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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손육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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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금수강산 100명산 탐방기 2>

남기고 싶은 여행 이야기

멋진 꿈을 이루기 위한 여행 세상은 참으로 넓다. 한편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하고 먹고 놀 곳도 무진장 많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한 번 뿐인 자신의 멋진 삶을 추구하기 위하여 끝없이 넓디넓은 세상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직접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하고 즐기면서 자신만의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나 또한 제법 많은 곳의 볼거리를 찾아 꽤나 돌아 다녔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 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했던 생생한 것들을 글로 쓰기를 잊지 않았다. 이번에 출판하는 책에는 청하문학회에서 매년 떠나는 문학기행에 동참하여 3주일 동안 미국과 캐나다의 동·서부와 로키산맥을 따라 대자연을 돌아보았던 여정을 비롯하여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2주일 동안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역사와 문화를 탐방했던 이야기들이다. 한때 유럽에서는 대륙의 끝이라고 생각했으며, 대서양이 시작되는 로카 곶까지 돌아보았던 이야기들도 한 편 한편 글로 써 모았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는 곳곳에 많은 둘레길을 만들어 놓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어느 지방에 가더라도 경치 좋고 한적한 곳에 걷기 좋은 둘레길들을 조성해 놓았다. 그 중에 걷기 힘들기로 이름나 있는 지리산 둘레길을 십여 일 동안 걸으면서 숙박시설과 음식점, 그리고 편의시설이 미흡했으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으면서 고생했던 체험담과 우리나라 민초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지리산 구석구석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들도 함께 엮었다. 한편,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선뜻 걷기를 나서기 어려운 한양 도성 오십리 길을 온 종일 걸으면서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내산을 오르고 내리며, 전망 좋은 곳에서 거대한 서울의 모습도 바라 보았다. 한양 도성을 따라 걷노라면, 우리 선조들은 한양을 오롯이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으며, 우리 역사에서 한양 도성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곳곳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의 현장 이었다. 그리고 수도권에서 멀지않은 곳에 바다 주변길을 걸을 수 있는 대부도의 해송 둘레길도 걸어 보았다. 8월의 뜨거운 불볕더위 속에서 내 체력으로 얼마만큼 걸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하여 이른 아침부터 해변을 따라 땅거미가 내리고 어두워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때까지 온종일 걸어도 보았다. 이처럼 걷기란 결코 만만하거나 적당히 쉽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극한 상항을 이겨 낼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을 몸소 터득하기 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도전했다. 이런 체험들을 몸소 터득하는 것도 나의 작은 꿈을 이루어 보기 위한 경험이요, 극한의 걷기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여러 곳을 여행하거나 먼 거리를 걸으면서 발길이 닿는 곳마다 그곳 특유의 문화도 보고 그들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으며, 미지의 새로운 자연의 모습들을 보고 느끼며 감상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이루어 놓은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돌아보고 대자연 속을 따라 걷고 있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기도 했다. 한편, 길을 걸으면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함께 걷거나 음료수와 커피며 과일을 나누어 먹고, 포도밭에서 첫 수확한 포도를 얻어먹었던 일들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생생한 추억으로 내 머릿속에 맴 돌고 있다. 끝으로 작은 꿈을 이루고 더 넓은 세상을 더 많이 보기 위한 나의 여행 이야기와 역사, 문화 탐방을 위해 멈출 줄 모르는 여러가지 여행을 통하여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했던 이야기들을 한편씩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게 되었다. 이렇게 모은 나의 글들이 오롯이 세상에 나와 빛을 볼 수 있도록 한 편 한편 지극정성으로 감수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원로 시인이시며, 한국 교원대학교 명예교수인 성기조 문학박사님께 무한한 감사와 경의를 드립니다. 또한, 많은 독자들이 재미있게 나의 남기고 싶은 여행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도록 좋은 책으로 만들어 주신 문예운동사의 임직원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한편, 사랑하는 아내를 비롯한 모든 가족이 넓은 이해와 아량으로 응원해 주고 성원해 주었던 것들에 대하여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아울러 어려울 때마다 성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주)볕터건축 황진하 소장을 비롯한 직원 모두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密陽孫氏牧使公派 允聖公宗中世誌

