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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장환

최근작
2024년 2월 <퇴계 매화시>

이장환

1955년 경북 안동에서 나고 자랐으며, 초등학교 시절부터 붓글씨를 썼다. 가학으로 글씨를 배워 고교 2학년 때 안동문화회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성균관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한문교육을 전공하였고 서예가의 길로 들어서서는 유천 이동익 선생께 사사받았다.

삼십대 중반부터 공모전에 도전하여 사십대 초반까지, 추사 휘호대회 1등(1990), KBS 전국 휘호대회 대상(1992), 대한민국 서예대전 대상(미술문화원 주최, 1992),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3회(한국미협주최, 1994, 1995, 1996), 동아미술제 대상(1997)을 받았다. 그리고 오십대에 들어서서 2007년 9월에 서울 운현궁 SK HUB 1층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 동안 줄곧 개인 서예실을 열어 서예를 가르쳐왔고, 정부종합청사, 동화은행, 국민은행,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에서 취미반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성균관대학교에서 서예지도법 겸임교수로 활동해왔다. 예순살을 맞이하면서는 일체의 활동을 중지하고 절대적인 개인 시간을 확보하여 새로운 각오로 작품에 오롯이 정진하고 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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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따라 쓰는 금강경> - 2018년 11월  더보기

다음 글은 서암 이장환 선생님의 출간 예정인 책 ‘따라 쓰는 퇴계의 시’에서 글씨 쓰기를 설명한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글씨 쓰기, 몰입의 즐거움 글씨 쓰기는 인간이 하는 일 가운데 매우 요긴하면서도 고상한 즐거움을 준다. 문자가 발명된 이래로 어느 사회에서나 글씨를 바르게 쓰고, 아름답게 쓰고, 개성적으로 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 까닭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여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필체를 보기도 했다. 글씨에 몰입하는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그토록 많은 명필이 출현했던 것이다. 명필 서예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되면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또 글씨를 쓰면서 단전 호흡이 저절로 되어 몰입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르다는 것, 그 비할 데 없는 절대 가치 사람이 배우는 것은 한결같이 ‘바른 길’로 향한다. 달리기를 하든, 공을 차든, 스케이트를 타든, 골프를 하든, 바둑을 두든, 똑같을 것이다. 걷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그 무엇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능률이 오르지 않아서 빨리 배울 수 없고 높이 오를 수 없다. 바르다는 것은 단순히 보기 좋다거나 바람직하다든가 모범적이라든가 하는 이미지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실용성과 편리성 정도를 넘어서서 존재 자체의 가치 완결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바르다는 것은 존재 자체가 떳떳하고 자연스러워서 별도의 검증과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뭔가 배울 때 정식으로, 제대로 배우고 싶어 한다. 글씨도 그렇다. 필기구를 바르게 잡고 바르게 글씨를 쓰는 것은 그 의미와 가치가 있다. 바른 것을 추구할 때는 그 과정에서 느끼는 깨달음도 차원이 다르다. 바른 글씨와 아름다운 글씨 폰트 활자도 바르기는 하다. 그러나 공간 균형만 잘 맞추어 놓아서 기의 흐름이 순조롭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데, 사람이 쓴 글씨는 삐뚤빼뚤 해도 그 나름의 기의 흐름이 있어서 정감이 묻어난다. 