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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021
  • 행성어 서점
    김초엽 (지은이), 최인호 (그림) | 마음산책 | 2021년 11월 "먼 은하계,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은 책들처럼"

    "스무 살, 처음 서점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은하계 여행자들에게 우리 행성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알리고 싶었다."(64쪽) 서점 직원은 이 마음을 알고 있다. 마케팅을 버무려 이 책을 조금 더 알리고 싶은 초심자의 혈기. 하지만 10년쯤 지나면 "이제는 그게 헛된 꿈이라는 것을"(64쪽) 알게 된다.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을 책을 파는 <행성어 서점>의 직원이 있다. 그의 서점은 우리 은하계에 있지 않고, 그가 파는 책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지만, 서점 직원인 나는 어쩐지 그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때론 이 책들이 '지긋지긋'(67쪽)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둘러싼 테러가 벌어진다면 '내버려둘 수는 없'(68쪽)는 마음. 행성어를 직접 배우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책만 파는 이 서점을 찾는 사람은 누구일까?

    2021년 10월, 독자의 기대에 응답하는 두 번째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를 출간한 김초엽이 짧은 소설로 독자를 찾았다. 두 권을 함께 읽노라면 단편 소설과는 미묘하게 다른 맛을 내는, 짧은 소설의 경쾌함이 색다르게 읽힐 듯하다. "일단 첫 문장 쓰고 마침표 찍은 다음에는, 끝까지 단숨에." (작가의 말) 접촉증후군 환자들의 포옹부터 같은 언어로 된 책을 읽을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이 나누는 미래의 우정까지. 김초엽이 이야기해온 것들과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들이 산뜻한 우주 여행을 청한다.

  • 주식투자 절대 원칙
    주식농부 박영옥 (지은이) | 센시오 | 2021년 11월 "공부하지 않는 농부는 없다"

    기름진 땅과 좋은 씨앗을 갖춘 농부는 해당 작물에 맞는 계절과 시기를 선택해 파종을 시작한다. 병충해와 자연재해를 피해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살피고 또 살핀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오래 기다린 끝에, 수확의 계절이 다가온다. 그야말로 결실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주식 투자는 이런 농사에 곧잘 비유되곤 한다. 투자자들 역시 투자할 시장과 종목을 고르고 매수 타이밍을 고민한다. 농부가 작물을 보살피듯 매일매일 시장 상황을 살핀다. 그런데 투자자들에게 수확의 계절은 따로 없어 보인다. 기다리는 일은 농부가 몇 수 위인 것 같다.

    '주식농부'로 더 유명한 저자 박영옥은 지속적으로 농심(農心) 투자를 강조해 왔다. 그가 수십 년간 지켜 온 투자 철칙은 투자자들에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초조하기만 하다. 장기 투자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장기간 살아남은 기업이 드물다거나 박스권을 자주 형성하는 국내 실정에는 단기 투자가 맞다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장 상황이라면 부단히 공부하고 묵묵히 인내하는 농심 투자가 더욱 절실하다. 적어도 태풍 소식에 밭을 갈아엎는 농부, 콩 심은 데서 팥이 나길 바라는 농부는 없지 않은가.

  • 요즘 애들
    앤 헬렌 피터슨 (지은이), 박다솜 (옮긴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밀레니얼은 왜 번아웃에 빠질 수 밖에 없는가"

    밀레니얼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하면 된다" 아닐까? 전쟁은 없고 절대적 가난은 줄었고 교육은 언제나 손 뻗으면 닿는 곳에 있었다. 전쟁과 절대적 가난과 교육의 빈곤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어쨌든 "편한 시대에 태어나 열심히만 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아이들"이라는 압박 속에 성장기를 보냈다. "하면 된다"가 체화된 버전은 "해야 한다"라서, 눈과 머리와 손과 발은 언제나 스스로를 더 나은 버전으로 만드느라 숨돌릴 틈 없이 바빴다.

    "하면 된다"가 거짓이라는 건 사회에 나오자마자 알게 됐다. 사상 최고의 실업률, 최악의 취업난. "열심히만 하면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던 기성세대는 원하는 걸 말하는 밀레니얼에게 건방지거나 눈이 높다고 말하며 무엇도 주지 않는다. 해도 안 되는 사회지만, "해야 한다"는 평생 익힌 삶의 기본 방식이라서, 밀레니얼은 울면서도 계속 달린다. 지치지만 멈출 수 없다. 성취감 없는 할 일이 여전히 줄을 서있다.

    우리는 왜 망했는가. 이 책은 우리가 불안하고 지쳤고, 희망조차 없는 이유에 대해 신랄한 분석을 펼친다. 수많은 인터뷰와 자료를 바탕으로 발견한 이 번아웃의 구조는, 그것이 곧 내 삶의 우울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통쾌하진 않지만 속 시원한 깨달음을 준다. 그럼 이제 우린 어찌해야 하나? 책에선 지침을 제공하진 않는다. 사실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다만 책의 시작과 끝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살 필요는 없다."

  • 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은이), 강선재 (옮긴이) | 푸른숲 | 2021년 10월 "여기에 남겠어. 혼자서. 자유롭게."

    지구를 떠난 이들이 정착한 행성 콜로니 3243.12. 무한한 진보를 추구하는 인류는 또다른 행성을 개척해냈고, 주민들에게 이주 통보가 떨어진다. 평생 가족에게 헌신하며 살다가 홀로 남아 노년을 즐기려던 70대의 오필리아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다. 게다가 '재생산'의 주체인 젊고 건강한 주민들은 이주 우선권과 혜택을 받지만, 오필리아에게는 노인이라는 이유로 이주 비용이 부과되고 걸림돌 취급을 받는다. 모두가 이주 행렬에 줄을 서는 가운데, 오필리아는 숲에 몸을 숨긴다. "여기에 남겠어. 혼자서. 자유롭게."라고 선언하면서.

    타인이 추구하는 가치로부터 영원히 이탈하여 스스로 '잔류 인구'가 되기를 선택한 오필리아. '현실'이라는 이름을 달고 무례하게 침입해오는 주류의 모든 잣대를 그는 거부하기로 한다. 세상이 정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틀을 무너뜨려온 작가, 엘리자베스 문. 자폐를 가진 이의 시선으로 쓴 <어둠의 속도>를 비롯해, 그의 소설은 언제나 사회에서 소외되어 외면당한 이들을 향한다. 너무도 견고하게 굳어 있는 '정상'의 개념을 부수는 통쾌하고도 아름다운 SF.

