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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어린이/유아

이름:이규희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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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열한 살의 벚꽃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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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왕 정세권

집으로 독립운동을 한 정세권을 아시나요? ‘북촌’이 어디인지 알고 있나요? 그래요, 임금님이 사시던 경복궁 오른쪽 언덕배기에 있는 동네랍니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고만고만한 한옥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곳이지요. 언제부터인가 북촌은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어요. 그곳에 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그런데 북촌에 있는 그 한옥들은 언제 지어진 걸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선 시대에 지은 집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니랍니다.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강제로 을사늑약을 맺은 후 남산에 ‘조선 통감부’를 설치했어요. 그러자 일본인들이 너도나도 남촌 주변으로 몰려와 일본식 집을 지었어요. 그러다가 슬슬 종로와 북촌까지 넘보기 시작했어요. 정세권이라는 건축업자가 그걸 보고 큰 결심을 했어요. “사람 수가 힘이다. 일본인은 절대로 종로에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 정세권은 ‘건양사’라는 건축 회사를 차린 후 종로 여기저기에 한옥을 짓기 시작했어요. 돈 없는 서민들이 살기 딱 알맞은 작은 한옥들을 지은 거예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익선동, 창신동, 가회동, 북촌의 모든 한옥들이 그때 지어진 거예요. 사람들은 정세권을 언젠가부터 ‘건축왕’이라 불렀어요. 정세권은 그렇게 한옥 수천 채를 지어 번 돈을 헛되이 쓰지 않았어요. 일제 강점기에 한글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조선어 학회’ 학자들을 위해 기꺼이 2층 양옥집을 지어 드렸어요. 당시 경성 방직 여공 한 달 월급이 21원이었는데 200여 명의 월급과 맞먹는 돈을 기꺼이 내놓은 거예요. 그뿐 아니라 정세권은 ‘장산사’라는 회사를 세워 ‘조선 물산 장려 운동’에도 앞장섰어요. 독립을 위한 일에도 앞장서서 자금을 내고요. 결국 정세권은 1942년 일제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다 당했어요. 일제는 정세권에게 다시는 한옥을 짓지 말고 일본 집을 지으라고 윽박질렀어요. 정세권이 거절하자 일제는 건양사 건축 면허와 땅과 재산 등 모든 걸 다 빼앗아 갔어요. 건축왕이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수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유품은 그저 쌀되와 놋 주발(놋쇠로 만든 밥그릇) 한 벌, 그리고 조선어 학회 뒤에 생긴 한글 학회가 펴낸 ‘큰사전’뿐이었어요. 정세권이 지은 북촌과 익선동, 창신동 등 한옥 마을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일제에 맞서 우리 조선집을 지켜 내려던 정세권은 기억하지 못했어요.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정세권의 삶을 동화로 쓰기 시작했어요. 주인공 영수 할아버지와 미루와 함께 정세권의 숨결이 묻어나는 북촌, 익선동 등 낡은 한옥들을 몇 번이나 돌아다니면서요. 부디, 어린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건축왕 정세권을 기억해 줬으면 해요. 집(한옥)으로 나라를 지키려 애썼던 애국자, 독립운동가 정세권을 말이어요.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

