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코난 도일의 단편 「마지막 사건」에서, 셜록 홈즈는 스위스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숙적 모리어티 교수와 맞대결한 끝에 그와 함께 추락한다.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실제로 믿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서두를 여는 『셜록 홈즈: 모리어티의 죽음』은 홈즈와 모리어티가 폭포에서 추락한 지 닷새 후, 미국 핑커턴 탐정 사무소의 프레더릭 체이스와 코난 도일 원작 『네 사람의 서명』에 등장했던 런던 경시청의 애설니 존스 경감이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조우하여 모리어티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하는 데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해관계가 맞아 연대를 하기로 한 두 사람은 시신에서 발견된 암호문을 단서로 런던에 세력을 뻗치기 시작한 미국의 범죄 거물을 추적해 나간다. 저자의 전작인 『셜록 홈즈: 실크하우스의 비밀』이 코난 도일의 스타일을 충실히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작품은 왓슨이 아닌 새로운 화자의 목소리로 셜록 홈즈의 세계를 조망하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사건은 더욱 긴박감 넘치고 잔혹하며, 스케일이 커졌다. 작품 초반에 품게 되는 홈즈와 모리어티에 대한 의문은 어느새 뒷전이 될 정도로(!) 쉴 틈 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건들을 따라가다 보면 끝내 충격적인 반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정확히는 홍콩에서 온 추리소설을 읽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기라성같은 역사를 쌓은 나라에서 나온 작품들을 읽기도 바쁜데 이 분야에서 '처음 보는 나라의 처음 보는 작가'를 선뜻 선택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지런한 팬들은 이 작품을 '발견'했고, 드디어 미스터리 팬들 사이에서 <13.67>의 이름이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다.
<13.67>은 추리소설의 룰을 뒤엎는 스타일의 작품은 아니다. <13.67>은 더 어려운 작업에 도전한다. 추리소설의 역사가 지금까지 쌓은 미덕을 균형감 있게 보여주는 것이다. 연작 단편 형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각 단편들의 경우 본격 미스터리 형식으로 꾸려져 각종 트릭을 선보이면서 독자들을 즐겁게 하고, 그 단편들의 서사가 서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20세기와 21세기의 홍콩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의 정서를 환기시킨다. 만약 <13.67>의 주제가 무엇이냐고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분명히 두 의견이 팽팽하게 갈릴 것이다. 뛰어난 미스터리 연작 단편집 또는 미스터리 장르를 빌어 홍콩의 세기말과 21세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말이다. 둘 모두 맞다. '사회파와 본격 미스터리의 만남'을 추구한 작품은 정말 많지만, 이 두 마리 토끼를 실제로 성공적으로 잡아낸 작품들의 목록이 있다면 <13.67>은 거기서 분명히 높은 자리에 위치할 것이다. 추리소설로는 아직 낯선 나라에서 대단한 강펀치가 날아왔다. 한번 맞아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