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호, 오찬호 추천! 위장하는 특권"
두고두고 회자되는 안수찬 기자의 청년 빈곤 르포 제목은 '가난한 청년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가'다. 이 시대에 가난은 화장되어 일상에 자연스레 섞인다. 눈 앞의 불편한 가난이 없어진 사람들은 마음이 편하고 빈곤 계층은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스스로를 탓한다. 가면을 쓰는 건 가난만이 아니다. 특권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은 연간 등록금 4천만 원, 상류층의 자제들만 다니는 세인트폴 고등학교의 학생들에 대한 참여관찰기다. 뉴 엘리트 계층은 예전의 귀족들처럼 자신들의 특권의식을 과시하지 않는다. 다만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섞일 뿐이다. 이들은 클래식한 문화를 소화하는 동시에 힙합 같은 대중문화도 즐긴다. 부모가 가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험한 것으로 자신을 설명하려 한다. 노력으로 얻은 능력은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가 된다. 이들의 의식 속에서 특권은 뒤로 숨는다. 전면에 나와 있는 것은 능력이다. 가난도 특권도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고등학생들을 참여 관찰하며 쓴 책이지만 한국의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책 표지에 있는 대사, "특권이라뇨? 능력이죠!"는 어딘가 낯이 익다. 위장하는 특권, 숨는 가난 앞에서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 사회과학 MD 김경영 (2019.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