11.52021
  • 나인 (양장)
    천선란 (지은이) | 창비 | 2021년 11월 "어느 날, 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팔 년 전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목 놓아 울다 문득 나무와 들풀이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작가의 말) 천선란의 이 소설은 그 순간 시작되었다. 갑자기 식물들의 소리가 들리거나 손톱 사이로 새싹이 자라기 전까지는 자신이 평범한 고등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유나인. 그에겐 이제 식물의 목소리가 들린다. 세상 사람은 누구도 목격하지 못한 억울한 죽음을 바라보고 있던 식물들의 선량함이.

    2년 전 갑자기 실종된 원우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는 그의 아버지를 나인은 안다. 나인처럼 조금 다른 구석이 있는 나인의 친구들, 미래와 현재도 그 아저씨의 절절한 그리움을 안다. 타인의 슬픔을 안다면 타인을 위해 달릴 수 있다. 숲이 전해준 이야기를 말하는 나인을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는 나인의 친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원우를 위해 노력한다. "한 명이 막는 것보단 여러 명이 막는 게 더 좋다는 것, 무른 흙도 밀리고 밀리다 보면 어느 순간 아주 단단해진다는 것"(376쪽)을 알고 있는 친구들은 그렇게 무용한 것을 위해 노력한다.

    <나나>를 첫 권으로 소개한 소설Y 시리즈와 함께 숲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은밀하게, 자신은 영웅이 아니라는 걸,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다는 걸" (239쪽)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청소년의 산뜻한 달음박질. 소설가 정세랑의 추천처럼 "생장점 가득한 천선란 소설이 가닿아야 할 사람들에게 꼭 가닿기만을 바라고 있다."

  • 마음의 심연
    프랑수아즈 사강 (지은이), 김남주 (옮긴이) | 민음사 | 2021년 10월 "프랑수아즈 사강의 마지막 소설"

    프랑수아즈 사강의 미발표 유작 <마음의 심연> 출간은 2019년 프랑스 문학계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원고는 사강 사후 십여 년 동안 서랍 속에 깊숙히 묻혀 있다가, 그의 아들 드니 웨스토프가 발견하여 빛을 보게 되었다. 사강의 마지막 작품이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발표되었을 때, 독자들은 책방 앞에 길게 줄을 섰고, 초판 부수가 빠르게 소진되어 품절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사강의 첫 소설 <슬픔이여 안녕> 출간 이후 65년, 그의 마지막 소설 <마음의 심연>이 그리는 세계는 어떤 곳일까. 화려한 대저택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공허한 사람들. 생기를 머금은 산뜻한 문장, 공중에 살짝 떠 있는 듯 경쾌하면서도 날카로운 생의 감각. 세상의 도덕과 관습, 온갖 겉치레를 향한 냉소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사강은 “작가는 같은 작품을 쓰고 또 쓰는 것 같다. 다만 시선의 각도, 방법, 조명만이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어떤 소설은 언제나 젊음 속에 머물러 있다.

  • 시절의 독서
    김영란 (지은이) | 창비 | 2021년 10월 "김영란 전 대법관이 읽은 작가들"

    최초라는 이름의 그림자는 외로움일 것이다. 존재의 당연한 요구가 자주 번거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까다롭게 느껴지고 이상하게 여겨지기 일쑤여서 '최초'는 늘 조심스러운 동시에 그 이름을 망치치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운명일 수밖에 없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라는 타이틀의 무게가 어떤 것일지는 짐작조차 어렵다. 다만 그가 "책에서 세상과 싸울 무기를 구하기보다는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세상을 납득해 보려는 도구를 찾아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 말과 그가 이 책에서 골라 소개한 작가들의 면면에서, 쉽지 않은 길을 묵묵히 부딪히며 걸어왔음을 느낀다.

    김영란은 이 책에서 루이자 메이 올컷, 브론테 자매, 버지니아 울프, 도리스 레싱 등의 삶과 그들의 작품을 함께 엮어 살핀다. 작품이 작가의 삶 중 어떤 결에서 탄생했으며, 문학을 통해 벗어나고자 했던 삶의 모습은 무엇이었는지, 끝끝내 발목 잡힌 삶의 덫은 무엇이었는지를 들여다보며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해나간다. 누가 읽어도 좋겠지만 김영란 그가 어린 시절에 읽은 작가들로 책을 시작하는 만큼 10대-20대 여성에게 더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이미 읽은 책과 아직 읽지 않은 책 사이를 거닐며 삶과 책과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자세를 익힐 기회가 되길 바란다.

  • 네 번의 노크
    케이시 (지은이)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0월 "조영주 "케이시는 미야베 미유키를 닮았다.""

    스스로 제작해 판매를 시작한 전자책 한 권으로 독자를 만난 작가가 있다. 아직은 낯설 이름 케이시. 이야기 자체의 힘으로 영화화 판권 계약을 이미 마친 작가가 <네 권의 노크>라는 미스터리 소설을 종이책으로 단장해 출사표를 내민다. 크리픽쳐스 대표 정종훈이 "통찰력 있는 엔딩까지 단숨에 밀어붙이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했다는 이야기. 세계문학상 수상작가 조영주가 "케이시는 미야베 미유키를 닮았다."고 추천하는 작가의 설계도에 주목해본다.

    소설 <화차>에 살 법한 사람들이 이 건물이 산다. 술취한 사람이 욕하며 싸우는 소리가 함부로 내 공간을 침범하는 '우범지대'. 여성 전용 원룸으로 이루어진 3층 건물에서 한 남자가 죽었다. 남자는 살해되었나. 누가, 왜, 이 남자를 죽였나. 1부엔 거주자 내사 기록이, 2부엔 거주자 독백이 이어진다. 301호의 영매, 302호의 디자이너, 303호의 사회복지사, 304호의 경도 지적장애인, 305호의 액세서리 노점상, 306호의 건물 관리인. 방음이 되지 않는 집에 사는 이들은 "서로의 사생활을 대강 알지만 절대로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룰."(23쪽)을 지키며 간섭하지 않지만, 실은 서로에 대해 거의 모든 걸 알고 있다.