1919년, 독립 만세를 부른 아이들 어렸을 때였다. 해마다 꽃샘추위가 한창인 3월 1일만 되면 할머니는 늘 서랍에 고이 간직했던 태극기를 꺼내어 대문 옆에 달곤 했다. 물론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에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까막눈에다 나라 돌아가는 일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평범한 노인이었는데도 말이다. 어느 날 나는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 왜 그렇게 태극기를 정성껏 달아요? 안 다는 집도 많은데.” “너는 안 겪어봐서 몰라.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그저 툭하면 찾아와 닦달하고 쌀이며 보리, 놋그릇까지 싹 빼앗아 갔다니까. 내 이름 금자도 가네꼬로 부르게 하고. 만세를 부른다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붙잡아다가 고문하고 반송장으로 만들었다고. 에고, 그놈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할머니는 마치 일본 순사가 앞에 있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할머니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로부터 아주 훗날이었다. 학교에서, 신문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일제강점기 우리가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강압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알게 되었으니까. 특히 1919년 3·1 만세 운동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붙잡혀서 모진 고문을 받다 죽어가고 얼마나 많은 애국지사, 뜻있는 백성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멀고 먼 중국이나 러시아, 미국 등으로 떠났는지를 말이다. 어느 해였던가. 텔레비전으로 3·1 운동 기념식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1919년 3월 1일을 시작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사람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지? 그렇다면 그 많은 태극기는 다 어디서 났을까? 일제의 감시 때문에 마음 놓고 태극기를 찍어낼 수도 없었을 텐데.’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는 그런 나의 의문으로부터 시작된 작품이다. 어느 날 3·1 운동에 관한 자료를 찾으러 목천 ‘독립기념관’과 안성 ‘3·1 운동 기념관’으로 간 나는 전시실에 놓인 태극기 목판본을 보는 순간 그 해답을 알 수 있었다. ‘아, 바로 저거였구나!’ 짙은 밤색 나무판 위에 오롯이 새겨진 문양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얼마나 많은 태극기를 찍어냈는지 도들 새김한 부분이 반들반들하였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지던 태극기는 서울이나 대도시에서는 인쇄소에서 찍어내기도 했지만, 인쇄 시설이 별로 없던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목판본을 이용해서 태극기를 찍어 낸 것이다. 나는 어딘가에 몰래 숨어서 두꺼운 나무판에다 태극기 문양을 조심스레 파 내려갔을 그 누군가를 떠올리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목판본 위에 종이, 옥양목, 광목을 대고 몰래몰래 태극기를 찍어내던 누군가의 분주한 손길들도 떠오르고. 나는 전시실 앞에 발을 멈춘 채 낡고 오래된 태극기 목판본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그때였다. 문득 한 남자아이가 후미진 곳에 앉아서 징과 끌로 정성을 들여 태극기 목판본을 파고 있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그래, 모든 사람이 나서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만세 시위를 벌일 때 어린아이들이라고 가만있지 않았을 거야. 어쩌면 어떤 아이도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자신도 어른들처럼 무언가 힘을 보태려 저 태극기 목판본을 만들지 않았을까?’ 상상력은 점점 더 켜져서 어느 틈에 나는 ‘도철이’라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를 쓰기 시작하였다. 특히 서울에서 일어난 3·1 만세 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자, 4월 1일과 2일 이틀에 걸쳐 대대적인 만세 시위운동이 일어났던 안성 원곡면과 양성면을 배경으로 말이다. 작품을 쓰는 동안 나는 도철이와 그 가족, 친구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만세 운동에 나섰던 그때를 떠올리며 작품의 배경이 되는 안성 원곡면, 양성면, 만세 고개를 돌아보았다. 그날의 만세 시위로 수많은 사람이 옥고를 치르고 죽고 나라를 떠나는 슬픔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방방곡곡에 울려 퍼진 3·1 운동의 우렁찬 함성과 용기, 희생으로 우리는 다시 한번 독립의 의지를 다지고, 세계 여러 나라에 우리가 자주 국가임을 알리고, 애국지사들이 뜻을 모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게 하였으니까. 나는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를 통해 도철이와 친구들뿐 아니라, 일제의 총칼에도 굽히지 않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쳤던 수많은 분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깔끔이 아저씨

거창하고 요란하지는 않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그런 작은 힘들을 제 동화 속에 담고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묶어서 내는 <깔끔이 아저씨>에 실린 동화들을 읽고 누군가 그런 작고도 따스한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참 행복한 동화 작가일 것입니다.

내 이름은 판문점

우리는 6.25 한국전쟁으로 남과 북이 가로막힌 채 거의 70여 년을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살아왔어요. 판문점만이 남과 북을 이어 주는 유일한 통로였어요. 하지만 그곳에도 늘 냉랭하고 싸늘한 바람만이 감돌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깜짝 놀랐어요. 남과 북 정상이 활짝 웃으며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거예요. 갑작스럽게 찾아온 ‘판문점의 봄’은 꽁꽁 얼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스르륵 녹여 주었어요.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판문점’에 얽힌 이야기들을 어린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언젠가 어린 독자들이 자유롭게 남과 북을 오갈 수 있는 그 날을 상상하면서 말이에요. 진짜 판문점의 봄은 이제부터니까요!

