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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이름:천승세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39년, 대한민국 전라남도 목포 (물고기자리)

사망:2020년

최근작
2022년 4월 <선창 2>

천승세

본관은 영양(穎陽), 호는 하동(河童)이며, 1939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천독근(千篤根)과 소설가 박화성(朴花城)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신태양사 기자, 문화방송 전속작가, 한국일보 기자를 지내고 제일문화흥업 상임작가, 독서신문사 근무, 문인협회 소설분과 이사, 그리고 평론가 천승준의 아우이다. 1958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 소설《점례와 소》가 당선, 또한 1964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 희곡《물꼬》와 국립극장 현상문예에 희곡 《만선》이 각각 당선되었다.

한국일보사 제정 제1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을 수상했으며, 창작과 비평사에서 주관하는 제2회 만해문학상, 성옥문화상 예술부문 대상을 각각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휴머니즘에 입각하여 인간이 인간을 찾는 정(精)의 세계를 표현한다. 한결같이 인정에 바탕을 둔 인간 사회의 비정한 세계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작품에 《내일》(현대문학, 1958), 《견족(犬族)》(동상, 1959), 《예비역》(동상, 1959), 《포대령》(세대, 1968) 등이 있다. 단편소설집에 《감루연습(感淚演習)》(1978), 《황구(黃狗)의 비명》(1975), 《신궁》(1977), 《혜자의 눈물》(1978) 등이 있고, 중편소설집에 《낙월도》(1972) 등이 있고, 장편소설집에 《낙과(落果)를 줍는 기린》(1978), 《깡돌이의 서울》(1973) 등이 있다. 꽁트집 《대중탕의 피카소》(1983), 수필집 《꽃병 물좀 갈까요》(1979) 등이 있다.

2020년 11월, 향년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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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저자의 말

<황구의 비명> - 2007년 9월  더보기

군사정권의 서슬 푸른 오랏바람에 주눅 들어 살았던 참담한 문학적 절곡을 낱낱이 바로잡을라 치면 끝이 없겠으나 그중 가슴 아팠던 상흔이 문학 예술의 자율적 창의와 작의마저 '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민족'·'자유'를 외치는 문사들은 그 당장 국사범이나 진배없는 누명을 씌워 척결·발본색원하는 따위의 논고로써 물타작을 당해야 했고, 심지어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써도 이 민족중흥의 시대에 웬 가난 타령이냐며 착살맞게 욱대기기 일쑤였다. 그 악패질의 기세가 '너희들의 예술적 생명을 내놓으라!' 하는 지경에 이르러 집필의 임의적 포기는 물론이요 끝내는 소속 단체의 예술적 강령을 걸고 '절필 선언'을 감행해야 했던 혈루 단장의 울한을 어찌 다 이를 수 있겠는가. 절판본을 다시 꾸리는 일에 이런 서문을 얹자니 그 모진 세월 속에서도 이런 책이 상재됐었구나 하는 콧날 시큰한 자위와 함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신인 정신으로 정진해야 할 문학적 경각에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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