    이웃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하듯, 우리는 이 소설 속 여성들의 이름을 끝내 알지 못한다. "과거는 혐오스럽고, 현재는 답답하고 지루해서 오직 미래만 붙잡고 살았어요."(45쪽) "가장 한심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내뱉는 비난들이 우스웠거든요."(68쪽) "요즘은 누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지도 않잖아요."(112쪽)라는 그들의 진술에 새삼 놀라며 다시 돌아볼 뿐. 다정한 연대보다 서늘한 반목에 더 매혹되는 독자를 위해 준비된, 새로운 K-미스터리 스릴러.

11.82021
  • 법정의 얼굴들
    박주영 (지은이) | 모로 | 2021년 11월 "숫자 뒤의 이야기"

    박완서 작가는 "내가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으면 소설을 결코 쓰지 않겠죠."라고 말했다. 인간사, 짧은 말로 단정 지을수록 오해는 짙고 이해는 멀다. 3년, 5년, 무기징역... 숫자로 결론 내리는 것이 법이지만 피해와 가해, 선과 악, 정의, 시스템의 빈틈, 환대나 희망 같은 것을 설명하기에 숫자는 너무 짧고 차갑고 딱딱하다. 숫자 안에 담지 못해 흘러넘친 이야기를 박주영 판사가 모아 이 책에 담았다.

    부모에 의해 살해된 아이들, 동반자살을 모의했다가 살아나서 자살 방조죄로 잡혀 온 이들, 성범죄 가해자의 변호인에 "합법적" 2차 가해를 당하는 피해자, 교화의 기능을 할 수 없을 만큼 낙후된 소년원에서 어두운 미래를 기다리는 아이들. 축약된 단신 한 줄로 짐작할 수 없는 복잡한 얼굴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박주영 판사는 한 명 한 명의 주변을 거닐며 우리가 함께 답해나가야 할 질문들을 던진다. 영원히 완성형일 수 없는 법이 향해야 할 지점을 같이 고민해 보자고 손 내미는 책이다.

  • 피라네시
    수재나 클라크 (지은이), 김해온 (옮긴이) | 흐름출판 | 2021년 10월 "2021 휴고상 최종후보! 환상의 공간, 아름다운 모험기"

    이 책은 '피라네시'의 일기이자, 기억을 잃은 그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한 시도이다. 피라네시가 살아가는 공간. 그곳은 무수히 많은 방과 복도가 이어져 있고, 벽에는 거대한 조각상들이 줄지어 있다. 집 안에는 바닷물이 사방에서 흐르고, 하늘에는 태양과 달과 별들이 빛난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 살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다.

    피라네시의 일과는 나름대로 규칙적이다. 식량과 연료로 사용할 해조를 찾아 말리고, 낚시를 하고, 무한히 펼쳐진 방들을 답사하고, 매일 가볼 수 있는 만큼 멀리 탐사를 떠나 그날 있었던 일들과 떠오르는 생각을 모두 기록한다. 마치 마법으로 건설된 듯한 세계, 이곳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피라네시는 왜 기억을 잃고 혼자 이곳에 남겨진 걸까.

    책의 초반부에서는 독자도 미지의 세계를 막 인식하는 피라네시와 같은 처지에 놓여 혼돈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피라네시가 조금씩 시공간을 입체적으로 인식해감에 따라 마치 최면에 빠지듯이 그 광활한 환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독서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김보영 작가가 "아름답다. 경이롭도록 아름답다. 오랜만에 현실을 온전히 떠나 다른 세계에 다녀왔다"고 말하며 함께 읽은 소설.

  • 브로콜리 펀치
    이유리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0월 "너무 많은 괴로움을 억지로, 결국 별안간 브로콜리가"

    잠에서 깨어난 나는 휴대폰을 확인해 두 개의 메시지를 확인한다. 남자 친구의 오른손이 브로콜리가(초장과 함께 먹으면 맛이 좋은, 우리가 아는 그 브로콜리다) 되었다는 것과 안필순 할머니 댁의 말자(회색앵무)가 죽었다는 것. 초현실적인 소식과 일상적인 소식이 교차하며 그렇게 '이유리 유니버스'는 시작된다. 브로콜리가 된 손을 어떻게 해야 하지? 호들갑을 떨면 손에서 가루가 떨어지진 않을까? 괜히 내 오른손을 내려다보게 되는 순간, 이야기는 당연하게 한 '세계관'을 독자가 납득하게 한다. "너무 많은 괴로움을 자꾸만 억지로 삼키다 보니 그 기관이 고장나서, 괴로움을 그대로, 그대로 받아들이다 결국 어느 날 아침 별안간 브로콜리가"(101쪽, <브로콜리 펀치>) 되는 이 세계. 소설가 구병모, 박솔뫼의 추천처럼 묘하고 매력적이다.

    <빨간 열매> 속, 유골함을 화분으로 만들어달라는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자 식물로 다시 자라난 아버지가 이파리 흔들리는 소리를 내며 잔소리를 하는 세계. <둥둥> 속, 조금의 사심도 없이, 100% 이타적인 감정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아이돌팬의 '덕심'이 외계생명체의 연구대상이 되는 세계. 귀엽고 산뜻한 이유리의 우주를 지나며 다시 오른손을 내려다본다. 소설을 읽는 내내 브로콜리가 되지 않도록, 너무 억지로 참지 말라고 친구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었다. 이 소설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친구들에게 이유리처럼 인사하고 싶다. "거봐요, 웃으니까 또 웃어지죠?"(158쪽, <왜가리 클럽>)

  • 일생일문
    최태성 (지은이) | 생각정원 | 2021년 11월 "어떤 질문을 쥐고 살 것인가"

    인생의 중심 질문을 쥐고 산다는 건 멋진 일이지만, 중요한 만큼 정하기도 쉽지 않다. 갈팡질팡 흔들리기를 그만두고 묵직한 중심을 찾고 싶다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큰별쌤 최태성이 역사 속 인물들의 질문을 모았다.

    삼국 시대부터 민주화 운동까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이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았는지를 살펴보자니 겸허해지기도 동력이 전염되기도 한다. 현재와 과거를 연결 지으며 매번 감동 있는 역사 강의를 펼치는 최태성의 스토리텔링은 이번에도 빛난다.

