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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015
  • 1그램의 용기
    한비야 (지은이) | 푸른숲 | 2015년 2월 "한비야가 보내는 응원 메시지"

    <그건, 사랑이었네> 출간 이후 6년 만에 한비야가 아홉 번째 책을 펴냈다. 서른셋, 승진을 앞두고 육로 세계 일주를 떠났고, 마흔둘, 긴급구호 팀장으로 세계 곳곳의 재난 현장에서 일했으며, 쉰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즐겁고 자유롭게, 그리고 치열하게 가슴 뛰는 삶을 살아온 한비야. 수많은 청년들에게 도전과 희망의 아이콘인 그녀도 한 발 한 발 앞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1그램의 용기가 필요했다고 한다.

    지난 6년 동안의 삶의 기록을 담은 이 책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삶의 원칙, 힘들지만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그녀만의 방법, 구호 현장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나눈다. 편안한 문체로 풀어낸 온기 가득한 이야기들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망설이는 이들에게 1그램의 작은 용기를 불어넣는다.

  • 심리정치
    한병철 (지은이), 김태환 (옮긴이)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용기 있고 '지혜로운 바보'의 지혜"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한국인이면 누구나 자기를 착취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즉각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리정치>를 간결하게 정리한 다음 문장 역시 마찬가지다. “억압 대신 친절로, 금지 대신 유혹으로 개인을 조종하는 신자유주의적 심리정치.” 한병철의 저작이 꾸준히 소개되며 독자에게 호응을 얻는 까닭은 제목에 그대로 드러나는 결론 때문이 아니라(그의 저작 제목은 분석의 결과가 아니라 분석의 대상이라 하겠다), 현실과 이론을 종횡으로 넘나들며 우리가 이미 몸으로 알고 있는 세계의 특성을 간명하고 솔직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자본과 신자유주의가 거의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 받는, 문제와 사고의 과정마저도 그 안에 포섭된 오늘을 설명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착취 가능한 자유이고, 자유를 위해 자유를 희생시키며 자유에 종속되었다는 걸 깨닫는 데에, 심리와 감정이라는 지속 상태에 머물지 못하고 기분과 흥분의 연속과 단절을 불안하게 이어 붙이며 기분마저 소비하는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도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한병철은 이런 예속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바보에게서 찾는다. 사유는 백치 상태 속에서만 사건에서 이탈할 수 있고, 정보와 자본이 요구하는 동일성을 방해할 수 있다. 이렇듯 “지혜로운 바보”의 지혜 역시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남은 건 과연 스스로 바보가 될 용기가 있느냐는 건데, 바보가 되지 않으려 끊임없이 노력해도 바보 되기 쉬운 오늘이니, 오히려 한 발 앞서 용기를 내보는 건 어떨까. "용기 있고 지혜로운 바보"가 되는 일 말이다.

  • 그림의 힘
    김선현 (지은이) | 8.0 | 2015년 3월 "우리를 변화시킬 놀라운 그림들"

    세계미술치료학회장이자 차병원 임상미술치료클리닉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약 20년간의 연구와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그림들을 모았다. 모두 사람들에게 오랜간 사랑을 받으며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어루만져주었던 '명화'들이다. 그 중에서도 치료 현장에서 가장 효과가 좋았던, 89장의 그림을 엄선했다. 직장인, 임산부, 치매나 우울증 환자, 청소년, 아동 등 남녀노소 두루 힘을 발휘했던 그림들이다.

    크게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영역- 즉 일, 관계, 돈, 시간, 나를 나누어 이 영역에 있어 만족도를 높일 수 있게 돕는 그림과 설명으로 구성했다. 딱히 설명을 보지 않아도 좋다. 원하는 주제를 찾아 그저 가만히 책장을 펼쳐보기를 권한다. 이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하는 그 잠깐의 시간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스트레스를 가라앉혀주기도, 돈과 시간에 더 여유를 품을 수 있게도 도울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이밖에 명화를 손수 변형하는 작업이나 스스로를 더 잘 알아보기 위한 테스트 등을 중간중간 삽입해 흥미로운 읽을거리 역시 부족함 없이 담았다.

  • 고양이 낸시 (스티커 포함)
    엘렌 심 (지은이) | 북폴리오 | 2015년 2월 "'다름' 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의 행복한 만화"

    트위터를 통해 소소하게 선보인 그림들로 이미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고양이 낸시>가 책으로 출간됐다. 쥐들이 모여 사는 마을, 담요에 싸인 채 버려진 아기 고양이 낸시를 더거씨와 그의 아들 지미가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평화로운 쥐들의 마을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인 고양이, 낸시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더거씨와 지미, 그리고 결국엔 낸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귀엽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가족애, 우정과 관용 등 이 만화에서 떠오르는 단어들은 제법 심심해서 어쩌면 이 책에 대해 뻔하다는 인상을 심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단어들의 조합으로만 재단하기에 이 책은 정말로 사랑스럽고 읽는 이로 하여금 행복감을 안겨준다. 문득 작가의 눈에 비친 세상이 이와 같을 것 같아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 당신, 행복이 뭔지 되묻는 당신에게 주는 선물과 같은 책이다.

3.62015
  • 불멸에 관하여
    스티븐 케이브 (지은이), 박세연 (옮긴이) | 엘도라도 | 2015년 3월 "죽음에서 찾아낸 불멸의 가능성"

    굳이 소크라테스를 불러내지 않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비관적으로 보면 인생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으로 향하는 일이기도 하다. 죽음이 이렇게 자명한데 불멸을 이야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불멸을 꿈꾸는 데 힘을 쏟기보다, 죽기 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게 온당한 태도 아닐까. 개인 단위로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시야를 넓혀 인류 문명, 인간 종의 생명으로 바라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스티븐 케이브는 죽음을 넘어서려는 인간의 마음을 불멸의 욕망이라 부르며, 여기에서 종교, 철학, 도시, 예술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멀리 길가메시에서 시작해 진시황제, 프랑켄슈타인, 달라이 라마까지 동서고금의 불멸 이야기를 찾아나선 그는, 죽음을 넘어서려는 인류의 시도를 네 가지로 나눈다. 육체적으로 생존하거나, 부활하여 되살아나거나, 영혼으로 존재하거나, 유산으로 기억되는 방법. 이 네 가지 이야기에서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건 죽음일까, 불멸일까. 속단하지 말자. 앞서 말했듯 당신의 죽음과 불멸을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성취의 원동력이 불멸을 향한 욕망이라면, 앞으로 펼쳐질 가능성 역시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일 테니까.

