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

이름:김상천

출생:1962년

최근작
2023년 6월 <청년 임화>

김상천

시인, 재야저술가, 대중문예비평가, 주요 저서 <텍스트는 젖줄이다>(‘14 진흥원 우수학술서), <명시단평>, <삼국지-조조를 위한 변명>, <네거리의 예술가들>, <철학자 김수영>, <청년 임화>(‘20 서울문화재단 ’평론‘부문 당선작)  

대표작
모두보기
저자의 말

<철학자 김수영> - 2022년 9월  더보기

오늘, 한국정신은 존재하는가? 아니, 그 추상적 사유 형태로서의 언어를 통한 한국철학은 존재하는가? 이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기본 주제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주제입니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 누군가는 이것을 풀어내야 하고, 그 누군가는 이것을 밝혀내야 합니다. 현재까지 철학적 관점에서 김수영을 다룬 저서는 아직 한 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철학의 본질을 염두에 두먼서 김수영 시와 시론의 시대성, 예술적 본질, 나아가 한국적 사유의 한 형태로서의 민중적 형식이 지닌 산문시의 의미를 톺아낸 저서는 아직 없었습니다. 김상환(<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 민음사)의 훌륭한 철학 비평서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데카르트의 관념적 인식론(‘자아론’)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이 책은 문화적 심연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한국철학의 본질을 밝히는 하나의 비평적 사례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 프랑스 철학의 갓돌capstone 들뢰즈는 니체를 연구하먼서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분명, 현대 철학은 대부분 니체 덕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니체 덕으로 살아가고 있다.”(<니체와 철학>, 민음사)라고 말입니다. 김수영을 연구하는 나 또한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분명, 한국의 현대시는 대부분 김수영 덕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김수영 덕으로 살아가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어찌해서 아직도 니체이고, 아직도 김수영일까요? 대체 철학이고 시이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인문학의, 삶의, 어티케 살 것인가 라는 인생에 있어서의 태도의, 세계관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니체와 김수영이 아직도 하나의 정신의 척도로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삶의 태도와 세계관으로서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쓸모가 있다는 뜻이고, 또한 그만큼 낡지 않은 크로노토포스적 현재성modernity을 지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 책은 100주년을 맞은 한국의 저명한 시인이 남긴 문화적 유산을 철학적 사유의 관점에서 돌아보게 된 것이 근본적인 저술 동기가 되어 쓴 대중적이고 깊이 있는 문예비평서입니다. 시인 김수영! 그는 분명 한국의 대시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시인으로서만 평가한다는 것은 정당하게 평가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는 단수singular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부의 반발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시인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을만한 거대한 존재임에 틀림없지만, 그는 또한 당대의 양심적인 지식인이자 두터운 지적 소양을 지닌 훌륭한 문화인이었으며, 선진문화에 대한 왕성한 식욕을 지닌 하이브로한 엘리트 지식인이자 외국문화의 창조적 이식에 기여한 출중한 번역가로, 사회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아끼지 않은 보기 드문 예봉의 비평가요, 더 나아가 그가 아니먼 보여줄 수 없는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사유의 씨앗을 지닌 자였습니다. 그는 시인이자 지식인이자 철학자였습니다. 김수영 자신은 분명 그만의 독창적이고 단단한 사유의 씨앗을 지닌 자였으며, 비록 그 자신이 전문적인 철학자도 아니고 심지어 독창적인 이론가가 아니었을지라도 지적인 까닭에 두터운 교양을 가지고 형상적 사유의 방식으로 전형적으로 한국적인 사유의 하위 장르랄까 임화의 단편서사시에 이어 일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먼서 산문시라는‘한국적 서사’로서의 이야기시의 새로운 전통을 창조했습니다. 그는 니체와 하이데거의 사상적 영향이 짙은 시론‘시여, 침을 뱉어라-힘으로서의 시의 존재’에서 “나는 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라고 했거니와, 이것은 김수영의 문학적 형식과 철학적 성격을 표상하는 중요한 단서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50, 60년대 정체성 세우기로서의 한국학 열풍의 상징, 김수영! 