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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봤어? 영 머니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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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과 냉소에 맞서는 유쾌한 대화"
생각해봤어?
노회찬.유시민.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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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는 나누는 힘이 있고, 글에는 전하는 힘이 있다고 했던가.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이 모여 때로는 짧고 굵게, 때로는 길고 깊게 한국사회의 쟁점을 나눈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까페’가 책으로 나왔으니, 비로소 양수겸장이 이루어졌다 하겠다. 교황 방한, 땅콩 회항처럼 뜨거운 이슈부터 원전, 불평등, 교육 같이 오래된 문제까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 고민해야 할 열네 가지 질문을 던지고 서로 생각을 나누는 과정에서, 듣고 읽는 이 역시 이전의 내 생각, 지금 내 판단, 이후 내 예측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빗대어 판단할 수 있겠다.

물론 여기서 그치면 재미는 절반이다. 세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고 말 잘하고 생각이 깊다 할지라도 모든 걸 아는 건 아닐 테고, 안다고 해도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중권은 “듣는 것이 없으면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되고, 말하지 않으면 함께 잘사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전자가 이 책의 효용이라면, 후자는 각자의 몫이다. 세 사람이 티격태격하며 찾아낸 방법에 신랄한 비판이 더해진다면, 이 생각들은 쇠가 단련되듯 단단해져 오늘을 내일로 바꿔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무기력과 냉소에 맞서는 유쾌한 대화에 당신을 초대한다. - 인문 MD 박태근
이 책의 한 문장
우리는 어떤 답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 책을 내지 않았다. 그보다는 삶에 필요한 무기를 찾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무기력한 시대일수록 냉소가 지배한다. 그 냉소에 맞설 수 있는 힘이 바로 말과 글이다. 세상을 바꿀 권력이나 자본이 없다고 여기는가. 우리는 여전히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글로 나눌 수 있다. 마르코스가 말했던 것처럼 말과 글은 우리의 무기이다. 이 책이 작으나마 그와 같은 역할을 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북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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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부모 사이에는 통역이 필요하다!"
내 아이가 힘겨운 부모들에게
오은영 지음 / 녹색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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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혹은 중2병. 천사같이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던 아이들이 달라졌다. 화를 내고 입을 다물고 방문을 걸어 잠근다. 아이들이 달라지는 만큼 부모들도 변했다. 아이가 어릴 때와는 달리 잔소리나 충고로 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더 불안해진다. 아이들은 아무리 커도 그렇다. 자기는 부모에게 못되게 굴고 상처를 줘도, 부모는 자신에게 상냥하길 원하고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등의 방송을 통해 영유아 자녀와 부모의 관계를 극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을 보여준 오은영 박사가 이번에는 사춘기 아이와 부모를 이야기한다. 사춘기 아이들의 행동과 마음의 괴리를 설명하고, 여러 가지 상황에서 아이들이 실제로 느끼는 감정을 들려준다. 청소년의 뇌 구조 같은 어렵고 딱딱한 전문 지식이 아니라, 지금 바로 옆에서 상황을 보고 이야기하듯 편안하고 쉽게 풀어놓았다. - 좋은부모 MD 강미연
이 책의 첫 문장
요즘 아이들의 사춘기가 언제쯤 온다고 생각하시나요?

저자의 말
얼마 전 '무한도전' 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간 적이 있어요. 멤버가 다들 아이 아빠들이었던 터라 저를 만나자 앞다투어 평소 궁금했던 점들을 묻기 시작했지요. 그때 한 멤버가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다툴 때 누구를 혼내야 하는 거냐고 물었어요. 제가 해준 대답은 일단 혼낸다는 생각부터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혼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가르쳐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아이가 사춘기라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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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욕망의 월스트리트로 출근한다"
영 머니
케빈 루스 지음, 이유영 옮김 /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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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 <타임스> 기자를 거친 저자가 월가의 신입사원이 된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을 2년에 걸쳐 취재했다. 출간 당시 월가의 고뇌와 좌절, 욕망을 훌륭하게 직시한 작품으로 꼽히며 큰 화제를 불러모았고, 현재 미국 FOX TV에서 드라마 제작을 앞두고 있기도 한 작품이다.