  • 목격자들 1
    김탁환 (지은이) | 민음사 | 2015년 2월 "조운선 침몰 사건, 백탑파 미스터리 "

    이야기는 '사고'에서 시작한다. 전국의 조운선이 동시에 침몰하는 기이한 사고가 발생했다. 조선 명탐정 김진은 동료들과 함께 임금의 은밀한 어명에 따라 침몰 사건의 진실을 향해 접근한다. 그리고 조운과 세곡을 둘러싼 이권과 탐욕이 무고한 생명을 숱하게 앗아간 것이라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김진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던 이들 홍대용, 이명방 등은 안개가 가득한 바다 위에서, 이 사건의 전모를 명백히 밝히기 위해 조운선과 자신들의 운명을 하나로 엮어 위험한 함정을 파게 되는데.

    영화 <조선 명탐정>의 원작 시리즈이기도 한, <열녀문의 비밀>, <방각본 살인사건>, <열하광인>의 백탑파 시리즈의 새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내가 만든 탐정과 함께 늙어가고 싶다"고 말했던 작가 김탁환이 자신의 탐정 '김진'을 다시 불러내 정조 시대에 벌어졌을 법한 사건에 말을 건넨다. 2014년 5월, 작가는 '사건' 이후 이 소설의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탐정이 사건의 실마리를 캐내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데 성공할지라도, 사회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채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다. 그리고 '목격자들'도 아직 그곳에 있다. 진실을 보는 밝은 눈과 함께.

  •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어떻게 기본을 실천할까
    도쓰카 다카마사 (지은이), 장은주 (옮긴이)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2월 "기본은 실천할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

    2014년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기본에 집중할까> 저자의 두 번째 책이다. 골드만 삭스, 맥킨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의 경험을 통해 전작에서 '왜' 기본에 집중해야 하는지, 그 중요성을 일깨웠다면 이번 책에서는 그럼 이제 '무엇을', '어떻게' 회사 생활과 일상에서 실천할 것인가에 대해 다룬다.

    스스로 자신감을 키우는 360도 평가법, 후회를 자신감으로 바꾸는 사고 전환법, 몸과 마음을 최상으로 컨디션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시간 활용법과 주말을 이용한 자기 투자법, 다양한 업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5분 업무술 등을 알려주며 일상에서 자신감과 실력을 쌓아가는 작지만 결정적 행동들, 차이를 만드는 핵심 노하우를 정리했다. 전작에서도 돋보였지만, 세계 최고라고 손꼽히는 곳에서 수학하고 일해본 저자의 경험과 분석,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지침을 이번엔 더 구체적으로 실었다. 기본을 챙겨야 한다는 말과 다짐들은 늘 있었고 또 쉽다. 그러나 대다수가 그 주위만을 맴돌다 지치고 만다. 기본을 확인하고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이 책의 구체적 방법들이 일상에 작은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 행복만을 보았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은이), 이선민 (옮긴이) | 문학테라피 | 2015년 3월 "인생의 가치는 얼마인가"

    보험업은 재물이나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일을 한다. 인생을 돈으로 바꾸는 일은 아무래도 냉혹한 작업이다. <행복만을 보았다>의 주인공 앙투안은 오랫동안 그 일을 해 왔고 어느새 자신의 성격도 그처럼 냉정하고 무덤덤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삶을 손해사정사의 눈으로 바라본다. 나의 인생은 얼마인가. 냉혹한 질문이 자기자신을 향했을 때에야 그는 비로소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깨닫는다. 앙투안은 견딜 수가 없다. 무너져버리고 만다. 겉으로는 아무 부족함이 없던, 도리어 행복했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딸을 총으로 쏜다. 그리고 모든 것이 무너졌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갈라진다. 정신질환 상담을 받는 앙투안의 시점과 사랑하던 아버지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살인 미수를 경험한 조세핀의 시점이 지옥같았던 날을 기점으로 나뉜다. 무너진 채로 모든 걸 다시 재건해야 한다는 점에서 둘은 똑같지만, 한 명은 참회와 속죄를 이뤄내야 하고 다른 한 명은 증오와 환멸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내면서 다시 자신있게 일어설 수 있을까. 2014년에 프랑스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이 작품이 주는 감동은 이미 여러 차례 봐 왔던 종류의 것이지만, 그만큼 이 주제야말로 소설의 영원한 소재라고 생각하는 쪽이 좋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좀 더 잘 살아가고 싶다는,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3.102015
  • 경영의 모험
    존 브룩스 (지은이), 이충호 (옮긴이), 이동기 (감수) | 쌤앤파커스 | 2015년 3월 "비즈니스, 그 영광과 고난의 역사"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자신의 홈페이지와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추천하면서 43년 만에 다시 출간된 책이다. 1969년 출간 당시 '압도적으로 뛰어나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뉴요커> 금융 부문 저널리스트였던 저자에게 제럴드 롭 상(비즈니스.금융 부문에서 뛰어난 기자에게 수여하는 상)을 안기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91년. 워렌 버핏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빌 게이츠는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그에게 제일 좋아하는 경영서를 물었다. 그리고 조금의 주저 없이 돌아온 답은, 예상과 같다. 워렌 버핏에게서 책을 받은 이후로만 20년, 초판 출간 이후로 헤아리자면 4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이 책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단언하며 '내가 읽은 최고의 경영서'라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고, 결국 43년 만에 책은 다시 살아났다.

    책은 주식 시장, 세금, 신제품 개발, 기업 협력과 같은 경영의 역사에 각인된 흥미진진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기업가 본연의 정신, 기업의 내부 소통 문제처럼 시간이 흘러도 풀리지 않는 숙제들에 얽힌 상징적인 사건들을 깊이 파고든다. 오랜 취재와 연구를 바탕으로 경영에 한정하지 않고 문학과 예술, 역사와 사회로 뻗어나가 이야기를 엮어내는 저자의 솜씨가, 책의 상당한 볼륨에도 불구하고 흐트러짐 없이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인간의 가장 볼품없는 면과 장엄한 면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가치를 창조하는 변하지 않는 원칙들에 관해 눈물나게 풀어놓기도 하며 비즈니스 역사의 굴곡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최진석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노자를 오늘, 다시 불러내야만 하는 까닭"

    공자와 노자는 동양문화권에서 가장 자주 호명되는 철학자다. 게다가 둘은 대척점에 놓여 비교되기 일쑤다. 보통 공자는 인위에 기반한 문화론자로, 노자는 무위에 기반한 자연론자로 해석되는데, 이런 해석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에도 끝이 없다. 두 철학자가 살던 시대가 오늘과 다르기에 해석이 분분할 테고, 두 철학자가 마주하고 해결하려던 문제는 여전하기에 끊임없이 이름이 불릴 텐데, 철학자 최진석은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왜 굳이 노자를 선택했고, 그 사상을 어떻게 해석한 걸까.

