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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배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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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사랑해요 목소리높여>

배성태

목회자로 준비되기까지
저자 배성태 목사는 울릉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섬에서 보냈다. 어릴 적 그의 가정은 기독교를 믿지 않았지만, 부친께서 건강이 나빠지면서 온 가족이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그렇게 청소년기에 신앙을 갖게 됐고, 신앙의 고민이 많았던 그는 스물다섯 살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받게 됐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영남신학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했고, 한경직 목사께서 담임으로 계셨던 서울 영락교회에서 부교역자로 목회훈련을 받았다.

교회를 개척하며
영락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생활할 당시 배성태 목사는 자신의 목회를 위해 기도할 때 이런 기도를 했다. 교회 개척과 농촌 목회는 자신이 없으니 그 두 가지만은 하지 않게 해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이렇게 응답하셨다. 같은 교회를 섬기는 권사님으로부터 교회 개척에 대한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교회 개척을 제안 받은 곳은 100여 가구 정도 밖에 살지 않는 서천리(현 서천동) 농촌이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배성태 목사가 서천리에 개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근에 삼성반도체와 삼성전자, 그리고 경희대학교(수원캠퍼스)에 있는 많은 젊은이들을 선교해야겠다는 열정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이었다. 배성태 목사는 서울 영락교회 전도부에 교회 개척을 요청했고, 영락교회 후원으로 1985년 명선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메타교회로의 전환
명선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2년 만에 자립하게 됐고, 개척한 지 10년이 되어갈 무렵, 인근 지역이 영통지구로 개발되면서 급속한 성장을 이루게 됐다. 저자가 담임으로 시무하는 명선교회는 지역의 큰 변화에 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이것은 분명 배성태 목사와 명선교회에 기회임과 동시에 위기였다. 그래서 배성태 목사는 어떻게 하면 명선교회의 성도들과 신도시 주민들 간에 불협화음 없이 교회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던 중, 미국 어느 교회의 교인들이 자원해 교회를 섬기는 모습을 보고, 평신도 사역과 소그룹 중심의 메타교회에 관심 갖게 됐다. 그 내용으로 목회학 박사 학위 논문을 작성했고, 메타교회는 현재 명선교회의 목회철학이 됐다. 그렇게 명선교회와 배성태 목사는 목회의 일대 전환을 맞이했고, 지금도 여전히 기존의 성도들 그리고 청년들과 새 신자들이 조화를 이루는 교회를 목표로 기쁘게 목회하고 있다. 배성태 목사는 1985년 2월에 명선교회를 개척한 이후 지금까지 29년간 섬기고 있다.

배성태 목사는 다음세대 신앙교육에 관심이 있어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종교교육학 석사를, 훌러(Fuller)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메타교회 구조를 통한 명선교회 성장전략」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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