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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해외저자 > 인문/사회과학

이름:게오르기 플로롭스키 (Георгий В. Флоровский)

국적:유럽 > 동유럽 > 러시아

출생:1893년

사망:1979년

최근작
2016년 2월 <러시아 신학의 여정 2 (큰글씨책)>

게오르기 플로롭스키(Георгий В. Флоровский)

20세기 러시아에서 가장 권위 있고 뛰어난 정교회 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오데사의 노보로시스크 대학 역사학부를 졸업한 후, 1920년에 대학의 비상근 강사로 위촉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해 프라하로 망명하게 되고, 그곳에서 게르첸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한다.
신학 분야에서 플로롭스키는 뛰어난 독학자였다. 전문적인 신학 교육을 받지 못했는데도, 교부 연구에 매진해 교부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점차 형성된 그의 세계관은 당시 해외로 망명한 종교적 인텔리겐치아 대다수와는 달리 세속 철학이 아닌 신학 전통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잠시 ‘유라시아주의’와 관련을 맺기도 했는데, 서구와 서유럽 철학에 대한 유라시아주의의 조심스러운 부정적 태도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1926년, 갓 생겨난 파리 신학교의 교부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1932년에 서유럽을 총괄하는 대주교의 성직을 받게 되어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파리에서 활동하며 ≪러시아 신학의 여정≫(1937)을 출판했다.
1939년 여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목격했다. 전쟁 기간 동안 유고슬라비아에 머물렀다가 프라하를 거쳐 마침내 파리로 돌아왔다. 이미 교부학 강좌를 다른 교수가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윤리 신학을 가르쳤다. 그러던 중 1948년에 미국의 대주교 페오필의 초청으로 뉴욕으로 이주해 성 블라디미르 신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후에는 학장직을 맡았다. 학장으로 있었던 1948년부터 1955년 사이 신학교의 개혁에 열성적으로 착수해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동시에 권위를 인정받은 정교회 신학자로서 유니온 신학교, 콜롬비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하고 논문을 저술하는 등 미국 대학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1956년부터 1964년까지 하버드 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으며, 브루클린에 있는 성 십자가 그리스정교회 신학교에서도 강의했다. 은퇴 후에도 프린스턴 대학에서 방문 교수로서 강의를 계속했다. 학자와 교수로서 활동하는 동안 수많은 예배를 집전하고 설교를 하는 등 정교회의 충실한 사제이자 영적 안내자로서 부지런히 활동했다. 1979년 8월 11일 프린스턴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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