    최진석은 우선 동양사상의 큰 줄기를 짚어가며 노자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무언가를 하자고 주장한 게 아니라 나름의 방법을 제시하며 그것을 하자고 주장했다는 말인데, 이념보다 일상에서의 삶에 주목하고, 개인을 구조 속에 통합하는 조직보다는 자발적 개인의 자율적 통합을 강조하는 노자의 사상이 각자의 특성보다 표준화를, 구체적 실재보다 이념을 중시한 기존의 사회 시스템을 넘어설 방법이라 해석한다. 거대 국가 시스템으로 이행하던 노자 시대와 거대 국가 시스템이 한계에 이른 오늘 시대가 맞닿아, 노자를 불러내야만 했다는 말이다. 이런 시선은 당연히 사회 시스템에 그치지 않고 개인으로 연결되는데, 자신을 시스템의 일원, 즉 일반명사로 방치하지 말고, 개별자의 자발성이 발휘되는 고유명사로 살려내라는 결론에 이른다. 최진석의 적극적인 해석 속에서 비로소 노자 철학이 오늘의 철학으로, 노자가 현대 철학자로 되살아나는 듯하다.

  • 너는 모른다
    카린 지에벨 (지은이), 이승재 (옮긴이) | 밝은세상 | 2015년 2월 "언제나 고통이 진실을 짓누른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철창 안이다. 브누아 경감은 이 황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자 과거를 되짚어 본다. 어젯밤 만난 여자의 집으로 와서 술을 마신 이후는 기억나지 않았다. 이내 그를 가둔 여자, 어젯밤 만났던 여자가 찾아온다. 여자는 아주 오래 전 있었던 참혹한 사건에 대해 브누아 경감에게 자백을 요구한다. 경감은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고문이 시작된다. 경감은 고문을 받는 와중에도 생각한다. 이 여자에게 자신이 범인이라고 제보한 사람은 누구인가? 하룻밤 잠자리 후에 싹 정리한 수많은 여자들 중 한 명일까? 아니면 정말로 기억나지 않는 어떤 사건이 있었을까? 고문은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단서는 너무 부족하다. 진실이 무엇이건 그냥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고 죽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나 퍼즐은 그때부터 짜맞추어지기 시작한다.

    프랑스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신예 스릴러 작가 카린 지에벨의 대표작으로 코냑추리소설대상, SNCF추리소설대상, 엥트라뮈로스 상, 로망느와르소설 페스티벌 대상 수상작이다.

  • 새의 감각
    팀 버케드 (지은이), 커트리나 밴 그라우 (그림), 노승영 (옮긴이) | 에이도스 | 2015년 2월 "새에 대한 호기심, 인간에 대한 호기심"

    새에게 후각이 있을까? 미각은 어떨까? 그렇다면 촉각은? 최근까지도 새에게 후각, 미각, 촉각이 없다고 알려졌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막상 새를 제대로 살펴본 적도 없으니, 그리 믿을 수밖에 없겠다. 이 책은 (방식은 다르지만) 인간과 새가 공유하는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을 인간이 어떻게 이해해왔는지에서 시작해,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새의 오감에 어떻게 다가갔는지, 지금까지 무엇을 밝혀내고 무엇을 알아내지 못했는지를 차례로 살핀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인간 스스로에 대해서, 당연히 새에 대해서는 훨씬 크게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이런 오해를 극복하며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에 더해 인간은 갖지 못했지만 새에게는 있는 자각, 감각이 아닌 감정의 영역까지 확장하며 갖가지 새의 멋지고 별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북극해에서 깊이 400미터의 칠흑 속으로 다이빙하는 황제펭귄이 된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교미 시간이 10분의 1초에 불과하지만 하루에 100번 넘게 사랑을 나누는 유럽억새풀새 한 쌍이 된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도 물론 궁금하지만, 비행의 꿈을 전해주고 꿈을 실현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 새이기에, 그들의 감각을 알아가며 우리의 감각도 선명해질 거란 기대가 더 크다. 새에 대한 호기심이 시선을 끌지만, 인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선을 넓히는 반가운 만남이다.

3.132015
  •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EBS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제작팀 (지은이) | 해냄 | 2015년 3월 "대학이 희망과 배움을 되찾을 방법"

    지난해 EBS 다큐프라임 교육대기획으로 방영된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가 책으로 나왔다. 대다수가 대학에 가길 원하고 상당수가 대학에 가는 한국에서, 대학은 가장 중요한 곳처럼 여겨지면서도 막상 대학교 앞에 붙은 이름을 빼면 대학이 그곳에서 공부하는 대학생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온 사회가 집착하는 대학이 현실 사회와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이 방송이 첫 방송 이후 실시간 검색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으고, 제1회 EBS 시청자상을 수상한 까닭도 여기 있다 하겠다.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우선 대학생의 현실을 수업과 삶의 영역으로 나눠 살피는데, 질문과 토론이 사라진 강의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관계를 단절하고 홀로 생활하는 모습에서 그간 꿈꾸던 대학이 아니라는 걸 금세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인재다. 스펙이 전부라고 믿었던 이부터 기업의 인재상에만 맞추려 자신을 잃어버린 이까지 다섯 명이 각자 생각하는 인재상을 새롭게 세우고 자기를 비추는 과정을 멘토와 함께 거친다. 마지막은 대학이다. 앞선 두 개의 어긋난 이야기가 만나는 곳에서 어떻게 수업과 교육이 이루어져야 배움이 가능할지, 세계 여러 대학의 사례를 짚고 한국 대학의 수업에 적용하며 방법을 찾는다. 그 방법의 핵심은 말문 트기다. 정답이 아니면 입을 꾹 닫고, 혹시 틀릴까 생각을 드러내지 않아 침묵으로 가득한 강의실은, 마땅한 해답이 없다며 방치해둔 오늘 대학 문제와 꽤 닮았다. 이 책이 주목하는 대학, 인재, 배움은 결국 하나의 문제, 같은 해답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 인비저블
    데이비드 즈와이그 (지은이), 박슬라 (옮긴이) | 민음인 | 2015년 2월 "조용한 성공, 만족스러운 삶"

    <뉴요커>를 비롯한 명성 있는 잡지에는 '사실 검증팀'이 있다. 기자들이 쓴 기사가 사실에 부합하는지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이 팀의 핵심 업무다. 이 검증 전문가(fact checker)들의 학력은 보통 석사 학위 이상이며, 몇 개 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저자는 바로 이 검증 전문가로 일하며 세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 '인비저블'에 대한 고민과 취재를 시작한다.

