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해외저자 >

이름:육기

최근작
2014년 6월 <[큰글씨책] 육기 시선>

육기

육기(陸機, 261∼303)는 오나라 출신으로 서진(西晉) 시기 낙양에서 활동한 문인이다. 그의 생애는 ≪삼국지(三國志)≫의 후일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유비의 군대를 패퇴시켰던 육손(陸遜)이 그의 조부다. 조부 육손은 승상을 지냈고, 부친 육항(陸抗)은 대사마를 지냈으니 그의 집안은 오나라 최고의 명문가다. 280년 서진이 오나라를 침공하자 육기도 부친의 병사를 이끌고 참전했는데 결국 오나라는 멸망했다. 289년 육기는 남방의 인재를 발탁한다는 서진의 정책에 따라서 다시 낙양으로 갔다. 것이었다. 육기는 조국이 멸망한 마당에 낙양에서 다시 가문을 부흥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패망국 출신으로 전승국의 수도에서 입신을 도모하는 처지에서 오는 고충이 많았다. 게다가 당시 낙양의 문화적 분위기를 주도하던 명사들과도 원만한 관계가 아니었으므로 낙양에서의 생활이 상당히 외롭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은 그의 문학이 끊임없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게 된 배경이 된다.
301년, 육기가 모셨던 조왕(趙王) 사마윤(司馬倫)이 제위를 찬탈했다가 살해되었을 때 육기는 사마윤의 찬위를 도왔다는 죄명으로 죽을 뻔했다. 하지만 이때 사마영(司馬穎)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 후 사마경(司馬?)의 수하에서 벼슬을 하다가 다시 사마영에게 몸을 맡기는데 이때 평원내사(平原內史)가 되어 후에 육 평원(陸平原)으로 불렸다. 303년 사마영이 사마옹(司馬?)과 연합해 사마예(司馬乂)를 공격할 때 육기는 하북대도독이 되어 20만 군사를 이끌고 낙양성을 공격했다가 실패하고, 환관 맹구(孟玖) 등의 모함으로 사마영에게 죽음을 당한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그는 낙양 문인들에게 최고의 문인으로 인정받았고 남조(南朝) 문인들에게도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남조의 문학 이론서인 ≪시품(詩品)≫은 육기의 시를 상품으로 분류하고, 육기가 조식(曹植)과 사영운(謝靈運)을 잇는 대작가라고 평가했다. 문학작품 선집인 ≪문선(文選)≫에서도 남조까지의 작품 중에서 육기의 작품을 가장 많이 수록했다. 이러한 사실은 남조 문단에서 육기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대표작
모두보기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