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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번역

이름:두행숙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 대한민국 전라북도 군산

최근작
2024년 8월 <[큰글자도서]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두행숙

서강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교에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서강대, 명지전문대, 한국교원대, 충북대, 중앙대 등에서 독일문학과 철학을 강의했으며, 현재는 서강대에서 독일어와 독일문학, 독일문화사 강의를 하면서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시간이란 무엇인가》, 《꿈꾸는 책들의 도시》, 《타이타닉의 침몰》, 《디지털 보헤미안》, 《거대한 도박》, 《의사결정의 함정》, 《레아》, 《은하수를 여행했던 천재들의 역사》, 《신의 반지》, 《여름의 마지막 장미》, 《헤겔의 미학강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오레스테이아》, 《스마트한 생각들》, 《스마트한 선택들》, 《데미안》,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등 다수가 있다. 접기 최근작 : <세계고전 오디세이 1>,<천재를 꿈꾸며 고뇌하는 젊음에게>,<길들여진 고독> 등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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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헤르만 헤세, 가을> - 2017년 9월  더보기

독일이 낳은 20세기의 대문호이며 시인이자 노벨상 수상 작가인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고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독일 작가이기도 하다. 또 그는 독일 작가이면서도 가장 비독일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작가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여러 특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편으로는 ‘독일의 내면성’을 그의 소설들 속에서 가장 잘 표현하고 있어 독일 최후의 낭만주의자로 간주되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동양 정신을 많이 알고 거기에 동조해온 작가이며 일반 독일인의 눈으로 볼 때는 아웃사이더이자 비정치적인 작가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그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으니, 여러 편의 소설과 특히 많은 시와 수필을 썼지만 그 어떤 작품도 자신의 체험과 관찰을 토대로 하지 않은 것은 거의 없었다. 헤세는 1877년 7월 2일 독일 남부의 울창한 숲인 슈바르츠발트(흑림)가 있는 슈바벤(Schwaben) 지방의 작은 도시 칼브(Calw)에서 태어났다. 작은 계곡이 있고 자연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이곳은 헤세를 어려서부터 자연 속으로 이끌면서 그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그곳의 자연은 유년 시절부터 그에게 꿈과 예리한 관찰력,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근원에 대해 사색하도록 해주었다. 특히 이곳을 소재로 하여 자연과 청춘을 다룬 그의 초기 작품들은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훗날 나이가 들어서는 보통 밀짚모자를 쓰고 뜨거운 햇볕이 쪼이는 남쪽 지방을 홀로 배회하면서 소박한 농부나 정원사가 되어, 구름과 안개와 햇빛, 산과 호수와 같은 자연을 끔찍이 사랑하면서 시와 산문을 많이 쓴 서정적인 작가가 되었다. 유년 시절의 헤르만 헤세는 상상력이 풍부했으며 음악을 좋아하고 풀, 나무, 시냇물 등 자연에 애착을 가졌으나 아주 고집이 세고 반항심도 있었다. 그는 부모를 따라 1881년부터 스위스의 바젤(Basel)로 가서 살다가 1886년에 다시 칼브로 돌아왔다. 이처럼 어릴 적부터 독일과 스위스를 넘나들며 살았던 그는 결국 훗날 독일을 떠나 그리 어렵지 않게 스위스에 정착하게 된다. 칼브에 돌아온 후에 헤세의 어머니는 그를 열세 살 때인 1891년 가을에 신학자로 키우기 위해서 마울브론(Maulbronn) 신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헤세는 열네 살 때인 1892년 3월 어느 날 갑자기 신학교를 탈출했으며, 그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갔으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이미 학업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어서 신학교를 포기했다. 다시 공부하려는 생각으로 1892년 11월에 칸슈타트(Cannstatt)의 김나지움에 1년간 다녔지만 역시 그곳의 주입식 교육과 규율, 속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다시 그만두면서 그의 학교 교육은 끝이 났다. 짧은 학창 생활, 특히 마울브론 신학교 생활은 그로 하여금 학교 교육에 대해 몹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 근본적으로는 자기주장이 강했던 그는 남보다 일찍 자신의 길을 찾아가려고 갈구했는데, 그것은 바로 시인이 되려는 것이었다. 그는 훗날 쓴 〈요약한 이력서(Kurzgefaßter Lebenslauf)〉(1925)에서 “내가 열세 살이 되던 해부터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것은 내가 시인이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이었다.”라고 밝혔다. 헤세는 마울브론 신학교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학업을 중단하고 말았지만, 그때의 체험을 나중에 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Unterm Rad)》(1906)에서 아주 잘 묘사하였다. 고향 칼브로 되돌아온 헤세는 그 일에도 만족하지 못해 얼마 후 그 도시에 있는 페로(Perrot) 탑시계 공장에 견습생으로 들어갔으나 약 일 년 동안 일하다가 그만 두고 열아홉 살 때 튀빙겐(T?bingen) 시로 가서 서점 점원이 되었다. 거기에서 그는 틈나는 대로 독서할 기회를 얻어 많은 책을 읽었고 자유롭게 마음껏 사색하면서 동양의 문화와 종교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헤세의 외가 사람들과 어머니는 이미 인도에서 선교를 하면서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와 노자에도 관심을 가졌기에 그 영향으로 헤세도 자연스럽게 여러 나라의 문화와 사상을 접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틈나는 대로 습작을 하여 스물두 살 때 처녀 시집 《낭만적인 노래(Romantische Lieder)》(1898)를 자비로 출판했으나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후에 산문집 《자정 뒤의 한 시간(Eine Stunde hinter Mitternacht)》(1899)을 출간하였다. 이윽고 스물일곱 살 때인 1904년에 《페터 카멘친트Peter Camenzind》를 출판하여 큰 명성을 얻고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하게 되었다. 풍부한 자연 감정과 서정으로 채색된 이 소설은 시민적이고 우수(憂愁)에 찬 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자전적 소설로, 처음으로 작가로서 그의 이름을 알린 출세작이 되었다. 이번에 출간하게 된 헤세의 시집이자 산문집인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위에서 소개한 헤세의 여러 시집과 산문집, 소설 등에서 각각의 계절과 관련되고 그의 자연관을 잘 말해 주는 내용들을 선정하여 엮는 것이다. 헤세는 스위스의 산골 마을에서 생활하는 동안 작품을 쓰고 정원을 가꾸고 하는 일 외에도 취미와 심리적 병 치료를 위해 많은 수채화를 그렸는데, 그 작품들 가운데 일부도 여기에 함께 실었다. 우리는 앞서 헤세의 삶과 작품들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듯이, 그의 삶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으며 평생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많은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연’을 잊지 않고 고난에 처할 때마다 자연으로 돌아가서 거기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덕분에, 결국 마음과 몸의 병을 치유하고 자연 속에서 평화를 느끼면서 살고 또 작가로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 실린 그의 잔잔하고 포근한 시와 산문들을 읽으면서 헤세의 인생관과 자연관, 예술관, 그리고 인품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애썼듯이, 우리가 삶 속에서 느끼는 모든 고통과 절망은 결국 자연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거기에 우리의 마음을 두었을 때, 우리의 삶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되고 고통을 벗어나 의연해지고 평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독자분들께서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헤세의 시와 산문집 《봄》을 시작으로 《여름》 《가을》 《겨울》을 차례로 읽으면서 헤세가 절묘하게 묘사한 각 계절의 느낌을 함께 느껴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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