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첫 키스와 첫 포옹의 순간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그때의 강렬함이 거의 영원할 것처럼 기억된다. <로드>를 읽은 순간도 그랬다. 이 책을 펼쳐보기 전에 '감히 성서에 비견되는 소설'이라는 말에서 종교적인 코드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새로운 세계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곳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머릿속에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묵시록적인 분위기에 제압당하고 창세기적인 분위기에 그저 휘청거릴 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로드>의 세계는 적막하다. 문명은 파괴됐다. 인간성도 파괴됐다. 그 세계는 만인이 만인을 향해 투쟁하는 장소이다. 흡사 '요한계시록'의 어느 장면들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 같다. 그 시대에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길을 떠난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 모른다. 그들이 가는 길에 희망이라는 것은 있는가? 모른다. 그저 갈 뿐이다. 순진무구한 아들, 문맥에 따라서는 메시아의 것으로 해석되는, 마음에 불을 지닌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아들과 길을 떠난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들이다. 배고픔에 극에 달한 그들은 인간마저 잡아먹는다. 아버지는 그들에게서 아들을 보호해야 하는데, 그 마음이 딱하기 그지없다. 인간이 '신'의 말씀을 잊은 그때에,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때에, 아들을 보호한들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눈빛은 안쓰러움을 넘어 참담할 뿐이다. 그럼에도 계속 길을 간다. 로드(road)다. 저 길을 따라서 간다.
소설을 다 읽고, 가슴이 먹먹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 묵시록적인 것에서 '희망'을 말하는 그 모습은 나를 전율시켰다. 그 느낌은 이윽고, 지난해 2008년 상반기에 읽은 100여 권의 소설들을 가소롭게 만들었다. <로드>를 만난 이후, 그 소설들이 내 눈에 'B급'으로 보이고 만 것이다. 이건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로드>를 읽고 난 후, 웬만한 소설은 눈에 안 들어온다.
성서에 비견되었다는 말처럼 종교적으로 해석될 내용도 있다. 묵시록적인 배경에서 문명 종말론에 대한 해석도 나올 수 있다.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에서 부성애에 대한 해석이 나올 수도 있다. <로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히는, 그야말로 문제작인 셈인데, 내게는 간단하게 이해된다. 기나긴 절망 속에서 찾은 희망의 소중함을 강렬하게 알려준다는 것. 소설이 이렇게까지 강렬한 건 처음이다. 이 책은 다시 생각해봐도, 첫 키스처럼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