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적 환상화가이자(물론 프라하 예술학교 학생으로서) 매력적인 파란 머리 여학생 카루. 그러나 베일에 싸인 그녀의 사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어둡고 강렬했다. 괴물들을 부활시키는 데 필수적 요소인 생명체들의 ‘이빨’을 구하러 다니는 카루는 손바닥에 새겨진 하마스에서 강렬한 힘을 내뿜고 각종 살상 무기의 달인이며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전사이기도 했다. 전 세계 어디든 드나들 수 있는 ‘포털’을 통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가 이빨을 구해 바치는 대상은 소위 반인반수의 괴물들은 키메라 족. 이 아름답고 신비한 소녀는 무엇 때문에 괴물의 일족이 되어 자신을 희생하는가.
다양한 영어덜트(YA) 판타지 로맨스 소설의 인기 속에서 등장한 <연기와 뼈의 딸> 시리즈는 시작부터 비슷한 시기의 작품들과 그 궤를 달리한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그리고 묵시론적인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적 설정을 담은 작품들과는 달리 레이니 테일러의 이 시리즈는 ‘정통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포털을 통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카루의 초반 모험에 이어 천사들과 키메라들의 대규모 전쟁을 거쳐 작품은 인간 세계를 지배하려는 새로운 종족들의 대규모 공격까지 그려낸다. ‘연기와 뼈의 딸’ 카루와 ‘불꽃 눈을 가진 괴물 사냥꾼’ 천사 아키바의 비극적 로맨스도 가슴을 아리지만 천사족과 키메라족의 전쟁으로 표현되는 탐욕과 욕망, 그리고 그 속에서 희생되는 죄 없는 이들의 불행도 비중을 두고 진지하게 묘사해낸다. 로맨스보다는 판타지에 더 방점을 둔 이 시리즈는 작가의 작은 머릿속에서 불어 닥치는 거대한 폭풍과도 같은 작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점은 여러가지지만, 그중에서도 사회 부조리를 작품 속으로 끌어와 독자들로 하여금 현실의 일부를 바라보도록 만드는 힘을 최고로 꼽고 싶다. 이는 90년대에 대표작을 쏟아냈던 그가 늘 소지했던 장점이기도 하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전작을 탐독하며 작가 경력을 시작한 '사회파'의 후예여서였을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각종 형사 법규가 내포한 딜레마,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정의' 등 당대 일본 사회의 법률과 사회 체계의 헛점을 공략하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던 독자들에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왔다. 그리고 이 질문들이 그의 '픽션'에게 리얼리티를 부여함으로써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더 깊이 끌어당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 이후로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감상적인 휴머니즘으로 천천히 바뀌었다. 소위 '신본격'이라는, 트릭 자체에만 집중한 미스터리를 비판하는 패러디-미스터리 소설 시리즈를 내던 시점이 분기점이었지 싶다. 그 즈음의 히가시노 게이고는 동시대 자체에 대해서도 비슷한 종류의 피로를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21세기의 히가시노 게이고는 미야베 미유키와 마찬가지로 시스템의 부조리를 공략하는 대신에 인간의 선함이라는 다소 막연한 해결책에 희망을 건 듯하다. 이 두 작가에게서 초기의 '쨍한 맛'이 사라진 것은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와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죽지는 않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공허한 십자가>는 서로 관계 없어 보이는 사건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사형제도의 적합성에 대해 묻는다. 살인자를 죽이고 나면 어떤 점이 나아지는가? 그때 유가족에게 드리워진 짐은 덜어지는가 아니면 제삼자들의 호기어린 '정의'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가? 피의자를 죽이는 형벌을 주고 나서 형법이 교화를 말한다면 과연 교화의 대상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때, 사형이 집행될 때 속죄는 종료되는가? 아니면 남은 속죄는 누구의 몫인가? <공허한 십자가>는 언뜻 관계 없어 보이는 사건 간의 링크를 찾아내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그 링크가 지속적으로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무래도 즐겁게 읽고 나서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점은 아직은 남아 있다고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