11.122021
  • [세트] 새 마음으로 + 창작과 농담 - 전2권
    이슬아 (지은이) | 헤엄 | 2021년 11월 "이슬아 작가가 만난 사람들"

    이슬아 작가는 훌륭한 에세이스트이자 훌륭한 인터뷰어다. 첫 번째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으로 그 사실을 이미 증명한 바 있다. 오래 기다려 만난 신간 <창작과 농담> <새 마음으로> 역시 작가의 인터뷰어로서의 면모를 다각도로 볼 수 있는, 좋은 인터뷰집이다. <창작과 농담>은 작가가 흠모하는 예술가들이, <새 마음으로>는 작가가 좋아하는 이웃 어른들이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각기 다른 빛깔로 빛을 발하는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어 꼭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황소윤은 인터뷰란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적당한 긴장감에서 시작하여 서로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차 무르익고 포개어져 가는 일련의 인터뷰 과정이 이슬아 작가의 매력적인 문체로 펼쳐진다. "구체적으로 존경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감사하기 위해." 정성스럽게 묻고 듣고 기록하여 세상에 나온 두 권의 책 중심에는 이슬아 작가의 뛰어난 유연함이 있다. 그리고,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서로를 향한 호기심과 존경심과 배려심이 단단하게 둘러싼다. 인터뷰 현장의 분위기와 인물들의 표정을 감각적으로 잘 담아낸 사진작가의 작품도 인터뷰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김영민 (지은이) | 어크로스 | 2021년 11월 "정치와 인간을 관통하는 김영민의 사유"

    뉴스가 다루는 것이 암만 자극적 이슈 위주라지만, 감안하고 봐도 너무 야만이다. 라고 생각하며 점점 정치에서 멀어지고 있던 차에 김영민 교수가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문장을 빌려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냉소는 현 상황의 지속에 기여하며, 홀로 고고한 쾌락에만 몸담고 살면 시대의 무임승차자가 된다는 사실은 가끔씩 곱씹어주지 않으면 숨 가쁜 일상 속에서 어느새 잊기 마련이다. 김영민 교수는 우리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태어났고, 살아가고 있는 이상 정치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못 박는다. 그는 삶이 곧 정치라는 것을, 한계와 모순이, 행동과 버팀과 받아들임이 곧 정치임을 단호하게 말한다.

    눈만 뜨면 아찔한 뉴스들이 뒤통수를 치지만 도망칠 곳 없는 벌판이 삶이고 정치다. 선 자리에서 다시 생각하고 질문하기를 놓치지 않기. 이 어렵고 평범한 과제를 함께 또 해나가보자고 독려하는 책이다. 물론 김영민 표 유머는 이번 책에서도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 웰씽킹 WEALTHINKING
    켈리 최 (지은이) | 다산북스 | 2021년 11월 "건강하고 진정한 부의 세계로"

    가난 때문에 야간 학교를 다니며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던 한 고등학생은 패션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무작정 해외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일본을 거쳐 패션의 중심 파리에 도착한 그녀는 그곳에서도 악착같이 공부하고 일을 하여 결국 30대 중반,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30대 후반이 된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10억 원의 빚뿐이었다. 베컴 부부보다 높은 순위로 영국 일간지 선정 부자 리스트에 소개된 켈리델리의 창업자, 저자 켈리 최의 인생은 바로 그 때부터 180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삶의 마지막인가 싶었던 그 순간, 저자는 자신의 실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실패를 딛고 일어난 부자들의 공통점을 찾으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핵심은 '부자들이 하지 않는 게 무엇일까?'라는 물음이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태도가 없었다. 그러니 행복해지고 싶다면 먼저, 삶을 갉아먹는 나쁜 습관을 끊어 내야 한다. 돈은 부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의 선한 영향력 그리고 저자의 오늘을 만든 습관, 빈자와 부자를 나누는 결정적 요인들을 책에서 확인해 보자.

  • 모범생의 생존법
    황영미 (지은이)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황영미 신작"

    처음 맞이하는 열일곱, 준호는 '명문고'로 이름난 두성고등학교에 입학한다. 배치고사, 야간자율학습,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행평가, 모의고사, 봉사 활동, 동아리 활동으로 무한 반복되며 휘몰아치는 일정 속에 진로, 외모, 짝사랑, SNS에 대한 고민까지. 고등학교 생활은 만만치 않다. 아니 '생존 기술'이 필요할 만큼 위태로운 일상이다.

    "나는 내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굴러가는지 몰랐다. 늘 그랬다. 모범생답게, 마음이 시키는 일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았으니까." 소설의 목차는 '모범생'으로 통칭되는 이들을 위한 '일상 생존 매뉴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 이름이 불려도 당황하지 않을 것. 둘. 빌런의 등장에 흔들리지 않을 것. 셋. 떡볶이는 먹고 갈 것…' 우리가 통과해야 했던 그 시절. 마음을 보호하며 치열하게 생존해야 했던 그 시절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소설.

11.162021
  • 거인의 포트폴리오
    강환국 (지은이) | 페이지2(page2) | 2021년 11월 "잃지 않는 투자를 배워야 할 때"

    '손실은 짧게, 수익은 길게'라는 주식 격언이 있다. 그러나 그 반대로 행동하는 투자자들이 더 많아 보인다. 손절할 용기가 없어서, 손절하려 했지만 타이밍을 놓쳐서, 팔고 나면 다시 오를 것 같아서 손실은 길게 가져가고, 이 정도면 용돈벌이로는 충분해서, 지금 안 팔면 다시 떨어질 것 같아서, 이익금으로 다른 주식을 사면 더 벌 것 같아서 수익은 짧게 가져가는 투자를 하고 있다면 이제 자신의 투자 성적을 냉정히 점검해 볼 때다. 사람들은 수익은 부풀려 드러내고 손실은 축소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손실에 보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퀀트 투자 전도사로 활약 중인 저자 강환국은 주식으로 돈을 벌기 위해선 손실을 제한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 때 필요한 것은 기계적인 설정, 즉 계량화된 투자 전략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방어형 전략'에 초점을 맞춘 이번 책에서 저자는 최대 손실은 15% 이하로 제한하면서 연복리로 15%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는 다양한 투자 및 자산배분 전략이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매일 9시만 되면 주식 시장으로 출근하여 매매 버튼을 누르려 하는 투자자들에게 1장의 제목이 일침을 가한다. "자기 자신을 믿지 말고 검증된 시스템을 믿어라."