정감이 묻어나는 글씨 중에도 오래 보아도 늘 기분이 좋아지는 글씨는 아름다운 글씨라 할 수 있는데 모든 아름다운 글씨는 바른 글씨의 기초를 튼튼히 내포하고 있다. 바른 글씨의 기초는 필획 하나를 바르게 긋는 데서 출발한다. 필획은 동양 예술인 서화 감정의 아주 중요한 요체다. 일반 필기구로 그을 때도 원리는 그대로 통한다. 동양 서양 할 것 없이 잘 쓴 글씨는 선이 살아 있다. 모든 예술은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을 귀하게 여기며 기의 연결이 잘되어 시원하게 소통되면서 다양한 변화를 지닌 창작예술 작품을 최고로 여긴다. 창작예술 작품의 모든 아름다움은 바른 원칙 속에 기운 생동과 다양한 변화를 내포해야 시간을 견딜 수 있다. 바른 글씨와 개성적인 글씨 바른 원칙을 내포하지 않은 개성이란 한갓 비뚤어짐이거나 악습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모든 활동이 기초를 익힐 때 기준과 원칙 없이 배워서 자기습관으로 굳어지면 발전하기 어렵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길이 하나로 통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현상은 다양해도 원리는 하나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통달한 사람에게는 법이 없는데, 없는 것이 아니라 없는 가운데 있는 것이 지극한 법이다.”(석도石濤)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모든 진정한 개성은 바른 원리 원칙을 숙달한 다음에 꽃피는 것이다. 좋은 글씨는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원칙을 잘 지켜 쓰지 않으면 선이 시원시원하지 않고 오밀조밀 어지럽게 보여서 눈에 거슬린다. 진정으로 개성 있는 글씨를 쓰고 싶다면 글씨의 원칙을 익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좋은 문장을 필기하는 즐거움 필기하는 노동, 필기감의 즐거움, 이런 것은 키보드와 스마트 기기의 터치에 익숙한 현대인이 일부러라도 되찾아야 할 필수항목이라고 생각한다. 낙서 정도만 해도 정신과 감정이 정리되고 휴식을 얻는데, 좋은 문장을 정성 들여 따라 쓴다면 어떨까? 비교가 안 될 만큼 후자의 긍정적 효과는 클 것이다. 하루 일과를 마칠 때, 혹은 무료하거나 짜증이 날 때, 누군가를 혹은 무엇을 기다리는 시간에, 무심하게 한 페이지씩 따라 쓰는 것은 특별한 체험일 것이다. 현실이라든가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않은 채 가만히 두고 호흡과 자세를 가다듬어 정성스럽게 한 획 한 획 쓰다 보면 그 어떤 휴양지에서도 맛보기 힘들었던 ‘평온함’에 이른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눈빛이 반짝 빛나는 순간, 그때가 바로 좋은 내용의 문장을 정성스럽게 쓰면서 영혼에 새싹이 돋아나는 순간이다. 필기구와 필기감 즐기기 글씨를 따라 쓸 때 밝은 컬러 사인펜 또는 컬러 붓펜으로 써보라. 기분도 밝아지고 즐거워서 동심으로 돌아간 듯 더욱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컬러 사인펜 또는 컬러 붓펜으로 알록달록 예쁜 색으로 임서(臨書)를 하면 꽃구경을 가거나 단풍놀이를 간 듯 정말 재미가 있다. 좋은 음악을 감상하는 것 같은 희열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좀 더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직접 체험해 봐야 좋은 것은 기회가 되면 따로 특강을 마련하든가 할 생각이다. 이 책을 따라 쓰는 모든 사람이, 글씨를 쓰는 동안 평온하고 행복하며 마음에 새 힘이 솟았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속도, 붓펜으로 쓰면서 읽는 속도 베토벤의 음악을 16배속으로 듣거나, 고흐의 그림을 빛의 속도로 훑어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대 문명이 속도를 중시하지만, 그 속도를 따라가지 말아야 의미를 가지는 영역이 있다. 눈으로 휙 읽는 것과 손으로 쓰면서, 그것도 붓이나 최소한 붓펜이라도 들고 써보면서 읽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고흐의 그림을 눈으로 보면 아무리 천천히 봐도 몇 분 안 걸리지만, 붓으로 터치를 흉내 내어 가면서 감상하는 것은 오래 걸린다. 그러나 그 시간만큼 고흐의 삶과 마음에 쉽고도 가깝게 다가가는 방법도 없을 것이다. 내가 잠시 그 사람이 된 듯이, 큰 무당이 망자의 혼령을 ‘빙의(憑依)’하듯이, 그렇게 접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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