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고, 주식의 흐름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브릴리언스』는 1980년 이후 이처럼 특수한 능력을 지닌 ‘브릴리언트’라는 신인류가 등장한다는 SF적인 설정에 기반을 둔 액션 스릴러이다. 브릴리언트와 일반인 사이의 갈등이 첨예해져 가는 세상에서, 브릴리언트이자 정부의 특수 요원이기도 한 닉 쿠퍼는 테러리스트가 연루된 거대한 음모와 맞닥뜨리고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다. ‘능력자 대 보통 사람’이라는 구도는 「엑스맨」을 비롯한 여러 히어로물을 접했던 독자라면 제법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등장하는 능력자들은 하늘을 날거나 레이저를 쏘거나 하지는 않는다. 브릴리언트의 능력들은 보다 현실에 맞닿아 있으며, 그 덕에 마치 평행세계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미국을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덧붙여 이 소설은 도입부부터 펼쳐지는 강렬한 액션과 속도감 넘치는 전개 등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로 보자면 모든 것을 갖춘 작품이다. 한번 책을 펼치면 600여 페이지가 순식간에 넘어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 열일곱 번째 책. 그러나 셜리 잭슨에게서 '미스터리'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현재까지 총 열여덟 권이 나온 이 시리즈에서 세 권을 차지하고 있는 셜리 잭슨은 시리즈에서 다소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나마 앞선 장편 두 권은 협소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초현실적인 사건들과 마주친 등장인물들의 심리적인 압력을 다루면서 전통적인 장르 소설(고딕 호러)의 외연을 갖추고 있지만, <제비뽑기>에서는 그러한 최소한의 외연조차 갖추지 않은 단편들이 많다. 표제작을 비롯한 몇몇 단편은 반전이나 서스펜스 등을 갖추고 있기는 하나 단편집 전체가 지시하는 방향은 여하한 종류의 쾌감과는 거리가 멀다. 평온한 일상을 뒤흔드는 작은 사건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누군가의 마음이 흔들리거나 일그러진다.
거기까지다. 일그러진 마음은 어떤 행동을 취함으로써 해소되지 않고 그 모양 그대로 머물고 만다. 불안에 잠식당하면서 끝나는 단편들이 많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무기력하며, 이들의 삶을 무기력하게 만든 체제의 압력은 처음에는 보이지 않다가 키우던 개가 이웃의 닭을 물어 죽였다거나 기차에 탄 노인이 아들에게 잔인한 우화를 이야기해 준다거나 하는 작은 일들을 통해 불길한 예감의 형태로 등장할 뿐이다. 무서운 일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으며 예감은 실체가 없으므로 극복할 수 없다. 결국 이 어두운 예감들은 영원히 등장인물들의 등뒤에 달라붙는다. 저 유명한 표제작 '제비뽑기'가 맨 뒤에 배치된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앞서 쌓인 모든 불안들이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가시화된 저주의 모습을 갖춘 채 등장하는 것이다. 농축된 불안이 대폭발하는 악몽의 불꽃놀이는 실로 장관이다. <인형의 집>의 이 어둡고 히스테리컬한 짝꿍을 문학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출간을 열렬히 환영한다.
SF 명예의 전당 1 아이작 아시모프 외 지음, 로버트 실버버그 엮음, 박병곤 외 옮김 / 오멜라스(웅진) 11,000원(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