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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한 문장

맛으로 따지면 맏물보다 제철이 더 낫건만 왜 굳이 맏물에 몸달았을까. 맏물 사랑은 맛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 과시욕, 허세를 좇는 유희에 가깝다. 맏물 가다랑어 소비 붐은 갑자기 거부(巨富)가 된 에도의 상인들 사이에서 촉발됐다. 이들은 당대 패셔니스타 내지 트렌드에 민감한 세칭 인싸족이었다. 음식 하나를 사 먹어도 즐거움과 멋을 중시했다. “가격이나 가성비 같은 것은 개나 줘라.” 두둑한 주머니 사정을 배경으로 흥청망청 돈을 뿌리며 새로운 맛과 멋을 추구했다. 이들 부류는 세련미를 뜻하는 이키(粋), 무언가 하나에 꽂혀 멋을 추구하는 쓰(通) 같은 문화 조류를 일으켰다. 에도판 뉴웨이브다. 이들은 유독 맏물 가다랑어에 꽂혔는데, 그 행태가 흡사 오타쿠를 빼닮았다. 따라서 맏물 가다랑어 광풍은 졸부 인싸족의 멋내기와 뽐내기, 즉 허영기 어린 소비였다. 그러다 보니 맏물 가다랑어 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건 당연했다. <1장. 애잔한 서민의 맛>에서

사카나와 일본. 서영찬 지음

나르시사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죽은 것들보다 살아 있는 것들을 더 무서워해야 한다고. [……] 우리는 그런 멍청한 말이 어디 있나 하고 생각했다. 아니 어떻게 나르시사를, 예를 들어 「엑소시스트」의 소녀 리건보다, 우리 집 정원사 페페 아저씨를 살렘의 뱀파이어나 악마의 자식 데미안보다 더 무서워할 수 있을까. (「괴물」 )

투계.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 지음, 임도울 옮김

2021년 9월 9일 오후 10:05 가을장마가 끝났나 보다. 화창한 날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하다. 연이 어르신이 보따리에 가지가지 물건을 챙겨 넣으며 집에 가자고 하신다. 요 며칠 비가 와서 비가 그치면 가시자 했다. 오늘은 날이 맑아서 비 핑계는 물 건너갔다. 다른 것으로 화제를 바꾸어야 한다. 어르신이 집중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프로그램실에 있는 아기 모형 인형을 가져왔다. 연이 어르신께 안겨주며 아기를 봐달라고 부탁드렸다. 실제 아기인 양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아기가 웃는다며 가만히 들여다보신다. 아기 볼에 어르신 볼을 비비고 발을 만지더니 차갑다고 이불을 덮어주신다. 한참을 아기 보는 일에 푹 빠지셨다. 안고 다니시며 아기 자랑을 하신다. 울지 않고 웃기만 하는 순둥이라고. ― 김홍남

돌봄의 얼굴. 김영희 외 지음, 옥희살롱 기획

사회를 크게 변화시키는 계기는 종종 무엇인가를 나서서 하던 사람들이 별안간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늘 당연하게 하던 행동을 거부하는 것이다.……거부의 행동이 그때까지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상의 자명성을 벗겨내주기 때문이다. ─ “들어가는 글”에서

미셸 푸코. 하코다 데쓰 지음, 전경아 옮김

케언곰 산맥은 편암과 편마암이 이룬 낮은 구릉지 위로 솟아난 화강암 덩어리가 만년설에 침식되고 서리와 빙하와 물줄기에 쪼개지고 부서지고 깎여 만들어졌다. 수백 평방 마일 이상의 방대한 면적, 수많은 호수, 4천 피트가 넘는 고도 등의 지형적 특징으로 지리학 책에서도 종종 언급된다. 하지만 지형이란 산의 희미한 복제일 뿐이며, 그 실체는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모든 실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_ 「고원」

살아 있는 산. 낸 셰퍼드 지음, 신소희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