내 짝꿍 김은실

초등학교 때였어요. 우리 반에 아주 무서운 남자 아이 하나가 있었어요. 다른 아이들 보다 키도 한 뼘이나 크고 덩치도 우람한 아이였지요. 그 애는 툭하면 친구들을 때리고, 맛있는 걸 뺏어 먹고, 뭐든 제멋대로였어요. 얌전한 아이였던 나는 행여 그 아이의 비위를 건드릴까 봐 눈도 마주치지 않았어요. 길에서 그 아이를 보면 겁 많은 강아지처럼 슬금슬금 피해 다니고요.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네 집 앞을 지날 때였어요. 술에 취했는지 그 애 아빠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 애를 마구 야단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곧 그 애가 후다닥 달려 나와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서 훌쩍훌쩍 우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요. 나는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어요. 그 애가 친구들에게 난폭하게 구는 건 마음속에 숨어 있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어쩌면 그 애도 누군가의 따스한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말이에요. 그런 일이 있고부터 나는 그 아이가 무섭지 않았어요. 엄마가 만든 찐빵이나 할머니가 주신 눈깔사탕을 가져다 그 애한테 줄 정도로 말이에요. 그러자 그 애는 마치 봄바람에 얼음이 녹듯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마치 이 책의 주인공 '한결이'처럼요.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어린 시절의 그 아이를 떠올렸어요. 아마 어디선가 밝고 늠름하게 잘 살고 있을 거라 믿으면서요.

너, 공주 부여에 있니?

가끔 공주, 부여에 갈 때면 마치 1400여 년 전, 백제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에요. 아마도 공산성, 송산리 고분, 무령왕릉, 부소산성, 정림사지, 궁남지, 낙화암, 백제 기와, 백제금동대향로 등 여러 유적지와 유물을 볼 수 있어서겠지요. 가만히 귀 기울이면 바람과 햇살을 따라 백제 왕과 왕비, 신하, 궁녀, 백성들의 목소리까지 들리는 듯해요. 어쩌면 그 땅에 살았을지도 모를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또 한참 위의 할아버지와 그 먼 가족들의 이야기까지도요. 그래서 공주, 부여는 내 영혼의 고향이에요. 나와 함게 어서 그곳으로 떠나요. 너, 지금 공주, 부여에 있니?

너는 나쁜 친구가 아니야

- 작가가 어린이들에게 주는 말 초등학교 때였어요. 우리 반 화장실 벽에 누가 ‘이규희, 바보, 똥개!’라고 대문짝만 하게 낙서를 해놓은 거예요. 나는 오줌을 누러 들어간 것도 까맣게 잊은 채 서둘러 옷소매로 낙서를 지웠어요. 교실로 들어서자 몇몇 여자아이들이 서로 마주 보며 쿡쿡 웃는 걸 보았어요. 그제야 난 아이들이 새로 전학 온 나를 놀려주려 했다는 걸 알았어요. “나쁜 계집애들!” 나는 분해서 씩씩거렸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그 친구들은 누구보다 친해졌어요. 그때 난 이 세상에 나쁜 친구는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단지 서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을 뿐이지요.

독립군 소녀 해주

나는 이 책을 통해 비록 어린 소녀지만, 경성, 신의주, 상하이, 충칭을 넘나들며 독립운동에 몸 바친 해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지금 내 나라 내 땅에서 이렇게 마음껏 날개를 펼치며 살 수 있는 건 모두 ‘해주’와 같은 이름 없는 독립군들이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아마 해주도 어디선가 이 책을 보고 빙긋 웃고 있겠지요.

마니토를 찾아라

이 세상에서 내가 혼자라고 느낄 때가 있나요? 아무리 둘러봐도 나를 이해해 줄 친구가 없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속상할까요? 나를 바라봐 주고, 나를 지켜 주고, 나를 사랑해 주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지고, 그 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멋진 사람으로 달라지지 않을까요? 나는 《마니토를 찾아라》를 통해 우리 모두 누군가의 ‘수호천사’가 되어 그 친구를 기쁘게 해 주었으면 해요. 그래서 서로 진짜 좋은 친구, 믿을 만한 친구가 되기를 바라고요.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 (문고판)

조만간 이 책과 함께 화사한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부산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러 가야겠다.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더라도 그것은 슬프지 않다. 다만 이제는 너무 늙고 병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억울한 마음을 안고 한 분 두 분 떠나신다는 것과 그분들이 겪은 일들이 점점 잊히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이 책을 읽고 독자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이 당한 일과 할머니들의 슬픔과 아픔을 잊지 않는다면, 먼저 떠난 할머니들에게도 남은 할머니들에게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지원이 들려주는 열하일기

