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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문학일반

이름:서영인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1년

최근작
2019년 12월 <혼명에서>

문학의 불안

이제 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문학의 불안을 말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불안에 대한 문학이 아니라 문학의 존재 그 자체의 불안이다. 이러한 생각은 세간의 평처럼 독서 대중의 감소와 출판 시장의 불황 같은 외적 여건에서 기인하는 것도 아니며, 문학이 문화산업과 속도 경쟁의 시대에서 소외되고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학은 이미 그러한 외적 여건에 적응하고 있고 그래서 자신의 내부 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스스로 불안을 자초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적응한 나머지 문학이 있어야 할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상식이 무너지고 공공성이 실종되고 있는 폐허가 지금 우리의 문학이 서 있는 자리다. 당연하다고 전제해 왔던 가치들이 붕괴된 현상보다는 무엇이 그 가치를 무너뜨리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게 하고 있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할 때이고, 그런 의미에서 문학이 처한 불안은 한층 깊고 무겁다. - 책머리에

백신애 문학의 안과 밖

「꺼래이」, 「적빈」 등의 작품으로 한국 근대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여성작가 백신애는 영천의 작가이다. 단지 그녀가 영천 출신이고 영천에 머물면서 그의 역작 대부분을 썼기 때문만은 아니다. 2007년 ‘백신애 기념사업회’가 발족한 이후 10년을 꽉 채운 시간 동안 ‘백신애 문학제’가 영천에서 열렸고, 그녀의 이름을 딴 ‘백신애 문학상’이 당대의 뛰어난 작가들에게 수여되었다. 백신애의 행적을 추적하고, 미발굴된 자료를 찾고, 그녀의 문학이 지닌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이 그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결같이 진행되었다. 아직 충분치 않지만 이 일련의 작업이 있었기에 안개 같은 미지에 가려져 있었던 백신애의 생애가, 문학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고 감히 자부한다. 백신애는 영천에서 태어나 영천에 묻혔고, 그녀의 문학 역시 영천에서 태어나고 발견되었으며 더 깊이, 새롭게 읽혔으니 백신애는 과연 영천의 작가이다. 이 책 역시 백신애의 고향 영천에서 오래도록 백신애 문학의 의미를 추적하고 토론한 결과물이다. ‘백신애 문학제 심포지엄’에서 발표되고 토론된 논문과 백신애 문학을 연구한 최근 성과를 모았다. 2011년에 나온 <백신애 문학 연구>가 백신애의 작품이 지닌 다양한 면모를 깊이 읽고 그 행적을 재구한 결과물이었다면, 이 책은 백신애 문학의 의미를 좀 더 넓은 맥락 속에 놓고 읽으려 한 결과물이다. 1부에는 백신애를 모델로 한 이시카와 다쓰조(石川達三)와 장혁주(張赫宙)의 소설을 비판적으로 연구한 논문들을 수록했다. 알려지지 않은 백신애의 행적에 대한 간접적 정보를 확인하고, 식민지 여성작가였던 백신애에게 투사된 당대 남성작가, 문단의 시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부에는 젠더와 문학사라는 관점으로 백신애의 문학을 새롭게 해석한 논문들을 실었다. 백신애 문학을 젠더의 관점에서 더 풍부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문학사의 맥락에 놓음으로써 백신애 문학의 좌표를 한층 더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3부의 논문들은 지역문학, 세계문학이라는 지평에서 백신애 문학에 접근한 연구이다. 지역적 구체성과 세계사적 시야를 함께 가진 백신애 문학의 진면목이 이 논문들을 통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

추억도 없고 오래 묵은 정보도 없는 대신, 어디든 낯설고 어디든 생소하므로 무엇이든 내 손으로 찾고 익숙해지고 친근해져야 내 생활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이 어른의 삶이라는 것을 매우 굼뜨게, 뒤늦게 알게 되었다. …… 끝을 보기나 할까 싶게 쉬엄쉬엄 쓰던 에세이의 후기를 쓰면서, 전세계약을 연장하고 세면대를 바꾸고 책을 내다니 이건 꽤 아귀가 맞는 매듭이 아닌가 하며 혼자 흐뭇하다. 편집자의 압박과 권유가 있긴 했지만 순전히 자발적 의지로 공익에 전혀 보탬이 안 되는 이 글을 결국은 다 썼다. 쓰다 쓰다 이렇게 사생활까지 탈탈 털게 될 줄 몰랐다. 다 쓰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이렇게 재미있게 살고 있었다는 걸. 내가 뭐라도 쓰는 일을 꽤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또 알게 된다. 쓰는 동안 즐거웠으니 읽는 동안 누군가도 부디 즐겁기를 바랄 뿐이다.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틀린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번 생이 다가 아니니까, 다른 생에서는 의외로 괜찮을지도 모르지. 거기서는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송로버섯이나 캐비어로 배를 채우겠다는 것도 아니고 가끔 프리미엄 라면을 먹고 맥주를 마실 수만 있으면 되니까. 딴생각이 실의에 빠진 나를 구했다. 어쩌면 지구를 구할지도 모른다. 인간끼리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에 버려진 애완견을 생각하고, 가족이 없으면 세상이 무너질 듯 호들갑을 떨면서도 남녀 결합 혈연 가족이 아닌 가족을 강제로 방해하는 세상에 침을 뱉고,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 미친 세상에서 덕질의 구설수를 견디며 쓸데없이 건담이나 수집하는 인간들. 구리하라 씨가 말하는 배꼽 없는 인간들이다. 이 미친 세상에서, 여기가 유일한 곳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더 많이 필요하다.

충돌하는 차이들의 심층

비평이란 여전히 작품들과의 대화이고 그것이 말하는 바를 가장 정확하고도 풍부하게 옮겨놓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는 믿음을 나는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 작품 하나하나가 지니는 그만의 목소리와 색깔들, 그리고 그 작품들이 만나 이루는 다채롭고 풍부한 차이들에 대해서 아직 할말이 많이 남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작품이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사이, 작품이 말하고 있는 것과 그 작품이 서 있는 우리 삶의 자리들을 섬세하게 조명하고 그것들 사이의 거리와 위치를 통해 하나의 지도를 그려내는 일,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비평의 자리이다.

타인을 읽는 슬픔

문학에 대해 순진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때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문학이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고 그 고통이 엮어 이루어낸 세계의 자존심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마감에 쫓기느라 내내 그렇지는 못했겠지만 내 글들이 대부분의 시간에 그런 마음이었으면 한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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