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하고 낯설고 조심스러운 한 줄이 되고 싶었으나, 마침표를 찍고 나면 언제나 그렇듯 범상하고 낯익고 부박했다.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인정한다고 해서―날아오를 듯한 가벼움이나, 언제 부서져 무의미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비눗방울 같은 불안정함이 때론 마음에 들기도 한대서, 두툼해지고 무거워지고자 하는 열망과 분루 자체를 언제까지고 접어 버린다는 뜻은 아니었다.
앙상한 가지에 나름대로 잎을 틔우는 동안, 내 언어에 들러붙은 거라곤 단단한 뼈도 팽팽한 근육도 아닌 그저 출렁거리는 군살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차릴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새로운 변명거리를 적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일테면 극도의 절제 미학을 지닌 빼어난 단편 문학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한 줄의 문장만 빼내도 기둥 아래 괴었던 아랫돌을 뽑은 것처럼 전체 구조가 흔들린다 하는데, 그러면 빼도 상관없는 문장 즉 군살은 반드시 빼야만 하나. 모두가 극한 수련으로 접신하는 구루가 될 게 아닌 바에야, 자기 척추가 감당할 수 있는 하중의 배둘레햄 정도는 그런대로 사랑스럽게 토닥이고 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 단편집은 그런저런 변명의 집적물이며, 미처 연소시키지 못한 지방질이 곳곳에 끼어 있을 것이다. 그것마저 살뜰히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 전하고 싶다.
언제 다시 이런 과분한 지면을 얻을지 모르니, 호명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내 일생의 지기인 당신.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편집자로 활동하다, <위저드 베이커리>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폭풍 직전, 재난 같은 삶이 내는 파열음"
파국의 기미는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취업 전선에서 낙오한 후 겨우 진입한 대기업 고객센터에서 개인정보 유출 후 성이 난 고객들의 감정 앞에 무방비로 놓이기까지. (어디까지를 묻다 中), 우아한 중산층의 세계에 사는 '깨어 있는' 주부가 맞은 편 아파트에서 아동 학대가 분명한 풍경을 목격하기까지 (이창 中), 마침내 감정을 착취당하던 '을'들이 덩굴식물로 변해버리는 전염병이 창궐하기까지. (덩굴손증후군의 내력 中) 삶은 재난처럼 급작스럽게 휘몰아치고, 대체로 사람들은 '그것은 나만은 아니기를' 소망하며 타인의 재난을 방임하고 지나쳐 간다. 그 배에 탄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그 빌딩에 있던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그 공장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 <파과>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청소년문학, 순수문학, 장르문학을 자유롭게 유영해 온 구병모의 두번째 소설집. 집요한 관찰자의 눈으로 구병모는 재난 같은 삶의 순간들을 날카롭게 베어 소설로 내놓는다. 극히 현실적이라 오히려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길고 정확한, 구병모만의 독특한 문장과 함께 선명한 미감을 만들어 낸다. 덩굴이 되어버린 사람을 다른 사람이 베어버리는 풍경은 초현실적이지만, "보기에 좀 불편해 그렇지, 못 본 척하고 가만있으면 지낼 만은 합니다." 라고 주절대며 을이 을을 착취하는 풍경은 낯선 일이 아니다. 이 묵시록의 세계가 실은 우리가 사는 세계임을 인식할 때, 서늘한 깨달음이 지금이 바로 폭풍 직전임을 속삭인다. - 소설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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