그는 또한 문학론‘신비주의와 민족주의의 시인 예이츠’(<김수영 전집2>)에서 ‘아일랜드의 르네상스가 아닌 한국의 르네상스’를 몹시 고대했던 문화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책이 이런 그를 염두에 두먼서 한국 철학의 내재적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집필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한국적 가치Korean Value’의 정립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있는 이때, 김수영이 1세기를 지나는데도 불구하고 ‘수영 금지’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그에 대한 연구물이 산을 이루고,‘김수영 아카데미’라 할 만큼 하나의 학문적 에꼴ecole을 이루고 있으며, 더욱 중요한 점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쑤석거릴 불사의 텍스트와 우리 고유의 사유의 유전자를 낳았다는 점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치 거목처럼 크고 우뚝한 정신적 존재로서 사상가 함석헌이 있습니다. 그(<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고난에 뜻이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대체 고난에 무슨 뜻이 있다는 것인지? 그것은 과연 그의 말대로 우리가 겪은 갖은 괴로움과 힘든 일 가운데서도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중요한 임무 같은 어떤 인류사적 사명 같은 게 아닐까요? 이 땅의 무고한 민중들처럼 그 또한 일제 시기에 태어나 해방, 전쟁, 혁명, 그리고 혁명의 배반이라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대체 그가 겪은 고난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뜻이 있을까요? 그는 우리들에게‘온몸의 시학’과 ‘거대한 뿌리’의 정신, 그리고 ‘산문시’라는 중요한 유산을 남기고 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니까 우리가 그가 남긴 문화적 유산을 돌아본다고 하는 것이 그를 기념비의 장막에 가두어놓고 향불을 피우고자 함이 아니요, 골동품을 즐기듯 호고적好古的인 맛을 누리자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를 다만 문화발전의 비판적 자양으로, 하나의 텍스트로 대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지금 내 앞에는 다행히 최하림의 모범적인 김수영 평전 <자유인의 초상>(문학세계사)이 놓여 있고, 현재까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김수영론의 최대값을 보여주는 김상환의 <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민음사)이 있으며, 또한 이영준 교수를 비롯한 몇몇 분들이 수고를 더하여 수십 년에 걸쳐 마무리한 정본(민음사)이 있습니다. 전집(시, 산문)에, 번역평론집(박수연 엮음, 도서출판 b)에, 김현경 여사의 회고적 산문집(푸른사상)과 김수영 생애 답사기(서해문집)까지 본격적인 연구를 위한 불쏘시개는 충분히 준비된 셈입니다. 전국국어교사모임이 지은 <김수영을 읽다>(휴머니스트)도 보석 같은 해설서입니다. 이제는 다만 요리하는 문제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지난 번에 <미당 신화>(사실과가치)를 쓰기 위해 미당 관련 2차 자료를 검토하다가 느낀 것이지만 친일문학(론)의 선구자라는 어느 연구자의 서책에 미당이 통째로 빠져 있는 것을 보고 허탈함을 감출 수 없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에 더욱 거리를 두고 편차를 줄이기 위해 2차 자료를 검토하는 중에,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어느 진보적이라는 민족사학자가 쓴 이름 있다는 사서를 보았더니, 민족시인 신동엽에 대해서는 한 단락을 할애하고 있으먼서도 김수영에 대해서는 단 한 문자도 언급이 없습니다. 그에게 있어 진보는 민족만을 가리키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뭐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여 만든 역사라니, 그러니까 현대사를 잘 못 배우먼 김수영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한 시대의 김현, 김윤식이 합의해서 쓴 명저 <한국문학사> 또한 시인들을 다만 시장의 좌판처럼 좍 늘어놓고 있는 실정이니, 이것은 대상을 개별적 실체로 대하고 마는 도구적 실증주의자의 시선으로 그 개별적 실체가 뿌리를 두고 있는 관계망을 간과한 반사변적 편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이것은 뭐 ‘세계를 눈도 귀도 없는 자료로 환원시키려는’(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다만 자료의 기억만으로 채우려는 기도try에 다름 아닙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먼 다 아는 일이지만, 서구철학사와 지성사를 관통하는 ‘이성’과 ‘계몽’, ‘합리성’을 중심으로 돌고 도는 사유의 수레바퀴와 마찬가지로 동양철학사와 예술사를 꿰뚫고 지나는 ‘도덕’이니 ‘도리’니, ‘인간성’을 핵심으로 돌고 도는 쳇바퀴도 하나의 휴매니티로서의‘동정심’에 기초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런 도덕적 기초로서의 사회적 모럴은 항상 배반당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도덕이라는 게 사실 오디세우스적‘속임수’임을 늘 모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 ‘부정’ 속에서 오히려 인간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를 느낄 수 있음을 예의 니체, 하이데거 같은 고독한 철학자들에게서 봅니다. 김수영 또한 마찬가집니다. 그는 고독한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불온한 시인이자 부정의 철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니체, 하이데거처럼 그 무엇을 다시 평가하고 재긍정하기 위한 포즈의 포즈입니다. 그것이 바로 속류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비평으로, 탁월한 문화적 유산으로, 그리하여 그것은 이제 한국적 사유의 탄생을 위한 정신의 질료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지금에 와서 비교해 봐도 저 일급의 프랑스와 독일 철학자들의 사회비평서들, 문예비평서들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아니 그들보다 앞서 있습니다. 