    저자가 정의하는 인비저블은 다음과 같다. '외부의 찬사나 보상에 별 관심이 없으나 자신의 직업 영역에서 고도의 전문성으로 막중한 책임을 지며 일을 통해 깊은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 외교관이 아닌 'UN의 동시통역사', 유명 건축가가 아닌 초고층 빌딩의 '구조 공학자', 영화 감독이 아닌 '촬영 감독' 등, 프론트맨 뒤에서 조용히 책무를 다하는 분야별 최고의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조용한 대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책은 자기 홍보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집중할 수 있는 자신만의 분야를 발견하고, 또 그 일을 탁월하게 해내며 깊은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풍요로운 삶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타인의 인정이나 명성에 연연하지 않는 이들의 태도는 곧 깊은 내적 성취감으로 이어지며 결국 건실한 삶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내면적 만족과 외면적 풍요를 조화시키는 삶, 일을 통해 지속적인 행복과 성취를 이루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며 일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 아자젤
    아이작 아시모프 (지은이), 최용준 (옮긴이) | 열린책들 | 2015년 3월 "악마가 작은 소원을 들어 드립니다. 아무 대가 없이."

    이 세상의 악마들은 다양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아자젤의 경우에는 인간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 단 너무 규모가 큰 소원은 안 되고, 대부분 한시적으로만 작용하는 짧은 소원들만 가능하다. 대신에 아자젤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영혼을 팔 필요도 없고 소원을 빌 횟수가 특별히 정해져 있지도 않다. 아자젤은 지옥에서 워낙 보잘것 없는 작은(말 그대로 크기부터가 1인치가 안 된다) 악마이기에 인간 세상에서 자신이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걸로 족하다. 적어도 본인 말로는 그렇다고 한다. 굳이 제한이 있다면 누군가를 저주하거나 해코지하는 소원은 아자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악마에게 비는 소원 치고는 너무 선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악마 본인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아자젤의 말마따나 인간은 지옥과 악마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많은 말을 해온 건지도 모른다.

    <아자젤>은 이 작은 악마가 들어준 작은 소원들에 대한 이야기다. 결과가 늘 좋지는 않다. 소원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거기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도 있고(아니, 아자젤의 탓이 아니라 꼼수를 쓴 의뢰인이 문제다) 소원 자체가 두리뭉실해서 황당한 결과를 빚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진심으로 선의에 가득한 경우는 눈앞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좋은 결과를 맺기도 하지만, 또 늘 그렇지는 않다. 인생사가 다 그렇듯이 말이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약간 뒤틀린 유머를 전면에 내걸고 완성한 이 악마 이야기는 C. S. 루이스가 창조한 작은 악마 스크루테이프처럼 신앙과 정의에 대해 고찰하게끔 만들지 '않는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 앞에 선 인간들의 생각지도 못한 소동극 뿐이다. 확실히 웃기고 기발한 반전도 틈틈이 선보인다. 그것뿐이다. 글쎄, 단지 그것뿐이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네 인생을 더 잘 보여주는 악마는 스크루테이프가 아니라 아자젤인지도 모르겠다. 예비된 미래 따위 없이 오로지 오늘의 우당탕탕 사건들만이 계속 이어지다 어느날 뚝 하고 끝나는 것들 말이다.

  • 메이스 테이블 May's Table
    메이 (지은이) | 나무수 | 2015년 3월 "연희동 인기 쿠킹클래스의 사계절 레시피"

    미국의 마샤 스튜어트, 일본의 구리하라 하루미가 있다면 한국에는 메이가 있다! <자극 없이 더 건강한 가족 식탁> <오니기리> <소박한 한 그릇> 등 그간 레시피 위주의 책으로만 메이를 만났던 독자들에게, 사계절 레시피는 물론 테이블 스타일링 노하우와 살림살이 이야기가 가득 담긴 이 책은 종합 선물 세트가 될만하다. 봄나물로 만든 도시락, 여름의 병조림과 샐러드, 가을의 절임 요리와 겨울의 냄비요리 등 다채롭고 친절한 그녀의 레시피는 마치 연희동의 쿠킹클래스를 찾은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킨포크>를 선두로 음식과 라이프 스타일의 신선한 결합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요즈음, 일상의 요리를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나타내고 싶은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3.172015
  • 말하다
    김영하 (지은이) | 문학동네 | 2015년 3월 "<보다>에 이은 김영하 두 번째 산문집"

    <보다> <말하다> <읽다> 삼부작으로 예정된 김영하 산문집 중 두 번째로 선보인 <말하다>는 등단 이후부터 지금까지 해온 인터뷰와 대담, 강연을 글로 옮긴 것이다. 분량이 워낙 방대해서 현재까지도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발췌해 완전히 해체하고, 주제별로 정리하여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책에는 한국어로 행해진 최초의 TED 메인 강연으로 화제가 된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CBS의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들려준 '자기해방의 글쓰기', SBS <힐링캠프>에서 강연한 '지금과 같은 저성장의 시대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 등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던 화제의 강연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김영하 작가만의 스타일로 전달하는 글쓰기와 문학, 그리고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 시인 동주
    안소영 (지은이) | 창비 | 2015년 3월 "<책만 보는 바보> 안소영이 만난 동주 "

    어떤 삶은 기록만으로도 문학이 된다. 윤동주는 용정에서 출생해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했다. 일본 유학 후 항일 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 젊은 시인의 짧고 또렷한 삶. 그리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간본으로 남긴 31편의 아름다운 시. <책만 보는 바보>의 저자 안소영은 이덕무와 벗들의 마음 씀씀이를 들여다보던 그 솜씨로 젊은 시인 윤동주의 삶을 정성스럽게 소설로 옮긴다. 과장하지 않는 문체가 시인의 삶과 그의 시의 빛깔을 섬세하게 복원해내는 것 같다.

    윤동주와 함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둔 고종 사촌 송몽규, 소학교 친구 문익환, 연희 전문 후배 정병욱 등 윤동주와 같이 일상을 공유하고 시대를 헤쳐 나갔던 청년들의 이야기 역시 감동을 선사한다. 용정에서 부르던 대로 민들레를 '문들레'라고 부르며 아름다운 것을 귀히 여기던 청년.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읽던 굳은 마음. 창씨개명을 하고, 도쿄 유학을 하며 '십자가'와 '참회록'을 마음에 새겼을 영혼. 소설에서 '시인 동주'의 모습이 더도 덜도 아닌 그 모습으로 정직하게 읽힌다. 절절한 슬픔과 좌절 속에서도 한 편의 서정시를 길어 올리던 청년 윤동주를 이 부끄러운 시대에 읽는 것은 꼭 이런 방식이어야 하겠다.

  • 거꾸로 즐기는 1% 금리
    김광기, 서명수, 김태윤, 장원석 (지은이)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3월 "1% 금리 시대 서바이벌 올 가이드"

    지난 3월 12일, 금융통화위원회가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1.75%로 하향 조정했다. 초저금리 시대가 열린 것이다. 관련 기사가 끊임없이 업데이트 되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은 이제 우리가 알던 경제 세계와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강조하며 1% 금리 시대 생존법을 이야기한다.