  • 글 쓰는 딸들
    소피 카르캥 (지은이), 임미경 (옮긴이) | 창비 | 2021년 11월 "세 거장과 엄마들"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 세 사람에겐 강한 엄마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부모 자식이라는 동등하지 못한 관계에서 성공적인 사랑을 해내는 이가 몇이나 될까. 큰 사랑엔 자주 실수와 실패와 증오가 따른다. 이 세 거장의 엄마들은 종종 지나쳤고 과했고 넘쳤다. 딸들이 도피처를 찾아야 했을 만큼.

    이 책은 세 명의 강한 엄마와 그들의 거장 딸들의 관계를 추적한다. 저자 소피 카르캥은 이 흥미로운 전기를 생동감 있게 엮는 방법으로 소설적 형식을 택했다. 이들 삶의 장면들을 보여주며 책은 조금 강하고 어긋난 모녀 관계, 글이라는 도피처, 결국 글로 이룬 화해에 관한 이야기를 깊이 파고들어 전한다. 소설 형식의 전기는 늘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키르캥은 "인물들은 이미 뚜렷한 윤곽이 있어서 그 윤곽을 벗어날 수 없다"며 과도한 해석에 대한 우려를 일축한다. 대담한 시도로 탄생한 매력적인 전기다.

  •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유지혜 (지은이) | 김영사 | 2021년 11월 "<쉬운 천국> 유지혜, '사랑은 내 평생의 유행'"

    '여행하고 글쓰는 사람'으로서 <조용한 흥분> <나와의 연락> <쉬운 천국> 세 권의 여행 에세이를 펴낸 유지혜 작가.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았던 지난 2년 동안, 여행하지 못하는 작가로 한국에 머물며 지금의 자신에 기여한 것들을 세심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꾹꾹 눌러 담아 애틋한 마음으로 세상에 내보낸다.

    생애 처음 거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던 날, 새침한 고양이의 잠이 덜 깬 모습, 스물셋에 떠난 유럽여행, 한 쇼핑몰의 모델로 제의받은 엄마 주현을 위해 매니저가 되던 날, 미술관과 토요일, 푸른색 스웨터와 싹싹한 미소와 같은 걸 좋아하는 마음, 고양이와 함께 택배 기사 아빠의 퇴근을 반기는 일. 지금의 유지혜가 있게 만든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사랑"이었다. 작가는 엄마에게 배운 사랑과 아빠에게 배운 자유를 지키기 위한 여정이었음을 고백하며 사랑이 전부인 자신의 세계를 기꺼이 나눈다.

  •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이지영 (지은이) | 글항아리 | 2021년 11월 "조성진에서 정경화까지, 당신에게 물었다"

    클럽발코니 이지영 편집장이 묻는다.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이 책의 질문은 박찬욱 감독과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영화 <아가씨>의 하프시코드 소리며 <올드보이>의 쇼스타코비치 왈츠는 박찬욱 영화의 시각적 순간과 분리되지 않는다. 빔 벤더슨의 쿠바 재즈와 루카 구아다니노의 현대음악에 대한 깊이있는 대화가 오고 간다. 좋은 음악을 경험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음악은 영화를 완성하는 또 다른 배우'라는 박찬욱의 답을 손에 쥔다.

    카푸스틴을 주제로 한 2021년의 손열음 독주회에서 손일훈이 작곡한 <변주곡 아닌데?>가 국내 최초로 공연되었다. 아무런 사전 고지 없이 무대 위 손열음이 관객에게 박수를 청했다. 그 공간의 관객은 음악의 일부가 되어 짝짝, 박수를 치며 변주곡의 요소로 그 공간에 존재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20세기 곡이며 현존 작곡가의 곡도 즐거이 연주하는 손열음은 저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처음 새로운 악보를 읽을 때 좋고 재밌어요. (중략) 악보가 나한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 들죠."(60쪽)

    잘 듣는 이가 건넨 좋은 질문에 조성진부터 정경화까지, 많은 음악인이 정성스럽게 답했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거쳐야 할 수련 기간의 '인내'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말하는 정경화와 베토벤의 소리가 자신에게 쌓이길 기다리는 조성진의 말처럼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젊은 연주자, 지휘자, 작곡가에게는 더 많은 시간을 주었으면 한다.' (14쪽)는 저자의 애정어린 말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될 음악의 시간을 기다려본다.

11.192021
  • 장면들
    손석희 (지은이) | 창비 | 2021년 11월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앵커가 뉴스룸에서 물러난다는 발표가 났을 때 세간이 술렁거렸다. 결은 조금 달랐지만, JTBC에 처음 발을 디딜 때도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입을 댔다. 한국 사회에서 행보만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무게를 가진 유일한 언론인, 그가 28년 만에 단독 저서를 출간했다.

    책은 소용돌이치는 한국 사회의 한 중간에서 손석희의 시선으로만 볼 수 있었을 장면들, 우리가 궁금했던 그 긴박한 순간들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그는 글이 주관적, 개인적 사념으로 흐르는 우를 피하고자 오로지 장면들로만 책을 구성했다고 썼다. 그가 겪어낸 장면들과 그 속에 담긴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이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담백하고 묵직하게 이어진다.

  •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디파 아나파라 (지은이), 한정아 (옮긴이) | 북로드 | 2021년 11월 "2021 에드거상,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어린이 탐정단"

    아홉 살 소년 '자이'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지만 '경찰 순찰대'나 '범죄의 도시' 같은 TV 드라마 시청에 심취해 있다. 자이가 사는 곳은 쓰레기장과 높다란 장벽을 사이에 두고 신도시와 마주 보는 빈민가로, 마을을 통째로 밀어버린다는 위협에 늘 시달리는 상황이지만 자이와 친구들에게 그곳은 친숙한 삶의 터전이자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어느 날, 빈민가 아이들이 연달아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자이는 오랜 수사극 시청으로 다져진 자신의 추리력을 실종 사건을 해결하는 데 쓰기로 한다. 자이를 주축으로 단짝 친구인 '파리'와 '파이즈'를 조사원으로 고용해 꾸려진 어린이 탐정단. 사라진 아이들의 행적을 탐문하던 탐정단은 값비싼 푯값 탓에 평소에는 탈 수 없었던 보라선 열차를 타고 화려한 고층건물의 불빛이 반짝이는 신도시를 향하기로 결심한다. 어린이 탐정단은 과연 TV 드라마처럼 사건을 멋지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당당하고 유쾌한 아이들이 들려주는 치유와 구원의 모험담.

