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책임을 말하다”
임진왜란을 대표하는 인물은 이순신이고, 임진왜란을 대표하는 기록 역시 <난중일기>다. 처절한 전쟁을 최전선에서 마주하며 숱한 전투를 치른 장수의 기록은 여전히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그렇다면 전례 없는 국난 속에서 조정을 이끌며 어려운 결정과 어쩔 수 없는 판단을 해야만 했던 최고 관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류성룡의 <징비록>은 일기나 후일담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전쟁을 이런 방식으로 맞이하지 않으려 남긴 글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새길 만하다.
미술품 속에 깃든 작고도 내밀한 이야기를 발견해 조근조근 전하는 미술사학자 이종수는, 포와 총이 힘을 겨루는 전장이 아니라 반성과 회한이 오가는 한 남자의 마음 속을 들여다본다. 티 하나 없이 승승장구하던 엘리트 관료가, 생애 처음으로 마주한 무력한 상황을 어떻게 돌파하고 수습하려 했을까. 어쩌면 그 마음은 빠져나갈 구멍조차 보이지 않는 오늘의 현실과도 맞닿지 않을까. 지난 일을 돌아보고 앞일을 헤아리라는 ‘징비(懲毖)’가 새삼스럽지 않은 까닭은, 살아남은 자의 책임이 그 무게를 다하지 못하는 오늘의 아쉬움 때문이겠다.
- 역사 MD 박태근 (2015.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