    초저금리라는 거대한 변화를 살피지 않는 '근검절약', '부동산 대박' 등의 자산관리법은 무용을 먼저 지적한다. 금리가 추락했다는 것은 곧 자산이 2배로 불어나는 데 35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라 이르며, 다년간의 데이터와 실제 투자 사례를 바탕으로 세계경제의 방향과 저금리 시대를 헤쳐 나갈 원칙과 실전을 소개한다. 소위 말하는 '대박'이 불가능한 오늘날, 이 책의 핵심은 투자처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부동산, 주식, 펀드, 연금 등 각 분야의 수익률 5%를 버텨줄 재테크 전략을 세워준다는 점이다. 투자의 세계에서 리스크란 무엇인지부터 시작해서 수익형 부동산 투자법, 본격 해외 투자까지 폭넓게 다루며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드는 법을 풀어준다.

  • 잠수네 초등 1, 2학년 공부법
    이신애 (지은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3월 "하나를 해도 기본을 챙겨야 한다!"

    영어를 시작으로 17년간 독창적인 교육정보를 쌓아온 '잠수네 커가는 아이들'에서 초등 1, 2학년을 위한 잠수네 공부법을 정리했다. 초등 1학년, 생활 습관도 바로 잡아야 하고, 예체능도 하나씩은 해야 하며, 국·영·수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갈팡질팡,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지 못해 막막해 하거나, 엉뚱한 데 에너지를 쏟는 경우도 허다하다.

    초등 저학년은 아이의 평생 공부 습관을 잡는 시기이다. 학원이나 빡빡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부모의 욕심, 아이의 욕구를 모두 채워주기도 어렵지만, 마냥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고학년이 되어서 공부 습관을 들이기는 너무 힘들다. 이 책은 이제 막 학부모가 된 부모들이 교육 방향을 세우고, 아이들의 학습 습관을 잡고 기초를 탄탄히 하도록 돕는다. 17년간 쌓여온 잠수네의 방대한 콘텐츠와 회원들의 경험담이 믿음직스럽다.

3.202015
  • 익사 (무선)
    오에 겐자부로 (지은이), 박유하 (옮긴이) | 문학동네 | 2015년 3월 "늙은 소설가의 회고"

    <익사>에는 상징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 아버지를 부정하면서도 그 왜곡된 남성성의 대를 이어 내면화하는 남자들의 삶은 그들(남자들)이 구축해 온 일본 근현대사(또는 그냥 이 세계의 역사)로 확장된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국가주의 세대와 그에 반동해 극좌 운동을 펼친 이후 세대가 선을 긋고 있고, 극좌 운동을 펼쳤던 세대는 다시 사회의 벽에 부딪혀 우경화한 부정의 현대사다. 아버지를 부정한 다음 자기자신의 내면을 한 차례 이상 부인해야만 했던 일본의 남자-소설가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장애를 가지고 있고 작곡을 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익사>는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인 소설 또는 고백이라고 보아야 할까. 실제로 오에 겐자부로가 겪은 일들이 변형된 형태로 소설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익사>는 작가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회고조로 쓴 작품은 아니다. 여전히 오에 소설은 당면한 현재를 밝힐 구원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가장 큰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익사>에서의 구원은 상호 부정을 거듭하며 되려 서로 닮아가는 멜랑꼴리한 남자들의 역사 바깥에서 찾아온 여자(들)로부터 이루어진다. 이 또다른 방식의 공동체가 제안하는 대안은 외적 혁명이 아니다. 그저 돌아가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잘못되었고 오해가 있었으며, 그 지점으로 돌아가 애도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가 과거를 돌이켰을 때, 잠깐 일본의 역사 전체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역사 구성원 전체가 정신병리학적인 깨달음을 얻고 도약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대안은 아직 무기력하다. 따라서 소설가는 그 비전을 가지고 다시 소설을 쓸 뿐이다. 따라서 <익사>는 정말로 노회한 소설가의 회한이며 고백이 된다. 다만 그 회한이 언제까지고 미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 상상하지 말라
    송길영 (지은이) | 북스톤 | 2015년 3월 "최고의 데이터 분석가 송길영의 욕망 관찰기"

    '싱글? 혼자 살면 집이 큰 것도 아니고 이사도 자주 다닐테고 돈이 넉넉하지 않을테니 뭐든지 작고 싼 물건을 사지 않을까?' 이 지레짐작이 낳은 40인치 이하의 50만 원짜리 '통큰TV'는 비록 좋은 반응을 얻긴 했으나 그 반응의 대부분은 애초 타겟이었던 싱글이 아닌 모텔, 멀티방 주인들로부터였다. 정작 싱글들이 실제로 가장 많이 사는 TV는? 화려하진 않지만 충실한 기능을 가진 널찍한 70인치에 컴퓨터 모니터 겸용으로 쓸 수 있는 300만 원짜리 TV였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비즈니스 현장에서 수없이 벌어지고 있는 '지레짐작', '대박', '폭망'의 현상과 인과관계, 의미를 차근차근 흥미진진하게 짚어준다.

    전작 <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로 빅 데이터의 효용을 소개했던 다음소프트 송길영 부사장의 신작이다. 이번엔 빅 데이터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지금의 한국을 비추며 단순히 거대한 데이터에선 얻을 수 없는, 그 안의 함의를 해석해내는 인간의 통찰에 더 세심하게 초점을 맞췄다. 특히, 현실은 머릿속에 떠올린 이미지와 다르기 십상이라며 섣불리 '상상'하지 말 것을 우선 강조한다. 어설픈 짐작을 버리고 철저히 관찰할 때, 사람들의 진짜 욕망을 파악하는 감각이 더 날카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집된 빅 데이터와 그동안 저자가 실제 진행했던 다양한 컨설팅 사례들을 기반으로,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가치 있는 대안을 찾아내는 법을 쉽고 설득력있게 풀었다. 직장과 가정, 사회의 영역을 넘나들며 이어지는 그의 다채로운 이 이야기들은 좀 더 너른 시야와 이를 통한 결정적 통찰을 향한다. 따라가다 보면 기회의 문을 여는 확실한 열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습니다
    오다 마사쿠니 (지은이), 권영주 (옮긴이) | 은행나무 | 2015년 3월 "이상한 책들에 대한 이상한 소설인데 재미있다"

    일본의 한 애서가 집안에는 책장에 꽂힌 책의 순서를 함부로 바꾸지 말라는 철칙이 있다. 그런데 집안의 어린이 히로시가 어린이답게 철칙을 어긴다. 책 좀 어지럽게 섞어 꽂기로서니 무슨 큰일이 나기야 하겠느냐는 심보인데, 사실은 정말로 큰일이 나는 거였다. 이는 진정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비밀리에 알고 있는 지식으로, 책에도 암수가 있어서 아무렇게나 붙여 놓으면 새로운 내용을 가진 책을 잉태해버린다는 것이다.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를 책이 서가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걸 본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이 있다. 환서라고도 불리우는 이 잉태 작업을 통해 태어난 책들은 기존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책이다. 즉, 내용까지 부모 책들의 면면이 섞인 괴작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서에도 룰이 있고 법칙이 있지 않겠는가? 이를 둘러싸고 유서깊은 두 애서가 가문의 라이벌 의식이 불타오른다.

