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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박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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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모든 삶은 아름다워야 한다>

박보희

1929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홀로되신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해방 후 사리원여자중학교에 다니던 중 교내의 작은 사건으로 부모, 형제와 헤어져 친구 둘과 남녘땅으로 내려왔다. 정해진 거처 없이 전전하던 중 여학생을 받아 주는 유일한 대학인 서울여자의과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적응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차에 뒤늦게 학생을 모집하던 이화여대 기독교사회사업과로 옮겨 사회사업의 길로 들어섰다.

6.25동란이 일어나 피난길에서 폭격을 만나 하나님께 “이 위기를 면하게 해주신다면 여생을 사회를 위해 바치겠나이다!”라고 다급하게 맹세한 것이 평생의 길이 되었다. 부산에 정착해 유엔 한국민사원조처(UNCACK) 행정보좌관으로(1951~1953) 일하던 어느 날, 출근길 거리에서 죽어 가는 한 아이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부모 없이 저희끼리 살던 아이들 몇과 같이 살며 복지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1953~1956년 캐나다 토론토대학 사회사업대학원에서 사회사업에 관하여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1956년 귀국하여 이화여대에서 전임강사로서 교직을 시작하였으며, 이화여대에 몸담고 있는 동안 평생의 친구, 동료, 스승으로 지낼 여러 귀한 인연을 얻었다.

이화여대에 국내 최초로 전문 사회사업과정과 실습제도를 설치하는 등 의욕적으로 활동하다 1963년 재충전과 사회사업 실천의 기회를 찾고자 뉴욕으로 떠났다. 뉴욕병원에서 사회사업가로서의 실무를 익힌 후 가정상담기관, 뇌성마비자 교육기관 등을 거치며 다양한 사회서비스 현장에서 활동했다(1963~1967). 또한 이 시기에는 문화와 예술에 매료되어 충실한 나날을 보내며 제3의 어머니가 된 완다 윌리그 박사 등 많은 사람과도 친교를 맺었다. 현장에서의 생활을 접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교직으로 돌아오라는 김활란 전 이화여대 총장의 권유에 따라 컬럼비아대학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수학하고 1973년 국내 최초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화여대로 돌아갔다.

귀국 후 강의 외에도 민간 사회단체와의 연계 활동, 특별강연, 좌담회 참여, 워크숍 주간 등 사회와 사회복지에 보탬이 되는 일에 활동하던 중 1979년 유엔에서 활동해 보고 싶다는 오랜 소망이 이루어져 국제연합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UNESCAP)의 사회개발계획 및 정책수석으로 태국의 방콕에 근무하게 되었다. 이후 1988년 늦깎이 결혼으로 은퇴할 때까지 국제무대에서 인구 노령화의 대책, 삶의 질 증진과 빈곤 퇴치 등을 위한 전략 및 사업에 몰두하였다.

뒤늦은 결혼으로 귀국한 후에도 전문가로서의 활약은 끊이지 않아 유엔 산하 여러 기구의 고문 및 자문위원, 국무총리 산하 여성정책심의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고 국제기구에서의 경험을 살려 사회에 이바지하고자 한국사회정보연구원을 출범시켰다. 부군 오재경 님께서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를 기리는 죽포회를 만들어 <언제나 그리운 오재경>, <오재경 ― 문예부흥, 자유언론, 공익봉사에 헌신한 이야기>를 발간했다.

그간의 사회 공헌을 인정받아 국민훈장(2002), 비추미여성대상(2002), 사회복지 특별공헌상(2015)을 수상했으며 <사회정책 4.0을 향하여>(2017), Basic Quality of Life Policy Formation in Korea:A Politico-Kinetic Paradigm of Social Policy Formation Assessment Study(2016). <변혁의 세기 그리고 사회적 경제>(2006) 등 다수의 저작이 있다.

현재도 일선에서 은퇴하지 않고 한국아동단체협의회의 고문, 한국사회정보연구원의 원장을 맡고 있다. ‘바람직한 삶의 질 개혁의 추구’를 평생의 소명으로 삼고 국내외에서 헌신하며 ‘사회개발 전문가’, 이것이 자신의 직분이자 천직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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