'2008년의 그 날'이 어느덧 7년 전의 일이 되었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가 보여줬던 스트리퍼와 마약 파티로 대변되는 이들은 이제 월가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업계 베테랑은 말한다. 책에 등장하는 8인의 신입사원들은 금융위기 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이었다고 술회한다. 그리고 입사가 결정된 그들의 직장은 이른바 'A급 전범들'이었다. 골드만삭스, JP 모건, 메릴 린치 등... 그들을 가리키는 수식어가 '제왕'에서 '거대한 흡혈 오징어'로 추락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인류 최악의 사이코패스로 경멸 당하면서도 동시에 안에서는 여전히 주당 100시간을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이었다. 마약이라도 하지 않으면 뇌가 폭발해버릴 것 같은 업무량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매일은 여전했고 이에 더한 모멸감과 죄의식은 깊어만 갔다. 책은 실패보다 성공에 익숙했던 엘리트 신입사원들의 무너져가는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묻는다. 인간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중요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대의 자본과 인간이 엉킨 거대한 시스템에 관한 가장 흥미롭고도 슬픈 그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경영 MD 채선욱
이 책의 한 문장
일상의 변화는 결국 1년 차 애널리스트들의 정신세계를 변화시킨다. 기이한 용어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무의식이 본능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월가의 문화 세례를 한껏 받은 그들은 급기야 부모나 룸메이트 그리고 친구들 앞에서도 날카롭고 직설적인 대화를 이어 간다. 좀처럼 화제에 오르지 않던 돈이 일상생활의 주된 얘깃거리가 되고, 사회적 관계들은 모두 거래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자본시장 안의 세계는 점점 더 큰 것으로 느껴지게 되는 반면, 그 밖의 세계는 별 의미 없는 것으로 격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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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직전, 재난 같은 삶이 내는 파열음"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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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의 기미는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취업 전선에서 낙오한 후 겨우 진입한 대기업 고객센터에서 개인정보 유출 후 성이 난 고객들의 감정 앞에 무방비로 놓이기까지. (어디까지를 묻다 中), 우아한 중산층의 세계에 사는 '깨어 있는' 주부가 맞은 편 아파트에서 아동 학대가 분명한 풍경을 목격하기까지 (이창 中), 마침내 감정을 착취당하던 '을'들이 덩굴식물로 변해버리는 전염병이 창궐하기까지. (덩굴손증후군의 내력 中) 삶은 재난처럼 급작스럽게 휘몰아치고, 대체로 사람들은 '그것은 나만은 아니기를' 소망하며 타인의 재난을 방임하고 지나쳐 간다. 그 배에 탄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그 빌딩에 있던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그 공장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 <파과>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청소년문학, 순수문학, 장르문학을 자유롭게 유영해 온 구병모의 두번째 소설집. 집요한 관찰자의 눈으로 구병모는 재난 같은 삶의 순간들을 날카롭게 베어 소설로 내놓는다. 극히 현실적이라 오히려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길고 정확한, 구병모만의 독특한 문장과 함께 선명한 미감을 만들어 낸다. 덩굴이 되어버린 사람을 다른 사람이 베어버리는 풍경은 초현실적이지만, "보기에 좀 불편해 그렇지, 못 본 척하고 가만있으면 지낼 만은 합니다." 라고 주절대며 을이 을을 착취하는 풍경은 낯선 일이 아니다. 이 묵시록의 세계가 실은 우리가 사는 세계임을 인식할 때, 서늘한 깨달음이 지금이 바로 폭풍 직전임을 속삭인다.
- 소설 MD 김효선
책속에서
내가 하는 모든 사소한 일들과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들이 사회 정의를 이루는 근간이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족 모두가 이민을 갈 계획도 능력도 없는 이상 이곳은 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게 다른 이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보고 그저 눈살만 찌푸리기를 넘어 그것을 제지할 자격과 의무가 어찌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가령 오후 4시경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쁘띠보자르니 유리드믹스니 하는 놀이 강좌를 마치고 나온 여자들이 스타벅스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의 아이들을 유모차에 방치한 채 열랑과 당분이 과다한 아이스코코아를 한 잔씩 쥐여주곤 남편 욕 시댁 뒷담화에 열광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장면만 보아도, 유의미한 공동체적 삶과 무관한 푸념을 늘어놓는 모습에 혀를 찬다. 그런 내가, 건너편 집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 가능성이 농후한, 아니 확실한 일을 그냥 묵과했어야 한다는 뜻인가? 당신들이 말하는 정의와 당신들이 그리는 미래는 고작 그 정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