이 책을 읽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어린 독자들이 조선의 대 문장가이며 실학자였던 박지원을 닮아 좀 더 꿈을 갖고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사도세자의 슬픔

역사 속에는 보물창고처럼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어요. 사도세자. 뒤주에서 죽어간 뒤주 왕자 이야기였어요. ‘영조는 왜 아들을 뒤주에 가둔 것일까?’ ‘그 좁고 갑갑한 뒤주에 들어간 사도세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어요. <사도세자의 슬픔>을 쓴 것도 어린 시절부터 이어 온 그런 궁금증 때문이었을 거예요. 나는 죽은 뒤주왕자가 어쩌면 별 나라로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의 꿈과 희망을 펼칠 또 다른 나라, 갈등도 미움도 슬픔도 다툼도 없는 아름다운 별 나라로 말이어요. 그곳에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길 빌어 주리라 믿으면서요. - 책머리 글

사비성을 지키는 아이들

백제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가끔 공주나 부여에 가서 공산성이며 백마강, 낙화암, 정림사지, 부소산 등을 둘러볼 때면 마음이 슬퍼졌어요. 황산벌 근처에 있는 계백 장군의 묘를 찾아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우두커니 무덤을 바라보던 나는 속으로 가만히 물었어요. ‘전쟁터로 떠나기 전에 부인과 자식들을 베었다는 게 정말인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어떤 역사가는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했어요. 사비성이 무너지던 날, 삼천 궁녀가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사실이 무엇인지 밝혀낼 수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지요.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백제문화단지’ 쪽으로 발길을 옮겼어요. 세상에, 1400여 년 전에 사라진 줄 알았던 백제가 오롯이 그 안에 살아 있었어요. 대백제의 왕궁인 사비 궁에는 중궁전, 동궁전을 비롯해 온갖 전각들이 들어서 있었어요. 백제 왕실의 대표적인 사찰 능사도 있었고, 백제 사람들의 생활 모습도 고스란히 재현해 놓았어요.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백제 시대로 들어간 듯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의자왕이 충신들과 나랏일을 의논하고 계백 장군이 갑옷을 입고 늠름하게 걸어오는 듯했어요. 비단옷을 입은 왕자가 또래들과 무술 시합을 하는 모습도 그려졌고요. ‘그래, 신라의 화랑처럼 백제에도 나라를 지키려던 아이들이 있었을 거야.’ 그런 상상을 하자 문득,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사비성이 무너지던 660년, 흔들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쓰던 부여강 왕자, 바람결, 수리야, 아침해, 거루, 태풍, 천둥, 마루벌이 떠올랐어요. 나는 어느 틈에 백제의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백제 속으로 들어갔어요. 비록 백제는 사라졌지만, 이 책을 통해 많은 어린이들이 백제의 아이들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럼, 백제는 사라지지 않고 우리들 가슴에 오래오래 남아 있을 테니까요.

아버지, 계백

나는 논산 부적면, 황산벌 근처에 있는 계백 장군의 묘를 찾아갔어요. 둥근 봉분과 비석 하나만 달랑 서 있는 묘는 마냥 쓸쓸하게만 보였어요. 나는 그곳에 서서 계백 장군께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속으로 물었어요. ‘전쟁터로 떠나기 전 부인과 자식들을 베었다는 게 정말인가요?’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백제 시대로 들어간 듯 상상을 해 보았어요. 백제라는 나라를 지켜야 하는 장군으로서의 계백 모습 이외에 역사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가족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가장으로서의 계백, 아들을 이끌어주고 보듬어 주는 아버지로서의 계백 등 다양한 모습의 계백을 이 동화에서 이야기 하려고 해요.

아버지가 없는 나라로 가고 싶다

열 살이 되던 해부터 열세 살까지, 고향인 충청남도 천안을 떠나 밤이면 호랑이가 눈에 불을 켜고 나온다던 강원도 황지(태백)와 영월을 떠돌아다니며 살던 한 여자 아이가 겪은 성장소설 안에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이 오롯이 묻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 들어있는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인가, 꾸며 낸 이야기인가는 결코 중요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작가는 자기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조그마한 씨앗들로 또 다른 꽃을 피워내는 사람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정말 오랜만에 내 어린 시절 그리움의 대상, 미움의 대상이었던 아버지와 사이좋게 화해를 한 기분이었습니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아버지가 사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내 안에 들어와 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는 것, 하지만 이제 내가 손잡기엔 너무 먼 곳에 가 계시다는 걸 깨닫자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는지... 나는 너무 뒤늦게 어른이 된 것이었습니다.

