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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티머시 리어리 (Leary, Timothy)

본명:Dr. Timothy Leary

국적:아메리카 > 북아메리카 > 미국

출생:1920년 (천칭자리)

사망:1996년

최근작
2015년 2월 <[수입] LSD: A Documentary Report>

티머시 리어리(Leary, Timothy)

대항문화의 중심에서 20세기를 살아낸 심리학자이자 작가. 인간의 행동을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는 심리치료법을 고민하다 환각 약물을 만났다. LSD가 합법이던 시절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뒤, LSD가 정서와 정신의 치료를 도울 뿐 아니라 인성을 변화시켜 새로운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환각 약물을 엘리트층의 전유물로 만들려는 움직임에 맞서 모든 성인은 자신의 두뇌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리어리의 평등주의 사고방식은 당시 미국을 휩쓸던 새로운 문화운동과 연결돼 있었다. 리어리는 올더스 헉슬리, 앨런 긴즈버그, 아서 퀘슬러, 잭 케루악, 존 레논, 앤디 워홀, 랠프 메츠너, 켄 키지, 마샬 맥루한, 로만 폴란스키 등과 연대하며 1960~70년대 대항문화의 아이콘이 된다. 리어리 전기 영화를 만든다고 밝힌 바 있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아버지와 친구 사이였고, 배우 위노나 라이더의 대부다. ‘흥분하라, 함께하라, 이탈하라!’라는 슬로건으로도 유명한 리어리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리어리는 1920년 10월 22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났다. 아일랜드 출신의 치과의사인 아버지는 리어리가 열세 살 때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리어리는 스프링필드의 침묵의 벌을 받은 뒤 자퇴했다. 앨라배마 대학교 심리학과에 다녔고, 워싱턴 주립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0~55년 버클리 캠퍼스에서 조교수를, 1955~58년 카이저 재단에서 정신병리학 연구소장을 지냈다. 1945년 메리앤 부시와 결혼한 뒤 딸 수전과 아들 잭을 낳았지만, 1955년 아내 메리앤은 자살했다. 1959~63년 하버드 대학교 인성연구센터에서 본격적으로 LSD를 실험하던 중 캠퍼스에서 이 위험한 남자의 영향력이 커져 말썽이 날까 두려워진 대학 당국이 리어리를 해고했다.

하버드를 나온 리어리는 독자적인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미국 정치문화계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LSD 체험을 시각화한 연극과 영상을 만들고, 할리우드 영화에 출현하고, 우드스톡에 참여했다. 1969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출마할 때는 지미 헨드릭스가 기타를 연주하고 존 레논이 응원곡으로 <함께해요(Come Together)>를 만들었다. 1970년 1월 마리화나 소지 등의 이유로 30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지만, 그해 9월 극좌파 운동단체 웨더맨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탈옥했다. 알제리로 망명해 미국의 망명 정부를 세우려고 했지만 흑인 해방 단체 블랙팬서당에게 감금당하다 스위스로 재망명했다.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갔지만 결국 1973년 체포돼 95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1976년 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된 리어리는 강의와 영화 제작, 글쓰기에 전념하다 1996년 5월 31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환각 경험》, 《당신만의 종교를 시작하라》, 《희망 중독자의 고백》 등 많은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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