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면, 준비 없이 떠나서 어떤 돌발사건을 만난다 해도 그것대로 겪어보는 것이 나의 무지막지한 방식이었다. 하물며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여행이 아니었다. 나의 준비는 단 한 가지, 자신에게 ‘고독하라, 죽을 만큼 고독하라’고 일러주는 것이었다. 고독은 침묵을 요람 삼아 홀로 자존自存하는 상태이다. 흙 속에 파뭍혀 살지고 있는 고구마처럼 ‘되어져가며’ 사는 것이다. 크나큰 섭리의 품에 안겨, 스스로 넘치도록 강하고 편안한 것이다. -고독하라, 죽을 만큼 35-36p
방송 글이란 최대한 쉽고 평범해야 한다. 표현의 독창성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 영상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효과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최소한의 언어, 그것뿐이다. 방송 글을 쓰는 동안 나의 언어 세계는 한없이 축소되고 빈약해졌다. 다큐멘터리 원고를 쓰다보면 늘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얘기를 어떤 선배에게 했더니 그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고작 2천 단어 내외라는 것이다. 가장 상식적이고 평이한 언어들을 골라 조합해 내는 것이 우리의 작업이라고. 아닌게 아니라 이번 작품의 프롤로그에 썼던 말을 다음 작품의 에필로그에 순서만 바꿔서 거의 비슷하게 쓰고 있는 것을 수시로 발견하곤 했다. 기억과 망각의 강을 넘어 13-14
그와 나는 팔 년 만에, 그는 수화기 저편에 나는 수화기 이편에 있다. 시간은 언제나 밀려오지만 똑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젊은 날에 인식하고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누군가는 작별하지 않고 누군가는 살아남았을지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또다른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프롤로그 11p
행운을 요리하는 레서피가 있습니다. 우선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도마 위에 펼쳐놓습니다. 목표의식으로 육수를 낸 국물에다 노력한 큰 술을 보태 끓여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노력이라는 재료가 잘 녹아들려면 쉬지 않고 저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리한 직감을 넣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신뢰와 헌신도 빠져서는 안 될 재료입니다. 내 입맛에만 맞추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맞추려면 배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비법 한 가지. 자신감 두 큰 술이 들어가면 마침내 행운의요리가 완성됩니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한가지는 내가 걸어온 길은 단지 우연이 아닌, 나 스스로가 만든 행운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경쟁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아이와 자신을 생명공학적으로 바꾸는 것을 두고 쉽게드는 생각은 사실 그것도 자유를 행사한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본성에 맞는 세계를 만들어가는게 아니라 반대로 세상을 맞추기 위해 본성을 바꾸는 것은 자율권을 포기한 극단적 형태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세계를 비판적으로 볼 수 없다.
우리는 인재를 고용할 때 성공한 경력 뿐 아니라 실패한 경력 역시 고려해야 한다. 실패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한 번 실패하면 똑같은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간략히 줄인 나의 '실패자 이력서'는 어떠한가? 직업상의 실패. 학업상의 실패. 개인적인 실패
의문과 슬픔을 품은 채 나를 무작정 걷게 하던 그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쓰라린 마음들은. 혼자 있을 때면 창을 든 사냥꾼처럼 내 마음을 들쑤셔대던 아픔들은 어디로 스며들고 버려졌기에 나는 이렇게 견딜 만해졌을까. 이것이 인생인가.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른다는 게 안타까우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 때문인가. 소용돌이치는 물살에 휘말려 헤어나올길 없는 것 같았을 때 지금은 잊은 그 누군가 해줬던 말. 지금이 지나면 또다른 시간이 온다고 했던 그 말은 이렇게 증명되기도 하나보다. 이순간이 지나간다는 것은 가장 큰 고난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나 지금 충만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나 모두 적절한 말이다. 어떤 이에게는 견딜 힘을 주고, 어떤 이에게는 겸손함을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