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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세기의 우주. 깊은 어둠을 가르고 태양계 너머로 날아가는 우주선에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는 이들이 타고 있다. "이번 여정을 통해 얼마나 많은 걸 잃게 될지 생각해봤어?" 로크 본 레이 선장의 질문에 저마다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지만, 이미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다. 우주선은 단 하나의 좌표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폭발하는 별의 심장부를 향하여.
모든 것의 시작은 '일리리온'이었다. 일리리온은 모두의 꿈이자, 광산에서 끝없는 노동을 해야 겨우 소량을 채취할 수 있는 우주에서 가장 희귀한 물질이다. 은하계의 패권을 쥐겠다는 야망으로 가득한 로크에게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은하계를 이루는 모든 물질을 제련하는 용광로의 불꽃. 가장 뜨겁고 가장 환하게 빛나며 폭발하는 신성(노바)의 중심으로 뛰어들어 그 들끓는 용광로에서 일리리온을 마음껏 퍼내오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선 주변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신성에 우주선이 파열되고 목숨을 잃을 위험을 무릅써야만 한다. 그렇게 모두가 미쳤다며 혀를 내두르던 무모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광기의 선장 로크의 우주선에 탑승한 사람들. 일리리온 광산에서 일하는 가족을 둔 쌍둥이 형제, 타로카드 점을 보는 곡예단원들, 고대 20세기의 화석이나 마찬가지인 '소설' 쓰기에 매달리는 학자, 구세계 지구 출신 '시링크스' 음악가가 운명을 함께한다. 공기와 냄새, 소리와 빛을 구현하며 청자의 오감에 가닿는 32세기의 악기 시링크스. 이 소설 전체가 마치 시링크스로 연주하는 한 편의 음악처럼 느껴진다. 거대한 해왕성이 트리톤의 우주정거장에 뿌리는 황금색 빛, 오팔색으로 빛나는 모래, 용암이 끓는 바위 틈새의 데일 것 같은 공기, 황량한 고원을 뒤덮은 안개의 습기. 저 너머의 시공간이 찬란하고 선명하게 펼쳐져 독자의 감각을 자극한다. 움베르토 에코가 "현세대의 가장 중요한 SF 작가"라고 찬사를 보낸 작가이자, 언어학과 SF의 만남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바벨-17>의 작가 새뮤얼 딜레이니. 그의 또다른 강렬한 대표작 <노바>가 그리는 세계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