열한 살에 천사가 된 아이

사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찾아가 그곳에서 나온 자료를 훑어보다가 나는 깜짝 놀랐답니다. '장기 기증'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어른들만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정우'처럼 미처 꽃을 피우기도 전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아이들도 여럿 있었거든요.

열한 살에 천사가 된 아이

사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찾아가 그곳에서 나온 자료를 훑어보다가 나는 깜짝 놀랐답니다. '장기 기증'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어른들만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정우'처럼 미처 꽃을 피우기도 전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아이들도 여럿 있었거든요.

우리 또 이사 가요!

웃는 집에 복이 온대요! 어릴 때 늘 소원이 있었어요, 바로 내 방을 갖는 거였어요. 온 식구가 달랑 방 한 칸에서 복닥복닥 살다 보니 늘 나만의 공간이 그리웠답니다. 그래서 다락방에다 엄마의 헌 한복 치마를 벽에 걸어놓고는 궁전처럼 내 방을 꾸미곤 했어요. 헛간의 지푸라기 위에 헌 담요를 깔고 온갖 잡동사니로 치장하곤 소꿉장난도 하고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상상을 해도 진짜 내 방은 아니었어요. 어른이 되어 제일 좋은 건 바로 내 집, 내 방이 생긴 거였어요. 내 맘대로 아무렇게나 꾸며도 괜찮은 방, 아무도 이래라저래라 야단치지 않는 바로 나만의 방, 말이에요. 가끔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집에 관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볼 때면 어린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어요. 요즘처럼 근사한 아파트며 빌라, 다세대, 전원주택들이 많아졌는데도 아직도 옥탑방이나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거든요. 아이들은 마땅히 책상도 없이 상을 펴고 공부를 하고요. 그런데 프로그램을 보던 나는 깜짝 놀랐어요. 그 좁디좁은 집에 살면서도 가족끼리 서로 마주 보며 환하게 웃고, 두레 밥상에 둘러앉아 정겹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본 거예요. 나는 집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가족끼리의 단란함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 말이어요. 아무리 크고 좋은 집에 살아도 북극지방처럼 냉기가 도는 집보다는 비록 좁은 집에 살아도 저렇게 웃을 수 있는 집이 진짜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문득 ‘웃는 집에 복이 온다.’라는 말처럼 그들이 곧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하겠구나, 하는 믿음도 생기고요.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은영이, 은비처럼 말이에요.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도 좋은 일이 마구마구 생기길 바랄게요.

조지 할아버지의 6.25

나는 부산 유엔 기념 공원에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숨진 수많은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빼꼭히 적힌 추모명비의 이름을 읽어내려 가다가 문득 한 초등학교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렸어요. “요즈음 아이들 중에는 한국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랍니다. 어떤 아이는 조선시대에 일어난 전쟁이냐고 묻는가 하면, 심지어는 일본이나 중국과 싸운 거냐고 묻는 아이들도 있지요.” 1950년 6월 25일,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 일어났던 전쟁. 남과 북이 서로 총부리를 겨눈 채 죽고 죽였던 그 무시무시한 전쟁을 아이들이 모르고 있다는 게 놀랍기만 했어요. 6·25전쟁은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 중 하나이며,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없으며, 양쪽 모두에게 결코 씻을 수 없는 슬픔과 고통만 안겨주었다는 걸 알려주고만 싶었어요.

참 이상한 달리기

이야기는 서로 다르지만, 우리 모두가 허둥지둥 사느라 잃어버렸던 것들을 다뤘습니다. 작가인 제가 정성들여 가꾼 동화의 꽃밭에는 여유, 우정, 사랑, 희생, 베품, 희망, 용기, 화해... 라는 꽃들이 활짝활짝 피었습니다. 이제 저는 그 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여러분 앞에 내놓습니다. 부디 그 꽃다발의 향기가 오래오래 여러분 곁에 머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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