    그런데 이 소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환서라는 설정 자체가 실존하는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게 마련인데, 오다 마사쿠니가 보여주는 책들은 그야말로 기서라고 부를 만한 신기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이 중에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확인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이러한 레퍼런스들이 보여주는 독특한 세계관이 환서를 통해 서로 뒤섞이고 또 이 환서들이 등장인물들의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면서 <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습니다>는 현실과 책 속 세계를 뒤섞은 환상적인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인물들이 책 속으로 들어간다는 식의 흔한 설정이 아니다. 어떤 책이 어떤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비유라고 보는 쪽이 좋겠다. 게다가 로맨스까지 들어 있다... 개인적으로 모리미 토미히코를 처음 읽었을 때가 떠올랐다. 즐겁고 빙글빙글 돌고 때로 슬프며 사랑이 있고 다 아름답다. 게다가 이렇게 엉뚱하고 환상적이면서도 어쩐지 '같은 독서인으로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설득력이 있다. 진짜 재미난 경험이었다.

  • 보물섬의 비밀
    유우석 (지은이), 주성희 (그림) | 창비 | 2015년 3월 "제19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고학년 부문 대상"

    칠백 년 전 꽃섬 앞 바다를 지나다가 난파되었다는 보물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다. 보물을 찾겠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스무 가구밖에 살지 않은 작은 섬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보물이 정말로 꽃섬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까?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있고, 없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없다’는 고고 할아버지, 타지 사람들에게 보물을 뺏기고 싶지 않은 초등학생 현민이와 산호, 그리고 의문의 보물 사냥꾼들까지. 섬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공간을 지능적으로 활용하여 긴장감을 극대화시킨 모험담이다.

    자극적인 양념 없이 우직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 개성 강한 등장인물들의 또렷한 존재감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일확천금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없는 인간의 양심과 헛된 욕망을 꼬집고, 무심하게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에서 삶의 터전에 대한 긍정을 찾는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무엇보다 모험을 꿈꾸는 사람들을 호기심을 지지한다. 방향이 틀어지고, 목적지가 달라지더라도 떠나는 것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모험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3.242015
  •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
    서중석, 김덕련 (지은이) | 오월의봄 | 2015년 3월 "우리에게는 '역사의 힘'이 있다"

    서중석 교수가 열 권에 이르는 대장정으로 현대사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는 한국현대사 분야에서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개설서로 꼽히는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를 썼다. 79년부터 88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6월항쟁 때는 <신동아> 취재기자로 현장을 목격하고 기록한 현대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그가 퇴임 앞뒤로 한국현대사의 줄기를 짚어가며 해방부터 오늘까지 현대사 전체를 풀어낸다니 여러모로 기대가 크다.

    1권에서는 해방과 분단, 친일파를, 2권에서는 한국전쟁과 민간인 집단 학살을 다루는데, 주제에서 볼 수 있듯 연대기를 바탕에 두되 사건과 쟁점을 중심으로 구성하여, 오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고민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그때 그 이야기가 오늘 현실과 어떻게 맞닿으며 역사를 구성하는지 선명하게 드러낸다. 서중석은 기계적 중립을 말하지 않는다. 사실에 근거하되 그에 합당한 평가를 단호하게 내린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공과를 지적하며, 해방부터 이어진 역사의 흐름 위에서 다음 발걸음을 어느 쪽으로 내디뎌야 할지를 엄중하게 제시한다. 그는 한국사회에 ‘역사의 힘’이 있다고 자신한다. 지난 현대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오늘 현대사에도 '역사의 힘'이 이어지길 바라며, 열 권의 현대사 이야기도 어느새 오늘에 도착하길 기대한다.

  • 부자의 그릇
    이즈미 마사토 (지은이), 김윤수 (옮긴이) | 다산북스 | 2015년 3월 "돈을 다루는 능력이란"

    월급이 매번 통장을 스치듯 지나가는 이유를 엉뚱한 데서 찾고 있지는 않은지, 돈이 모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책이다. 일본 최고의 경제금융교육 전문가인 저자가 돈의 본질과 인간관계에 관한 명쾌한 통찰을 풀어놓았다. 실제 그의 사업 실패담을 바탕으로, 한때 연매출 12억의 오너에서 3억 원의 빚을 지고 나락으로 떨어진 한 사업가가 우연히 만난 부자 노인과 나눈 대화를 엮어 소설처럼 구성했다.

    책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진 '내 소유의 돈'이라는 생각을 과감히 버리라고 말한다. 돈을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 곧 가지고 있는 돈을 '갖고 싶은 물건'을 사는 데 쓰게 한다고 경고한다. 정말 돈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우선 돈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의 가치를 분별하는 눈을 우선 길러야 한다고 강조하며 결국 이것이 한 사람의 그릇을 결정한다고 조언한다. 사람들은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못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돈을 잃을까 두려워 시도하지 못한다. 이는 그야말로 '돈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인생'이다. 현재 나는 돈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돈을 모으는 일보다 더 중요한 쓰는 일에 대해 스스로 점검해볼 수 있도록 한다.

  •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김혜남 (지은이) | 갤리온 | 2015년 3월 "김혜남 신작, 15년째 파킨슨병을 앓으며 깨달은 것들"

    대한민국 서른 살들의 마음을 다독인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포함해 다섯 권의 책을 펴낸 심리학자 김혜남이 7년 만에 신작을 펴냈다. 책은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삶의 비밀에 관한 기록이다.

    저자는 2001년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그 불치병이 의사인 자신을 찾아올 줄은 짐작조차 못 했을 뿐 아니라, 하필이면 개인 병원을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 되었을 때였다. 두려움과 억울함과 절망감으로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기를 한 달. 어느 날 문득 아직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걸 깨닫고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15년 동안 진료와 강의를 하며 다섯 권의 책을 썼고,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충실히 살아왔다. 아프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인생의 지혜들, 아픈 와중에도 재미있게 인생을 사는 법, 그리고 앞으로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를 담은 이 책을 통해 삶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야 할 이유들을 찾게 해준다.

