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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하 (李賀)

국적:아시아 > 중국

출생:790년

사망:816년

최근작
2021년 10월 <[큰글씨책] 이하 시선>

이하(李賀)

자가 장길(長吉)이고 고향이 창곡[昌谷,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이양(宜陽)]이라 이장길, 이창곡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나라 황실의 후손이지만 그의 성장기는 이미 가문이 몰락한 후였다. 재능이 뛰어났고 입신양명에 대한 포부도 컸지만 봉례랑(奉禮郞)이라는 작은 벼슬을 3년간 했을 뿐이다. 후인들은 그가 남긴 시를 높이 평가하여 시귀(詩鬼)라는 별호로 부르기도 하고 뛰어난 시인이었던 이백, 이상은과 함께 삼이(三李)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학문과 창작에 뛰어나 신동으로 명성이 자자하여 7세 때 방문했던 한유와 황보식 앞에서 즉흥적으로 시를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아버지 이름이 진숙(晉肅)이었는데 그가 진사(進士)가 되는 것은 예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탄원 때문에 결국 과거도 치르지 못했다. 진숙의 진과 진사의 진이 같은 발음이라는 이유였다. 그의 재능을 아꼈던 한유가 특별히 <휘변(諱辯)>이라는 문장을 지어 그를 변호했지만 결국 과거에 응시하지 못했다. 그를 시기했던 사람들이 모함했다는 이야기도 전하지만, 관직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막히면서 평생을 절망과 괴로움 속에서 살았다. 이하는 체격이 마르고 왜소했으며 병을 많이 앓아 그의 집에는 약 달이는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용모도 특이하여 코가 매우 크고 눈썹은 이어져 있으며 손톱이 길었다. 시에서 나이 스물에 벌써 백발이 되었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의 병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하는 또 일생 동안 결혼하지 못했다고 한다. 스스로의 외모와 처지에 대한 강박증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교유도 많지 않았고 이성과의 접촉도 어려웠으리라. 이러한 사정은 이하가 더욱 깊이 자신의 내면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환상을 누차 시 속에 표현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사라진 후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시 쓰기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나귀를 타고 다니다가 우연히 시상을 얻으면 적어서 비단 주머니에 넣어두고 저녁에 가다듬어 시로 완성했다. 크게 취하거나 문상을 가는 날이 아니면 항상 이러했는데 모친이 그의 마음을 짐작하여 슬퍼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는 그가 얼마나 창작에 몰두하고 심취했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하지만 작품의 특징과도 관계가 있다. 그의 시는 정경을 묘사할 때 화려한 색채미나 감각적인 표현을 선호했는데, 이러한 특징은 언어와 문자에 대한 집착과 고민의 산물이다. 예를 들면 이백 같은 시인은 시상이 생겼을 때 일필휘지로 단숨에 시를 적었는데, 이하의 작품은 글자의 선택 과정에서 신중하게 고민을 하고 완성 후에도 계속 새로운 표현으로 고치고 다듬은 흔적이 보인다. 또 한 작품 안에서 빛나는 한 구절의 표현을 추구하는 면도 있는데, 이런 특징들은 비단 주머니에 시상을 모았다가 나중에 정리하는 습관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이하는 평생을 불우하게 살다가 2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이하의 너무나 불행한 일생과 그가 남긴 시의 기이하고 독특한 스타일 때문에 후대의 많은 사람들은 이하에 대해 특별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시귀(詩鬼)라는 그의 별호도 그러하다. 이하의 시는 모두 240여 편이 전하는데, 철저한 고독과 고통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려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세계 역시 아름다움과 기괴함, 신비로움과 슬픔, 차가움과 황폐함이 교차되는 매우 독특한 형태인데, 수많은 중국 시인들 중에서도 아무도 가지 않았던 곳을 향해 걸어간 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자신이 원하여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던 길이 아니라 그의 천재적 재능이 불행한 운명과 만나며 빚어낸 비극의 산물이었으므로 후대의 독자들은 더욱 감동적으로 그의 작품을 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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