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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구스타프 라드브루흐 (Gustav Radbruch)

국적:유럽 > 중유럽 > 독일

출생:1878년, 독일 뤼벡 (전갈자리)

사망:1949년

최근작
2022년 5월 <Legal Philosophy>

구스타프 라드브루흐(Gustav Radbruch)

1878년 11월 21일 독일 북부의 항구도시 뤼벡에서 출생. 문학을 좋아했지만, 아버지의 소망에 따라 뮌헨대학 법과대학에 입학한 이후 라이프치히 대학과 베를린에서 법학을 수학하고 1902년에 프란츠 폰 리스트의 지도로 형법학과 관련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승 리스트의 주선으로 1903년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옮겨 1904년 카알 폰 릴리엔탈의 지도로 교수자격을 취득했다. 당시 하이델베르크의 정신적 지주였던 막스 베버 그리고 철학자 빈델반트, 리커트, 라스크의 영향을 받아 리스트의 자연과학적, 진화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정신과학의 독자성을 표방하는 신칸트주의 법철학을 수용한다. 평생의 지기였던 헤르만 칸토로비치와의 만남 역시 신칸트주의라는 매개를 거쳐 이루어진다. 게오르그 루카치의 권유로 1914년에 「법철학 기초」를 출간한다. 같은 해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형법/법철학 교수가 되었고, 1919년부터 1926년까지 키일 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13년 사회주의자 아우구스트 베벨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후 사회당에 가입해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두 번에 걸쳐 법무부장관직을 맡았다. 프리드리히 카알 폰 사비니가 1840년대에 프로이센의 법무부장관이 된 이후 독일 역사상 두 번째로 법학자가 법무부의 수장이 된 경우였다. 1926년에 그의 정신적 고향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초빙되어 법철학과 형사법을 가르쳤다. 1932년에 1914년의 「기초」를 전면개정해 「법철학」이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출간한다. 이 책은 한스 켈젠의 「순수법학」, 허버트 하트의 「법의 개념」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법철학 저작으로 꼽힌다. 1933년 나치가 권력을 장악함과 동시에 교수직을 박탈당했고, 2차대전 종전과 함께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복귀해 법과대학을 재건하는 학장을 맡았다. 71세 생일을 갓 넘긴 1949년 11월 23일 영면에 들어 멀리 ‘철학자의 길’이 보이는 산 위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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