  • 두근두근 걱정 대장
    우미옥 (지은이), 노인경 (그림) | 비룡소 | 2015년 3월 "제4회 비룡소 문학상 대상 수상작"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도 근사한 동화를 한편 만들어 낼 수 있다니. 어른들이 쉽게 지나칠 법한 아이들의 마음 속 깊은 곳, 구석구석까지 눈길을 주는 작가의 섬세함과 능청스러움에 놀란다. 그리고 또 한번 놀랍다. 아이들의 걱정거리가 이렇게 다양할 수 있구나, 별의별 고민들을 다 하고 있네. 뚱뚱한 사람도 귀엽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생일케이크에 초를 꽂았다가 불이라도 나면 어떡하지? 뚜껑을 열고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는 마법의 상자를 손에 넣었는데, 이번엔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지 그게 또 고민이란다.

    온종일 머릿속을 따라다니는 걱정 근심 때문에 끙끙 앓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단편동화집이다. 당사자들은 너무 심각한데 보는 사람은 피식 피식 웃음이 난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실은 이런 고민들은 다 아이들의 대단한 상상력 때문이다. 뻔한 결론, 늘 같은 대답이 아니라 아이들만이 떠올릴 수 있는 기발한 생각들,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때로는 걱정거리가 되고 반대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하는 법. 곰곰이 생각해보니 고민과 걱정이란 게 버려야 할 나쁜 습관만도 아니다.

3.272015
  • 생각해봤어?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 (지은이)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3월 "무기력과 냉소에 맞서는 유쾌한 대화"

    말에는 나누는 힘이 있고, 글에는 전하는 힘이 있다고 했던가.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이 모여 때로는 짧고 굵게, 때로는 길고 깊게 한국사회의 쟁점을 나눈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까페’가 책으로 나왔으니, 비로소 양수겸장이 이루어졌다 하겠다. 교황 방한, 땅콩 회항처럼 뜨거운 이슈부터 원전, 불평등, 교육 같이 오래된 문제까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 고민해야 할 열네 가지 질문을 던지고 서로 생각을 나누는 과정에서, 듣고 읽는 이 역시 이전의 내 생각, 지금 내 판단, 이후 내 예측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빗대어 판단할 수 있겠다.

    물론 여기서 그치면 재미는 절반이다. 세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고 말 잘하고 생각이 깊다 할지라도 모든 걸 아는 건 아닐 테고, 안다고 해도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중권은 “듣는 것이 없으면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되고, 말하지 않으면 함께 잘사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전자가 이 책의 효용이라면, 후자는 각자의 몫이다. 세 사람이 티격태격하며 찾아낸 방법에 신랄한 비판이 더해진다면, 이 생각들은 쇠가 단련되듯 단단해져 오늘을 내일로 바꿔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무기력과 냉소에 맞서는 유쾌한 대화에 당신을 초대한다.

  • 내 아이가 힘겨운 부모들에게
    오은영 (지은이) | 녹색지팡이 | 2015년 3월 "아이와 부모 사이에는 통역이 필요하다!"

    사춘기, 혹은 중2병. 천사같이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던 아이들이 달라졌다. 화를 내고 입을 다물고 방문을 걸어 잠근다. 아이들이 달라지는 만큼 부모들도 변했다. 아이가 어릴 때와는 달리 잔소리나 충고로 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더 불안해진다. 아이들은 아무리 커도 그렇다. 자기는 부모에게 못되게 굴고 상처를 줘도, 부모는 자신에게 상냥하길 원하고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등의 방송을 통해 영유아 자녀와 부모의 관계를 극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을 보여준 오은영 박사가 이번에는 사춘기 아이와 부모를 이야기한다. 사춘기 아이들의 행동과 마음의 괴리를 설명하고, 여러 가지 상황에서 아이들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을 들려준다. 청소년의 뇌 구조 같은 어렵고 딱딱한 전문 지식이 아니라, 지금 바로 옆에서 상황을 보고 이야기하듯 편안하고 쉽게 풀어놓았다.

  • 영 머니
    케빈 루스 (지은이), 이유영 (옮긴이) | 부키 | 2015년 3월 "나는 욕망의 월스트리트로 출근한다"

    <뉴욕 타임스>, <타임스> 기자를 거친 저자가 월가의 신입사원이 된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을 2년에 걸쳐 취재했다. 출간 당시 월가의 고뇌와 좌절, 욕망을 훌륭하게 직시한 작품으로 꼽히며 큰 화제를 불러모았고, 현재 미국 FOX TV에서 드라마 제작을 앞두고 있기도 한 작품이다.

    '2008년의 그 날'이 어느덧 7년 전의 일이 되었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가 보여줬던 스트리퍼와 마약 파티로 대변되는 이들은 이제 월가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업계 베테랑은 말한다. 책에 등장하는 8인의 신입사원들은 금융위기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이었다고 술회한다. 그리고 입사가 결정된 그들의 직장은 이른바 'A급 전범들'이었다. 골드만삭스, JP 모건, 메릴 린치 등... 그들을 가리키는 수식어가 '제왕'에서 '거대한 흡혈 오징어'로 추락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인류 최악의 사이코패스로 경멸 당하면서도 동시에 안에서는 여전히 주당 100시간을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이었다. 마약이라도 하지 않으면 뇌가 폭발해버릴 것 같은 업무량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매일은 여전했고 이에 더한 모멸감과 죄의식은 깊어만 갔다. 책은 실패보다 성공에 익숙했던 엘리트 신입사원들의 무너져가는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묻는다. 인간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중요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대의 자본과 인간이 엉킨 거대한 시스템에 관한 가장 흥미롭고도 슬픈 그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구병모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폭풍 직전, 재난 같은 삶이 내는 파열음"

    파국의 기미는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취업 전선에서 낙오한 후 겨우 진입한 대기업 고객센터에서 개인정보 유출 후 성이 난 고객들의 감정 앞에 무방비로 놓이기까지. (어디까지를 묻다 中), 우아한 중산층의 세계에 사는 '깨어 있는' 주부가 맞은 편 아파트에서 아동 학대가 분명한 풍경을 목격하기까지 (이창 中), 마침내 감정을 착취당하던 '을'들이 덩굴식물로 변해버리는 전염병이 창궐하기까지. (덩굴손증후군의 내력 中) 삶은 재난처럼 급작스럽게 휘몰아치고, 대체로 사람들은 '그것은 나만은 아니기를' 소망하며 타인의 재난을 방임하고 지나쳐 간다. 그 배에 탄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그 빌딩에 있던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그 공장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 <파과>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청소년문학, 순수문학, 장르문학을 자유롭게 유영해 온 구병모의 두번째 소설집. 집요한 관찰자의 눈으로 구병모는 재난 같은 삶의 순간들을 날카롭게 베어 소설로 내놓는다. 극히 현실적이라 오히려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길고 정확한, 구병모만의 독특한 문장과 함께 선명한 미감을 만들어 낸다. 덩굴이 되어버린 사람을 다른 사람이 베어버리는 풍경은 초현실적이지만, "보기에 좀 불편해 그렇지, 못 본 척하고 가만있으면 지낼 만은 합니다." 라고 주절대며 을이 을을 착취하는 풍경은 낯선 일이 아니다. 이 묵시록의 세계가 실은 우리가 사는 세계임을 인식할 때, 서늘한 깨달음이 지금이 바로 폭풍 직전임을 속삭인다.