  • 빨간 아이, 봇
    윤해연 (지은이), 이로우 (그림) | 허블 | 2021년 11월 "고장 난 로봇들의 로드 무비 SF 동화"

    로봇과 인류 간의 전쟁으로 인해 인류가 사라진 지구엔 고장 난 로봇만이 남았다. 하나 남은 눈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인공지능 나이스, 거대한 집게 손을 가진 청소 로봇 피스, 머리를 손에 들고 다니는 방어 로봇 팬스와 말을 두 번씩 반복하는 돌봄 로봇 드림. 이 네 로봇은 전설처럼 느껴지는 인간의 아이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기억도 잃고 기능도 결여된 로봇들은 여정 내내 '나는 무엇을 하던 로봇일까'라는 질문을 품는다. 각자가 잃어버린 무언가에 몰두하는 대신 자신들이 가진 것을 다른 로봇과 조합하며 함께한다는 의미를 되새긴다.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우정, 슬픔, 기쁨을 인간보다 더욱 절실하게 체득하는 로봇들을 통해 어린이 독자들은 인간인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곱씹어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우주를 열어주는 '허블어린이' 시리즈의 첫 책.

  • 한낮의 어둠
    율리아 에브너 (지은이), 김하현 (옮긴이)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극단주의 단체 잠입 보고서"

    전 세계적으로 극단주의의 열기가 오르고 있다. 극단주의 단체들은 조직원을 점점 늘리며 영향력을 과시해가는데, 정작 그들의 세 확장 방식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막겠는가. 반 극단주의 단체에서 일하던 저자 율리아 에브너는 이들을 알기 위해 잠입 관찰을 하기로 결정한다.

    저자는 10여 곳의 극단주의 단체에 잠입하여 이들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가입 단계에서 쭈뼛거리고, 신분 위조 사실을 들킬 위기에서 손에 땀을 쥐지만 그는 단체의 일원이 되어 이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문화적인 침습을 하는 방법, 공격적 캠페인을 하는 수법 등을 알아낸다. 책에 서술된 이들의 문화적, 심리적 확산 기술은 활발하고 체계적이며 무지막지하다.

    저자는 극단주의로부터의 방어를 정치인과 보안군에만 기댈 수 없다고 말한다. 제도와 시스템에 생길 수 있는 구멍은 결국 우리 개개인의 강력한 무기로만 막을 수 있다. 이용당하거나 흔들리지 않기 위해선 그들의 수법을 빠짐없이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현재로선 이 책이 그 수법들에 대한 가장 생생한 기록 같아 보인다.

11.232021
  • 번역의 모험
    이희재 (지은이) | 교양인 | 2021년 11월 "'번역 바이블', 12년 만에 나온 두 번째 가이드"

    <번역의 탄생> 이후 12년. 이희재 작가의 정리와 통찰에 도움받았던 독자들이 반가워할 후속작이다. <번역의 탄생>은 '번역의 바이블'로 불리며 번역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이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는 한편 우리글을 바로 세우는 통찰로 일반 독자에게도 찬사를 받았다. 이번 책 역시 대상을 가리지 않고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고개 끄덕이며 읽을 생각들이 담겼다.

    이번 책에서 그가 주장하는 한국어의 원칙은 '낮은 문턱'이다. 읽기에 어렵고 번거롭지 않은 글,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읽히는 글을 위해 역자가 어떤 부분에 공을 들여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쉼표의 사용법, 부사 모으기, 원문을 모조리 살려내지 않기 등의 원칙을 짚으며 그는 역사와 문화적 배경에서 그 이유를 찾아 풀어 놓는다. 언어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책이다.

  • 쾌 : 젓가락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쉐시쓰, 예터우쯔, 샤오샹선, 찬호께이 (지은이), 이현아, 김다미 (옮긴이) | 비채 | 2021년 11월 "장르문학 대가들의 괴담 경연"

    미쓰다 신조, 찬호께이를 비롯한 아시아 장르문학 대가들이 모여 릴레이 괴담 경연을 선보인다. 경연의 주제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젓가락'. 미쓰다 신조의 스산한 단편 '젓가락님'으로 경연이 시작된다.

    초등학교 때 전학온 하얀 얼굴의 '네코'. 조용하고 존재감이 없는 그에게 '나'는 왠지 관심이 간다. 네코가 기묘한 행동을 시작한 것은 급식으로 밥이 나왔을 때부터다. 밥 한가운데에 제사를 지내듯 젓가락을 똑바로 꽂고 무언가를 비는 듯한 모습을 취하는 그의 행동이 궁금했던 '나'.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네코에게 말을 걸고,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엄습하고 마는데…

    <쾌:젓가락 괴담 경연>의 다섯 단편은 독립적인 이야기이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앞쪽 단편에 등장한 인물이 후속 단편에 재등장해 새로운 서사를 이끌고, 풀린 줄 알았던 비밀은 다시 낯선 진실과 이어져 새로운 수수께끼를 만든다.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절묘한 괴담의 향연 자리로 초대장이 도착했다.

  • 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을 것이다
    유운성 (지은이) | 보스토크프레스 | 2021년 11월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아야 한다면"

    영화평론가 유운성의 영화 입문서. 저자는 세 개의 질문을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영화하는가?’ 직관적인 질문을 두고 답을 고르는 사이 부제를 곱씹게 된다. '세기의 아이들을 위한 반영화입문'이라는 부제의 '반'에 대해 작가는 이런식으로 말한다. "반(反)이라는 한자어를 'anti-'의 뜻으로 쓴 것인지 'counter-'의 뜻으로 쓴 것인지도 밝히고 싶지 않다. 사실 이 책은 의미의 그러한 불확정성 가운데서 진동하고 있다." (7쪽) 이 책이 서술하는 대부분의 개념이 이렇게 확정되지 않은 채 진동한다. 저자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야말로 '영화답게 모호하고 개별적과 일반을 넘나드는 '영화'라는 한자어가 마음에 든다."(11쪽) 이제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이 '영화'인가, 라는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네마와 필름, 무비와 모션 픽쳐 그 사이의 진동을 느끼며.