그는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이자 우수한 콘텐츠입니다. 최소한의 자료를 소화하기도 버거운 광대한 문서고입니다. 그러니 나 또한 주제를 좁혀서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김수영이 단순한 시인이 아니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는 한국의 보기 드문 인테리로 당대 서구 문화(또는 문예)의 최신 동향과 흐름에 대한 정확한 안테나를 지닌 문화인이었을 뿐 아니라 베이컨, 데카르트는 물론 키에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등 근현대 철학의 산맥을 이룬 자들의 주저를 탐독했고, 루소의 <사회계약론>, C.라이트 밀스의 <들어라 양키들아> 등을 정독하고, 마키아벨리, 홉즈 등을 접하먼서 두터운 정치사회적 소양을 쌓은 보기 드문 사유의 시인이었습니다.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정치적 무의식과 시대의 고통과 환부에 대한 깊이 있는 눈길과 마주치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가령,‘달나라의 장난’에서“공통된 그 무엇”을 통해 국가주의는 그릇된 우상이라는 인식도 이런 철학적 소양이 있었기에 나온 그만의 독창적인 시어였던 것입니다. 내가 김수영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김수영과 한국철학의 가능성을, 그러니까 삶의 태도에 대한 의미 있는 인문철학적 에세이를 쓰고자 한 이유는 다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실을 알고자 갈망하며, 그런 사실들의 의미를 찾고, 그들이 믿을 수 있고 그 속에서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커다란 전체상'을 원한다 -C. 라이트 밀즈, <사회학적 상상력>, 돌베개 그러니까 우리는 김수영을 통해 거대한 정신적 유산을 낳은 한국사회는 어떤 사회였는지, 그가 남긴 정신적 유산의 본질이 무엇이고, 하나의 정신의 기름으로 그것은 오늘에도 여전히 기름지게 지글지글 타오르고 끊임없는 생각을 구워내는 사유의 번철(*전을 부치거나 고기를 볶을 때 쓰는 솥뚜껑처럼 생긴 무쇠판)로 이 시대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 그것은 과연 우리가 충분히 신뢰하고 받아들일 만한 것인지 등 그에 대한 커다란 전체상으로서의 개념지를 제대로 얻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행히 이 책이 만약 교환가치를 지닌 대중적인 문화상품으로 지갑을 열만한 가치 있는 상품이 되었다먼, 그것은 독자들에게 고난 속에서 찾아낸 한국문화와 사상의 알맹이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나아가 내가 바로 한국인이라는 에스니ethnies한 감정구조를 지닌 존재로서, 그 무엇에도 부끄럽지 않은 쿵쾅거리는 정신적 자부심을 지닌 존재가 될 만한 요소를 이 책 속에서 확인할 수 있음을 증명해 준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먼 이 책은 분명 손에 잡히는 개념의 막대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 졸저가 나오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신 분들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먼저, 고절한 시인의 삶과 사색적 이미지를 천재적인 감각으로 화폭에 담은 이미지의 사용을 흔쾌히 허락해주신 박재동 화백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또한 귀한 사진 도면의 사용을 내락해주신 사진가 김석종 대인의 아량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늘 부족한 제자를 어루만져주시고 지도를 아끼지 않으신 조재훈 사부님과 조동길, 김영숙 존사님들께 감사드리며, 바쁜 가운데서도 부족한 원고를 읽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이영숙 시인님, 남상득, 하성환 선생님들께도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특히 기꺼이 졸고를 읽고 과분한 추천사를 써주신 하성환 선생님께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 졸고를 쓰는데 있어서 거친 사유의 숲을 헤쳐나가는데 주체적인 자신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동서양 철학의 지도를 정확하게 개관하고 있는 실질적인 안내자로서 프랑스 철학의 권위자이자 한국철학자인 이정우 은사님에게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음을 고백합니다. 더불어 작업을 전후하여 끊임없는 관심과 위로와 영감을 주신 하재일 시인님과 박용준 선생님, 박세라 님에게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독자께서는 이 텍스트를 읽어나가는데 있어서 모든 장이 나뉘어 있어 의미의 맥락이 갖추어져 있으니 어디서부터 읽어도 무관하리라 봅니다. 글쓴이로서는‘후기’에서‘추천사’로,‘독자에게’,‘본문’순으로 읽는 것이 이 글의 내용을 진실하게 읽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만 마무려나 상관 없는 일입니다. 평론가는 작품과 독자 사이에 존재하는 매개자로, 작품에 대한 친절한 안내자이자 냉엄한 심판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학비재한 늘샘이 호언장담하고는 있지만 어찌 잠자고 있는 야생사자의 코털 하나라도 제대로 건드렸는지, 철학자 김수영의 얼굴을 마음먹은 대로 돌올하게 그려냈는지...나는 <네거리의 예술가들>(사실과가치)에서 얼마쯤 기를 쓰고 용암을 토해냈지만 김수영에 이르러서는 도무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세계의 사상을 자기화한 김수영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얼마나 그를 자기화해 내었는지...그것은 오직 정신의 불을 밝히고 지면을 대하고 있는 눈 밝은 대중 평자들만이 아실 것입니다. 망언다사... 2022. 가을에...

- 독자에게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