세지世誌를 만들면서 우리들이 나무를 보면, 모두 한 그루에서 수 만 가지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물론 가족 또한 그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런 사실을 망각한 채 오로지 자신을 위한 생업에만 전념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많은 것 같다. 이 세지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 동분서주했던 나 역시 젊은 시절에는 오로지 직장과 가족이며 현실에 매달려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부터 혈통과 뿌리에 대한 소중함을 점차 알게 되었다. 그래서 스스로 뿌리를 찾아보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우리 가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 후 여러 가지 자료와 족보 등을 찾아보면서 내가 지금 정리해 놓을 수 있는 우리가족의 세지를 만들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몇 세世손 몇 대代만이라도 문헌 등을 찾아 정리해 놓음으로서, 후손들 중 혈통과 뿌리에 대한 관심이 많은 누군가가 우리가족의 혈통과 뿌리를 찾아보기 위해 나처럼 해매지 않고, 가족관계를 조금이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세지를 만들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하게 되었다. 우리의 옛 선인시대에도 세대가 멀어지면, 근본을 잃게 되었고 친분이 다하면 정의情誼가 소홀해 지기 마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조로부터 내려온 족보나 가승보 등에서 근본을 찾아 자손들의 지파가 번져도 소홀해진 사이를 족보나 가보 또는 가승보 등을 통하여 그 본과 지파 등을 연결해 주었다. 그래서 후손들 간의 친목과 정의情誼를 돈독히 연결하여 주려고 선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 왔는지 우리는 많은 문헌과 역사는 물론 족보나 가승보, 세지 등을 통하여 익히 알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격변하는 국제사회 속에서 급격한 산업사회로의 변화와 국제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일가친척들은 물론 부모와 형제들까지도 전국 방방 곡곡으로 흩어졌다. 그 뿐만 아니라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뿔뿔이 흩어져 생활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는 가족과 혈통을 이해할 수 있고 그 것들을 연결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족보를 비롯한 세지世誌나 가승보 등을 잘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우리 밀양손씨의 기원은 멀리 진한辰韓의 6부 촌장村長 중 한분이요 무산대수 촌장이신 휘 구례마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기원전 57년 6부 촌장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의논하여 박혁거세를 왕으로 옹립하여 신라를 세웠다. 그 후 신라 제3대代 유리왕은 이 6부촌장들에게 각자 사성賜姓을 하였는데 무산대수촌장이신 휘 구례마 할아버지에게 손씨孫氏라는 사성을 하였다고 한다. 그 후 신라, 통일신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그 혈통이 계속하여 이어져 내려왔다. 원래 밀양, 평해, 경주의 3파인 손씨는 휘 순順 할아버지를 시조로 하였는데 모량 이후의 세계世系는 알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밀성의 손씨는 밀성에 처음 봉해진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정당공 휘 빈(贇)을 중조中祖로 모셔왔는데, 이제 종인들의 가첩을 상고하는데 힘입어 비로소 광리군 이하 20세世의 세계世系를 발굴하여 정당공政堂公 이상의 세世를 이어오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밀양손씨는 고려시대에 밀양의 성황신이 된 손긍훈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많은 인재의 선인들이 중앙정치는 물론 각계 각 분야에서 크게 활약하여 명문대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손시양, 손유 할아버지 등을 비롯한 수많은 선조들은 지극 정성으로 효孝를 행함으로서 계속적으로 충효정려를 받들어 왔으며 신라 국효國孝의 맥과 혈통을 이어오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부제학 손비장孫比長 선조를 비롯한 수많은 인재들이 등용되기도 했다. 당대에 등과한 선조는 문과에 39명, 무과에 126명, 생진사시에 84명이 등과하여 가문을 빛내기도 했다. 특히, 무과에 많은 인재들이 등과하여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맹활약하였으며 혁혁한 공을 세운 선조들이 많았다. 또한 전국 곳곳에 충효정려를 받들어 내려오는 유적과 소록들이 지금까지도 전국 각지에 즐비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렇듯 밀양손씨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속에 조상들의 혁혁하고 찬란한 위업과 효행孝行을 계승 발전시켜 왔으며, 성현들의 숭고한 충효사상을 삶의 근본으로 삼아 훌륭한 업적들을 많이 이루어 놓았음을 역사와 문헌 등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봉건주의 사회에서는 족보와 세보, 가승보, 가보 등이 양반들의 기득권 유지 수단이나 가세家勢 등으로 이용되어 온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기득권 유지 수단 등으로 악용할 수 없을뿐더러 족보, 세보, 가승보, 가보 등을 가지고 상대방 가문 등을 평가한다는 것은 더욱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족보체계는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가족들은 물론 씨족사의 중요한 자료로 그 의미를 갖고 있다. 한편 족보와 세보, 가승보, 가보 등을 꾸준히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조상들에 대한 변함없는 대효정신大孝精神의 계승으로써 숭배와 관심과 후손으로써 반성의 계기로 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먼 훗날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조상으로 기억되기 위한 규범 역할까지 하는 것으로 그 장점을 꾸준히 살려 나간다면, 이것이야 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훌륭한 기록유산으로 길이 남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본 세지世誌는 밀양손씨 목사공파의 일부분으로 37세손인 允聖公 할아버지로부터 46세손世孫까지 기록한 짧은 세월이요, 그다지 많지 않은 우리 가족들을 조사하여 수록한 세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여러 가지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더구나 이 일에만 전념할 수 없어 덮어두었다가 다시 정리하기를 몇 번씩 반복한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 본 세지世誌가 한권의 책으로 출판되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많은 지도편달을 해주신 밀양손씨중앙종친회 회장단과 임직원들을 비롯한 종사연구위원장과 위원, 그리고 밀양손씨 목사공파 회장을 비롯하여 한결같은 마음으로 저를 아껴주시고, 후원해 주신 원로 고문님들께 지면을 통해서나마 진심어린 존경과 고마움을 전합니다.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꼼꼼하게 챙겨보고 확인도 했으나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부족하고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마음과 애정으로 혜량하여 주시고, 조언해 주시고 지적하신 곳은 증보판 발행때에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 확인하여 추가하거나 보완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나름대로 심혈을 기우리고 정성을 다하여 밀양손씨 목사공파 37세조이신 윤성공 할아버지로부터 46세손까지 우리가족들의 자료를 정성껏 정리하여 수록하였습니다. 이 세지世誌가 많은 세월이 지난 후 우리 후손들이 혈통과 뿌리를 찾아 확인하거나 가족관계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후손 모두가 명문대가의 후손이요, 출천대효出天大孝 가문의 후손後孫임을 언제나 잊지 않고 자랑스럽게 가슴에 새기면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심혈을 기울여 출판하게 된 사람으로써 더 없는 자랑이요, 보람이며 큰 기쁨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201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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