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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허깨비 신이 돌아오도다>

위래

2010년 8월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 〈미궁에는 괴물이〉를 게재하며 첫 고료를 받았다. 이후 여러 지면에 꾸준히 장르소설을 썼다.
소설집 《백관의 왕이 이르니》를 출간하고, 웹소설 《마왕이 너무 많다》와 《슬기로운 문명생활》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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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백관의 왕이 이르니> - 2022년 12월  더보기

대학교 학회 합평회 때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소설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이 주제를 말하기 위해 판타지 소설일 필요는 없었다. 왜 장르소설을 쓴 것인가?” 이후로도 종종 사람들은 내게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매번 일일이 답할 수 없는 바(그리고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이유에서) 이 자리를 빌려 답하고자 한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크게 두 가지 질문 앞에 선다. 하나는 ‘무엇을 쓸 것인가’인데, 나는 이 질문에 관심이 있었던 적이 없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때까지 내가 읽은 것은 도서관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댄 브라운, 파울로 코엘료 또는 대여점의 이우혁, 이영도, 김정률이었다. 사람은 읽은 것을 쓰게 된다. 그러니 나는 무엇을 쓸 것인지 고민하지 않고, 그냥 장르소설을 썼다. 또 다른 질문은 이것이다. 제도권 문학 장에서는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으로서의 소설을 고민하기 때문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 또한 내 흥미 밖이었다. 나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없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장르소설을 구성하는 장르 규범과 클리셰, 플롯 장치로 기존의 장르적 맥락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면서 동시에 지금까지는 없었던 낯선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내냐는 것이다. 당연히 내가 쓴 소설들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나름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주제라는 것은 자폐적이거나 메타픽션적이고 세카이적 상상력에 천착하거나 유카타스트로프를 형성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다른 의도가 표백된 보다 순수한 장르성을 증거하며, (선후가 뒤바뀌었으나)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라고도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나는 장르소설의 역사적 맥락을 따라 타성으로, 그리고 장르소설 작법 방법론으로서 장르소설을 쓴다. 이상한 대답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이상해 보이는 이유는 ‘왜 장르소설을 쓴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장르소설을 제도권 밖 주변부로 가정해 던지는 이상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은 장르소설을 쓰는 것이 그렇지 않은 소설쓰기에 비해 유난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야만 던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질문을 뒤집어 다른 모든 비장르소설을 향해 던지면 이렇게 된다. ‘왜 장르소설을 쓰지 않은 것인가?’ (물론 나는 그런 질문을 던질 정도로 무례하지는 않다.) 2022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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