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공업입국을 외치던 칠십 년대에 부산 경남공고를 졸업하고 공장근처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있다. 시에 홀려 독학으로 공부해 2000년 시집 ??마당을 쓸면서??를 상재했고 ≪자유문학≫으로 등단해 네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본명은 전홍수이며 범어사 사하촌에서 은둔하고 있다.
삼십여 년을 시의 주술에 씌어 살았습니다. 오로지 시만 생각했던, 외눈박이 시간들이었습니다. 멋진 풍경을 보아도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고, 시의 소재로만 천착했습니다. 작가 조정래 선생은, 글을 쓰는 것은 “황홀한 글 감옥에 갇힌 상태”라고 표현했습니다. 기쁘긴 하되 감옥이면 처절한 역설입니다. 창작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겪는 현상일 것입니다. 허접한 시 한 편 써 황홀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절망하고 자책한 날이 더 많았습니다. 시에는 각성과 위로의 기능이 있다고 한다면, 내 시는 각성의 기능은커녕 유행가 한 자락보다 위로를 주지 못하는 너덜너덜한 요설일 뿐입니다. 독학으로 공부한 한계 안에서, 시를 써 내가 위안을 받은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가방끈이 짧고 함량미달인 시인을 세상은 쌈마이라 부릅니다. 통속소설이 있듯이 통속시에 다름없는 내 시가, 독자에 의해 단 한편이라도 공감을 받으면 다만 감사할 따름입니다. 인구에 회자하는 시 한 편 남기면 여한이 없다는 교만을, 이제 내려놓아야 합니다. 독자를 현혹한 죄가 붉습니다. 몸이 늙어가듯이 시도 낡아갑니다. 특히 현대시의 특징은, 산문처럼 길고 상징이나 비유가 난해해서, 도저히 내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로라하는 시인들이 그런 시를 쓰고, 평론가들이 비평에 가세하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이런 종류의 시를 ‘시 논문’이라는 한 장르로 분리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