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금이(今伊).1926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하였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 등이 <현대문학>에 실리면서 등단했다. 1994년 대하소설 <토지>를 완결하였으며, 2008년 5월 5일 세상을 떠났다.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사상계」에 단편 <퇴원>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1968년 <병신과 머저리>로 제 1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47년 경북 군위에서 출생하여 성결교신학대 기독교학과를 수료했다. 1977년 단편 '하얀 헬리콥터'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신화 연구에 매진했으며, 번역문학 연감 미메시스가 선정한 '한국 최고의 번역가'로 뽑히기도 했다.
194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6·25로 아버지와 형을 잃고, 이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15세 때 가장이 되었다. 1966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고향을 상실한 사람들의 애환과 시대적 모순을 충청도 특유의 토속어로 포착, 형상화했다.
1956년 효봉 스님의 제자로 출가, 28세 되던 해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1975년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지자 강원도 산중에서 지내다, 2010년 세수 78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 후장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8·15 광복 직후 경성제국대학 예과 교수를 거쳐 1974년까지 서울대 사범대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했다. 사상과 관념을 배제한 투명한 서정으로 시정(詩情)이 넘치는 생활을 노래했다.
서강대 영문과 교수이자 번역가, 칼럼니스트, 중·고교 영어교과서 집필자로 활동했다. 김현승의 시를 번역하여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으며,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 으로 올해의 문장상을 수상했다. 암 투병 끝에 2009년 세상을 떠났다.
1925년 경북 청송군에서 태어났다. 1944년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으며, 1983년 '한굴 글쓰기 교육 연구회'를, 1993년에는 '우리 말 바로 쓰기 모임'을 창립했다. 200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03년 별세했다.
1937년 도쿄 빈민가에서 가난한 노무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83년 이후 직접 지은 5평짜리 오두막집에서 검소한 삶을 살다가 2007년 별세했다.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무고하게 고난 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을 작품의 주요 주제로 다뤘다.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교사, 회사원, 출판인 생활을 하다가 1968년 등단했다. 현대문학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대한민국예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