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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종교/역학

이름:강효산(서훈)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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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소설 노무현 1>

강효산(서훈)

12살 어린 나이에 한의학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지금까지 사서오경과 역·음양·오행 등 동양학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 1986년 도미, 잠시 서양철학에 심취했었다. 소설쓰기의 시작은 1999년이지만 첫 작품은《소설 노무현》이다. 저서로는 《역학은 철학이다》(사계절출판사), 《천부경으로 성리학을 시비한다》(도서출판 맑은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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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소설 노무현 1> - 2012년 7월  더보기

노무현 스토리는 많이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부터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퇴임 후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할 때까지 많은 스토리가 있다. 드라마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고 소설보다 훨씬 더 소설적인 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소설 노무현》을 쓰기로 작정했던 것은 내 나름대로 노무현을 그려보고 싶은 욕망에서였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노무현은 현실정치에까지 영향을 주는 인물이다. 과연 노무현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혹자들은 노무현이야말로 바람직한 정치인의 표상이라고 한다. 혹자들은 노무현이야말로 극복해야 할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 노무현을 소설로 옮긴다는 것은 만용이었으리라. 장님 코끼리 만지기. 어리석음을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다. 어쨌든 주로 허구의 스토리를 전개하는 소설일지라도 사실을 왜곡하거나 조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인식 속의 노무현은 정치인이라기보다 사상가에 가깝다. 불꽃처럼 살다간 그의 정치철학은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고 믿는다. 그의 삶과 정치역정은 그 한 마디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노무현은 소위 ‘젓가락군번’이다. 즉 60년대 11ㅇㅇㅇㅇㅇㅇ의 군번을 받고 입대한 사병과 같은 시대에 군대생활을 한 사람이다. 그 시대는 지금 군대와 많이 다르다. 폭력이 난무하는 것은 물론 돈이 없이 군대생활을 하기가 힘든 시대였다. 그는 사법고시예비합격자로서 1군사령부 부관부 병력계의 사병으로 배치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1군사령부 부관부는 편한 곳이다. 단점이 있다면 엄한 군기이다. 시도 때도 없는 고참들의 집합에 시달리는 졸병생활은 힘들다. 그걸 제외하고 부관부는 매우 편하다. 일례로 보병사단의 말단소총수로 근무하던 사병이 연줄연줄 청탁을 넣어 갈 수 있는 부대가 부관부이다. 그 중에서도 1군사령부는 편한 보직이다. 그럼에도 1군사령부 부관부에서 근무하던 그는 최전방 사단으로 전속을 자청했었다. 내가 아는 한, 유래가 드문 일이다. 사실 노무현의 삶은 드문 일의 연속이었다. 고졸이 사법고시에 합격한다는 것도, 판사임용 후 7개월 만에 변호사개업을 한 것도,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는 것도, 지역구도 속에서 부산출마를 강행한다는 것도 다 드문 일이었다. 정상적인 절차에 의한 비주류의 집권은 역사 상 최초의 일이었으며, 자결로써 삶을 마무리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까지 최초의 일이었다. 《소설 노무현》은 두 친구의 삶 속에 비친 노무현을 그린 이야기이다. 법무관이 된 뒤 미국을 위해 일하는 CIA요원의 눈, 고시출신 수사경찰의 눈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책제목은 《소설 노무현》이되 노무현은 주인공이 아니다. 두 친구가 주인공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노무현은 아직 역사적인 평가를 할 수 없는 인물이다. 박정희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노무현과 박정희는 현실정치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소설의 주인공으로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붓다는 존재, 노장은 자연, 예수는 사랑, 공자는 인의를 설파했다. 반면 노무현은 ‘사람 사는 세상’을 설파했다. 무슨 뜻일까? 그 말에서 사람은 평민이다. 즉 보통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자고이래로 모든 역사는 소수의 특권층이 다수의 평민들의 위에 군림하는 구조로 진행되었다. 오늘날에도 계속되어야 할까? 노무현은 ‘사람 사는 세상’으로 역사를 바로세우고자 했다. 지배당하지 않는 비주류들의 세상을 꿈꾼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의 정체다.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른다면 어떤 경우에도 51퍼센트가 옳다. 그것이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대한민국의 주류는 모두 비겁하다는 것이 노무현의 외침이었다. 친일매국노들이 친미사대주의자로 모습만 바꾼 지배세력이 아닌가. 노무현의 상식이 존중되는 정치와 반칙 없는 정치는 그런 현실을 지적한 것이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한편 노무현의 자결은 네오콘(neocon)의 음모였다고 믿는 것이 나의 시각이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는 떨어질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노무현의 사상은 진행형이다. 아직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 것이다. 좌파든 우파든 비주류들의 세상이어야 비로소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권력에 의해 억압당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붓다, 노장, 공맹, 예수 등과 같은 성인들의 사상은 사후에야 빛을 발했다. 노무현 또한 그러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소설 노무현’의 입장이다. 아난존자와 베드로가 있어 붓다와 예수가 빛이 났다는 사실을 기억하고자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언제 올까? 독자들은 그 점을 깊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 글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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