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차 없는 나의 촉법소녀』를 기점으로
그 이전에 쓴 시들을 이제 묶는다
두려움의 내용도 모르면서
지겹도록 오래 도망쳤지만
내 얼굴이 낯설지 않은 시간을
한 번은 살아보고 싶었기에
남아 있는 생의 모든 용기를 걸고
이 불안한 속도와 맞서고자 한다
많은 시인들에게 의지하여 여기까지 왔다
여기 문장들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과분하며 다시없는 영광이겠다
당신들로 인해 나는 비로소 가치로워졌고
어느 거리에서 뿌리 없이 떠돌더라도
당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을 것이다
2021년 3월
한 번도 본 적 없는 프랑스식 정원에 열광했던
나의 이십대에게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는 위로 하나쯤은
허락해도 될 것 같았다.
그때, 낯선 시간의 속을 종횡무진하면서
때때로 우쭐했지만 대개는 두렵고 고독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거울을 보면 말문이 막혔다.
가장 빛나는 순간을 관통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사실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평범해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