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목숨줄 붙잡고 있는 부표였다가
때로는 어깨에 짐 하나 더 얹어주는 지게였다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내일로 가자고
낯설고 울퉁불퉁한 길 함께 걷다가
수시로 옆길로 빠져 혼자가 될 때마다
서럽고 쓸쓸하고 눅눅했다
너를 홀대하고 외면하던 배반의 시간들
시여
용서하시라
내가 너를 용서하듯이
깊은 가을 속에서
모란을 만나러 가는 길
길가에 엎드린 작은 목숨들의 숨소리와 만났다.
자꾸만 바닥을 들여다보고 뒤돌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모란은 어디에 피었는지 피기는 피는 것인지
발목을 휘감는 詩를 어르고 달래며 여기까지 왔다.
꽃 농사를 지었다.
작고 못생긴 것들이어서 더욱 버릴 수 없었다.
일으켜 세우고 일으켜 세워도 주저앉는 꽃들 때문에
나는 자주 아프고 쓸쓸했다.
내 꽃밭에 우후죽순으로 돋아난 오종종한 것들
바람결에 서로 얼굴 비비며 눈빛 반짝이는
꽃송이들에 내 얼굴을 부벼본다.
다시 길을 떠나면서
낮은 곳을 사랑하는 작은 것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지극히 아끼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