두 차원의 평행성은 인칭이나 타자화에 관한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삶과 문장(관습적 언어) 사이의 불화가 어쩌면 우리 삶의 가장 근원적인 비극일지도 모른다는 자책으로부터, 내 안의 타자를 발견함으로써 그 타자와 더불어 감성(희노애락)의 무한한 평형 상태를 유지할 무기를 얻게 되었다는 몽상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은 새로운 소설 읽기의 지평을 열어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일상을 통해, 혹은 미디어를 통해 우리 세계를 향해 질문한다. 그것은 특별한가? 아니면 그것은 평범한가?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형성의 비정형화는 시시때대로 순간적으로 이뤄진다. 반대로 비정형성의 전형화 또한 손바닥을 뒤집 듯 일상적이다. 우리 삶은 이 두 변화를 마주보며 오르락내리락하는 시소 놀이와도 같다고 할 것이다. 윤해서의 소설은 그 시소 놀이의 정점의 상태를 포착한다. 독자는 그 정점의 상태에서 ‘그(나)’를 목격함과 동시에 텍스트 밖으로 튕겨져 나와 하강과 상승이라는 가속의 구간으로 급격하게 내몰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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