    넷플릭스의 투자로 <아이리시맨>을 촬영한 마틴 스콜세지는 자신이 과거에 만든 영화는 '핸드폰용'이 아니며, 가능한 아이패드로 (특히 아주 큰 아이패드로) 봐달라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3시간 30분에 달하는 이 영화를 한 호흡으로만 봐야 그 체험이 영화적일까? 3D, 4D 스크린이 선사하는, 다른 차원의 체험은 영화적일까? VR의 시대가 여전히 영화적일 수 있을까? 유운성은 에이젠슈테인의 이론 등을 함께 사유하며 우리에게 질문에 답할 기회를 준다. 영화를 보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우리 스스로 물을 수밖에 없는 시대. 요약하거나 정의하지 않는 입문서가 '독자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바탕으로 주어졌다. 이 '반영화입문서'의 격려와 함께 시네필리아의 시간은 계속될 것이다.

  •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조이 윌리엄스, 레이먼드 카버, 이선 캐닌, 스티븐 밀하우저, 제인 볼스, 제임스 설터, 메리베스 휴즈,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버나드 쿠퍼, 메리 로비슨, 리디아 데이비스, 노먼 러시, 에번 S.코널, 댈러스 위브 (지은이), 파리 리뷰 (엮은이), 이주혜 (옮긴이) | 다른 | 2021년 11월 "거장들이 꼽은 '파리 리뷰' 수록 최고의 단편 선집"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이자 ‘작가들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문학 계간지 '파리 리뷰'. 작가의 경력이나 출신국, 성별,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1953년 창간 이래 신진 작가들의 등용문이자 작가들이 새로운 스타일을 탐구할 수 있도록 하는 문학의 실험실 역할을 맡아왔다.

    '파리 리뷰'는 앨리 스미스, 제프리 유제니디스 등 세계적인 명성의 작가들에게 특별한 질문을 했다. 그동안 '파리 리뷰'에 실렸던 단편소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하나를 고르고 그 이유에 대해 해제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렇게 작가들이 선정한 15개의 단편소설과 해제를 담은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가 탄생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레이먼드 카버, 제임스 설터처럼 잘 알려진 작가도 있지만,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가가 대부분이다.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으로 낯선 소설들이 선사하는 진한 여운을 느껴보시길 바란다.

11.262021
  • 사이언스 2022
    내셔널지오그래픽 키즈 (지은이), 이한음, 김아림 (옮긴이), 맹승호, 윤성효, 이융남, 이정모 (감수) | 비룡소 | 2021년 11월 "어린이를 위한 지식 트렌드 리포트"

    이 책은 2010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 해마다 우주, 생태, 역사, 지리, 환경 등 어린이가 꼭 알아야 할 지식을 골고루 선정하여 350여 쪽으로 알차게 꾸린 어린이 종합 교양서다. 영국, 독일, 인도, 싱가포르 등 세계의 어린이들이 함께 읽는 책으로, 올해 처음 한국어판으로 소개된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130년 전통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전문가들이 선별한 주제와 그 분야의 최신 정보를 담고 있다. 인터넷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짜 뉴스를 선별하는데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는 어린이들에게 엄선된 정보를 한 권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한국어판으로 이제부터 매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시리즈이다.

  • 상아의 문으로
    구병모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1월 "쉽게 잠들지 못하는 도시 생활자들에게"

    구병모의 새 장편소설. 구병모의 소설을 꾸준히 탐독한 당신에겐 구병모의 이런 문장에 익숙할 것이다. 이를테면 "그러므로 되돌아가지 않을 거라면 우리는 건강하고 창의적인 삶에 대한 기준을 지금부터 과감히 바꾸는 수밖에 없고, 일련의 현상을 상시 역설수면 상태의 일종으로 간주하는 한편, 눈앞에 출몰하는 모든 비논리적인 사태들을 일상으로 수용하고 익숙해져야 한다." 같은, 동의할 수 없으나 논리적인 장광설 같은 문장.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 시작된 한 '증상'이 있다. 잠을 자는 것도, 잠에서 깬 것도 아닌 상태로 꿈이 '무시로 현실의 급소를 가격'(199쪽) 하는 현실이 바이러스처럼 우리에게 도달한다면, 거짓된 꿈과 진정한 나를 구분할 수 없는 이 세계를, 상시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삶이 열등해진 시대라면, 많은 잠을 투입해야만 지속가능한 삶은 열등한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적은 잠으로도 유지되는 유전자가 진화론적으로 우월해지지 않을까, 구병모의 소설은 상상한다. "모든 구성원이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린 지 오래되지 않았나."(25쪽)라고 묻는 그의 문장. 감염자든, 저성과자든, 그저 이 세계가 '불편'한 사람이든, 비효율적인 소수자라면 그 무엇이든 이 '꿈'에 감염된 이와 겹쳐 상상할 수 있다. 꿈의 바이러스가 당신을 침범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누군지를 말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불편하고 지적인 소설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매달 꿈을 구매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수면제를 처방받고, 지난 회차 처방액은 27,800원이었다.) 꿈을 구매할 수 없어 기어이 수면부족이 바이러스처럼 나를 침범한다면, 나는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메시지를 섬멸한, 어긋난, 바로 엊그제의 일, 눈 깜짝할 사이, 어쩌면 1년에 관한 글."이라는 조재룡의 추천, "현실과 비현실, 이곳과 저곳, 이것과 저것, 끝내는 너와 내가 구분되지 않는 지경에 대해 이토록 집요한 소설을 나는 보지 못했다."는 이장욱의 추천을 덧붙인다. 잠을 잊은 당신은 문장마다 멈추어 서게 될 것이다. 소설 속 진여는 누구인지, 나는 정말 나인지, 되묻는 사이 출구 없는 이야기에 갇혀있는 스스로를 깨닫게 될 것이다.

  • 우타강의 시간 1
    요시다 아키미 (지은이), 김진희 (옮긴이)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저마다의 속 깊은 이야기가 긴 강을 타고 흐른다"

    가장 좋아하는 만화를 꼽으라면 난 지체 없이 요시다 아키미 작가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말한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좋아해서 세어보지 않았지만 한 열 번쯤 보지 않았을까 짐작만 해본다. 착해지고 싶은 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날에 나는 요시다 아키미 작가의 만화를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작가의 신작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이지 기뻤다.

    <우타강의 시간 1>은 <바닷마을 다이어리> 속 스즈의 이복동생으로 처음과 끝에 잠깐 등장한 소년 '이다 가즈키'를 주인공으로 한다. (작가의 집요한 캐릭터 구성이 이렇게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작은 온천 마을에서 온천수 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이다와 함께 일하는 절친한 소꿉친구 '오가와 다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만화는 일과 가족, 우정과 사랑, 궁극적으론 인생에 대한 다정한 조언을 조심스레 건넨다. 두 사람에겐 또 어떤 삶의 풍경들이 펼쳐질까?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이어지는 새로운 인간 드라마, 힘겨웠던 2021년의 끝자락에 자신 있게 추천해 본다.

