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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선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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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뿌리를 위하여>

뿌리를 위하여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낸다. 여기에 실린 것들은 일하다가 논둑에서, 해거름 마룻장의 막걸리잔 앞에서 써진 것들이다. 배운 적도 없지만,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이 시농사 같다. 버겁고 거시기한 농사를 붙든 것 같은데, 어쩔 것인가, 지금은 한 해 중에 가장 바쁜 농번기가 아닌가. 지금 이곳은 모내기가 한창이다. 농사는 철을 놓치면 안 되는 일이라 부지런히 모내기를 마치고, 돌아서면 김매기를 시작해야 한다. 한 고랑을 매면 한 고랑이 환해지고, 두 고랑을 매면 두 고랑이 환해진다. 내 시의 철도 그렇게 들어갈 것이라 믿는다. 더 이상 시집이 돈이 되지 않는 어려운 시절에 부족한 글들을 선뜻 시집으로 엮어준 시산맥사에 감사를 드린다. 오늘도 들판에서 땀 흘리는 이 땅의 농사형제들이, 혹시라도 이 시집을 보고 잠시 고개 끄덕여 준다면 작은 보람이 있겠다.

여자만 소식

참 오랜 시간을 여자만(汝自灣) 소식에 빠져서 지냈습니다. 어느 날 숲속에서 날아오는 한 장의 엽서처럼, 혹은 연서처럼 오는 편지들을 열어보는 맛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게 삼삼했지요. 들판의 바람과 비와 햇볕 이야기, 살아서 숨 쉬는 갯벌의 이야기, 발치에서 빛나는 이름 모를 들꽃 이야기, 농사를 짓는 때마다의 풍경, 읍내 막걸리 집 이야기……. 그렇게 매일 소식을 받아보다가 어느 가을날 찾아간 여자만은 푸른빛과 황금빛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들판이요, 바다였습니다. 갯벌 앞에 마주 앉은 시인은 살 없이 뼈만 굵은 농사꾼이었습니다. 막걸리에, 갯벌에서 나온 세발낙지와 꼬막을 놓고 하릴없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쟁기질을 하다가 말고 내 식구들 사는 집을 돌아보며 썼지요.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피를 뽑다가 썼지요. 가을 추수를 하고 텅 빈 들판을 바라보다가 생각이 나면 형한테 한 바닥씩 보냈지요.” 그렇게 고맙게 받아보았던 소식들은 이제 한 권의 시집으로 묶여서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빌딩들의 그늘에서 나처럼, 번쩍이는 네온사인 틈에서 나처럼, 꿈을 잃어가는 나처럼, 혹시 슬픈 누군가가 있다면…… 여자만 소식은 고향의 소식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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