3.312015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 (지은이) | 생각의길 | 2015년 4월 "누구나 (노력하면) 유시민 만큼 쓸 수 있다"

    정치인 유시민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자 유시민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거의 없다. 멀리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부터 가깝게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나의 한국현대사>까지, 지식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오늘의 감각으로 명쾌하게 풀어내는 유시민의 글쓰기는 정평이 나 있다. 몇몇 정치 관련 도서를 빼면, 그가 저술한 교양서는 대체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아 여전히 읽히니, 대표적인 교양 저술가라 인정할 만하다.

    저자로 활동한 지난 30년, 그에게 글 잘 쓰는 비결을 묻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고, 그는 비로소 이 책으로 대답을 하기에 이르렀다. 예상대로(?) 비법이나 왕도, 지름길이나 샛길은 없다. 마찬가지로 타고나는 일도 없다. 시나 소설이 아니라면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 거칠게 말해 누구나 노력하면 유시민 만큼은 쓸 수 있다고 하겠다. 유시민은 글쓰기의 철칙을 확인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책 읽기를 소개하고, 글쓰기에 근육을 붙이는 훈련법과 글쓰기를 풍요롭게 만드는 삶의 태도까지 제안한다. 강의 내용에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그대로 실천하면 되겠고, 강의 내용이 별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평이한 이야기를 설득력을 갖춘 쉬운 글로 풀어내는 유시민의 글쓰기를 유심히 들여다 보면 되겠다. 어느 쪽으로든 분명히 도움이 될 책이다.

  • 7번 읽기 공부법
    야마구치 마유 (지은이), 류두진 (옮긴이)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책 한 권을 통째로 복사하라"

    도쿄대 수석 졸업, 재학 중 사법 시험/공무원 시험을 동시 패스한 일본 최고의 '합격의 신'이 자신의 공부법을 풀어놓았다. 저자는 각종 시험에 패스할 수 있었던 비결로 의외로 간단하고도 쉬운 솔루션을 제시한다. 어떤 책이든 가볍게 7번 정도 통독하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훑어보는 것'에 가까울 만큼 가볍게 읽을 것을 강조하며 대신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다시 반복하기를 권한다. 이와 같은 통독을 반복하면서 '인지'가 '이해'로 바뀌며 머릿속에 점점 선명하게 입력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눈으로만 읽기를 권하고 있고 또 그와 같은 방법으로 저자가 직접 검증한 합격의 노하우를 함께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결과를 내야 하는 수험생이나 직장인에게 유효하다. 읽는 회차별로 더 효과적으로 내용을 습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과 과목별, 책의 분류별로 달라야 하는 공부법들, 이밖에 저자가 스스로 체득한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공부할 수 있었던 마인트 컨트롤 방법, 목표를 향한 자기 관리법 등을 더해놓았다.

  •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 전2권
    강신주 (지은이) | 민음사 | 2015년 3월 "압력의 기원을 찾아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많은 관람자에게 정서적인 압박을 가한다. 특별히 훈련받지 않은 보통 관람자들의 지성에 혼란을 일으켜 정서적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당대의 많은 추상 미술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고 해서 로스코의 대표작들에 특별히 구상을 연상케 하는 구조적 요소가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특히 후기 작품들의 경우 구상은 더욱 단순화하고 몇 개의 면과 색이 흐린 경계 속에서 어울리는 것뿐이다. 즉, '이해'에 대해 말하자면 로스코가 특별히 친절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마크 로스코>는 이러한 정서적 압력의 기원을 밝히기 위한 두 단계의 접근을 제안한다.

    첫 번째 책 'Works'는 도록 형식을 갖추고 있다. 로스코의 작품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으며, 각 시기별로 구성되었고 그에 따른 짤막한 해설들도 덧붙여져 있다. 대체로 전문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지만 특별한 미술사적인 지식이 없이도 읽을 수는 있다. 로스코의 시기별 화풍 변화와 작업 방식에 대한 해설을 통해 독자들은 로스코가 '무엇'을 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적인 관찰 행위에 이어 이어지는 두 번째 책은 'Text'라고 쓰여져 있는데, 바로 철학자 강신주가 쓴 일종의 로스코 평전이다. '일종'이라고 쓴 이유는 이 책이 로스코와 연관된 저자 자신의 감흥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미술사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학자가 쓴 미술 해설은 위험한 시도이지만, 로스코의 경우 많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즉각적인 정서적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저자 선정에는 의미가 있다. 작품 해제와는 별도로 로스코의 작품에서 받은 '자신'의 인상을 추적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저자라면 로스코의 가장 미스터리한 위력을 알려주는 데에 충분히(어쩌면 가장 요긴하게)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로스코가 낯선 관람객-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이 도록의 흥미로운 구성은 많은 미술 애호가들에게도 여러 생각과 말들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재미있다! 한국사 1~3 세트 (전3권 + 마스터북)
    구완회 (지은이), 김재희 (그림) | 창비 | 2015년 3월 "맛있고 소화 잘되는 한국사"

    어린이 역사책은 무엇을 말해야 할까? 라는 물음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어떻게 말하느냐'일 것이다. <재미있다! 한국사>는 한국사를 공부하는 초등학생이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을 갖게 될 지점들을 예리하게 찾아내, 이보다 더 쉽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말랑말랑하게 풀어 낸다. 책을 집필하는 어른이 아닌, 읽는 아이들의 사고의 흐름에 따른 전개다.

    입담 좋은 역사 선생님 구쌤이 한국사 현장 수업을 활기차게 이끌어 나가면, 쌍둥이 고양이를 비롯한 매력만점 답사반 대원들이 유머코드를 책임진다. 방대한 한국사 지식을 아이들 머릿속에 이식하는 게 아니라, 역사를 만나는 체험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이 되도록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전곡선사박물관, 서울 암사동 유적 '우리나라 곳곳의 역사 현장을 다니며 살아 있는 한국사를 배울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책상에 앉아 넘겨보는 것 자체로 한국사의 흐름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하게 함은 물론, 전국의 역사 체험학습 현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믿음직스러운 가이드 역할을 해낸다. 헷갈리기 쉬운 정보들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짚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제목이 무색하지 않게 기똥차게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