  • 다모다란의 투자 전략 바이블
    애스워드 다모다란 (지은이), 이건, 홍진채 (옮긴이) | 에프엔미디어 | 2021년 11월 "투자 전략, 알아야 바꾼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작년 같은 상황을 기대했던 많은 투자자들의 증권 계좌가 추워진 날씨만큼 차가운 파란색일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희망찬 내년을 기약한다거나 유튜브만 보고 있기엔 걸려 있는 돈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간의 투자 전략들을 의심하고 검증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MBTI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우리는 자신을 특정 성향으로 규정짓는 경향이 있는데, 자신의 투자 스타일을 장기 투자자, 가치 투자자, 스윙 투자자, PER 신봉자, 1등주 투자자 등으로 규정지었었다면 특히 이 책에 주목해야 한다.

    다모다란 교수는 우리를 현혹하는 많은 투자 전략들이 완벽한 수익을 내기엔 어딘가 다 모자란 구석이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고르고 견지하는 것이 아닌, 상황에 맞게 전략을 바꿔 가며 그 단점을 보완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가용한 전략들을 모두 한데 모아 분석하고 검토하는 일이 필요한데, 그 쉽지 않은 작업을 이 책이 해냈다. 한 골을 실점했는데 계속 같은 전술을 고집하는 축구 감독은 없다. 우리는 투자 전략들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시장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다.

11.302021
  •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
    김혜남 (지은이) | 포르체 | 2021년 12월 "김혜남 박사, 영화에서 읽어내는 인간 본질의 심리"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등으로 독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온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박사가 젊은 시절 틈틈이 써온 원고를 모아 엮은 마지막 선물을 출간했다. 이번 책은 영화에서 읽어내는 인간 본질의 심리에 대한 이해를 담고 있다.

    책에서 다루는 영화는 대중적인 작품들이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캐릭터들이라 분석에 대한 이해가 쉽다. 김혜남 박사는 <봄날은 간다>에서의 헤어짐을 죽음에 빗대어 은수와 상우의 애도에 대해 비교하거나 <왕의 남자>의 놀이판을 통해 퇴행과 억압된 충동의 해방을 설명하는 등 실제 환자를 분석하듯 등장인물의 마음을 이해하고 읽어낸다. 올해를 부지런히 살아온 우리 각자의 마음과 공명하는 부분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니, 올 연말엔 이 책을 통해 마음을 돌보는 따뜻한 시간을 보내봐도 좋겠다.

  • 디자인 너머
    게슈탈텐 (지은이), 오수원 (옮긴이) | 윌북 | 2021년 11월 "피터 슈라이어의 스케치에서 영감이 시작된다"

    피터 슈라이어의 작업은 샤프펜슬에서 시작된다. 샤프펜슬이 없이는 어디도 가지 않는 이 디자이너는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재빠르게 포착하기 위해 바로 스케치를 실행한다. 기아차의 감각적인 디자인, 호랑이 코(tiger nose) 그릴도 피터 슈라이어의 선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펜 하나로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피터 슈라이어의 삶과 디자인 철학을 담은 책. 비행기와 활강을 좋아하던 한 소년이 한 기업의 디자인 철학을 총괄하는 대표자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연대기별로 소개한다.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디자인하는 이의 눈에 비친 세상의 풍경과 키네틱 아트에 비견될 아름다운 자동차 디자인. 함께 실린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감을 얻는다. 성과를 내는 조직의 일하는 방법을 엿보는 즐거움과 함께, 창조성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 숙고하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을 디자인하는 것" (53쪽)이라는 디자인 철학이며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라, 미래에 어디로 갈지 생각하라."(64쪽)라는 경구를 깊이 생각하며, 2022년을 맞이하고 싶다.

  • 단어의 집
    안희연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시인 안희연, 단어를 통해 바라본 삶"

    시인 안희연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어의 문을 열어보는 쪽으로 나의 시가 움직였으면 좋겠다"(<빚진 마음의 문장>,《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현대문학, 2019)라고 고백했었다. 이번에는 '단어 생활자' 안희연으로서, 단어와 함께 유영하는 산문 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 보인다.

    안희연은 작은 소망들이나 단어들을 채집하여 노트에 기록해둔다. 적산온도, 휘도, 블라이기센, 모루, 가시손, 탕종 등 책에서, 영화에서, 뉴스와 일기예보에서 채집한 단어들을 오래도록 살핀다. 살피는 과정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때로는 엄마의 입장, 때로는 도마뱀이나 사과의 입장까지 되어보며 세계를 확장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과, 일상에 스며든 모든 것에 예의를 다하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선한 곳,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 고립의 시대
    노리나 허츠 (지은이), 홍정인 (옮긴이)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1월 "코로나 다음은 외로움이다"

    펜데믹 이후가 전과 결코 같지 않으리란 말에는, 전 지구적 위기가 생각보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버린 우리의 각성도 포함될 것이다. 평안함은 더 이상 디폴트 상태가 아니다. 다음의 위기는 무엇일까? 노리나 허츠는 우리에게 닥친 또 하나의 위기로 '외로움'을 꼽는다.

    그가 말하는 외로움은 단지 홀로 있는 상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고립'이 협소하게 정의되어 있어 그 위협이 과소평가된다고 말한다. 허츠가 말하는 고립은 주변인과의 단절을 포함하여 일로부터의 소외, 정치인과의 심리적 소통 단절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현대 사회의 고립은 신자유주의적 이념으로 심각해졌는데, 자본의 축적을 향한 무조건적 경쟁은 우리 개개인을 파편화하고 점점 더 극심한 외로움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고립의 상태는 사람을 공격적으로 만들고, 포퓰리즘에 응답하게 하거나 사회를 정치적 극단주의로 향하도록 한다. 책은 수많은 사례를 통해 민주 사회의 근원을 흔드는 고립이라는 위험을 분석한다.

    외로움의 문제가 점점 커진다는 데는 이미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이 책이 돋보이는 지점은 외로움이 단지 정서적 문제를 넘어 정치사회적으로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데까지 인식을 확장시킨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처한 고립의 시대라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정부와 기업, 개인이 모두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여 세계를 한데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최선을 다해 더 이상의 척력을 거부해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